UPDATED. 2024-03-29 02:30 (금)
 실시간뉴스
[노마의 상상편지] 행복강박증의 함정
[노마의 상상편지] 행복강박증의 함정
  • 김종면 주필
  • 승인 2022.02.07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ixabay

 


행복과 불행을 아울러 행불행(幸不幸)이라고 합니다.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이고 불행의 반대말이 행복인가요? 행복과 불행은 반대편에 있을 뿐, 이웃하는 관계입니다. 서로 참여하고 간섭합니다. 완전한 행복이 없듯 완전한 불행도 없습니다.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엿볼 수 있지요. 우리는 누구나 행복과 불행의 시간을 겪으며 삽니다. 

행복은 구하려 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불행은 피하려 한다고 해서 멀어지지 않아요. 그러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안분지족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행불행에 초연해야 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당한가요? 세상의 우러름을 받는 성인군자나 봉쇄 수도원의 은수사(隱修士)라 해도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영국 출신 티베트 불교 비구니인 텐진 팔모를 기억합니다. 팔모 스님은 스무 살에 인도로 건너간 후 영적 스승인 캄트롤 린포체의 조언에 따라 12년 동안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는 히말라야 설산 동굴에서 독거 수행을 했습니다. 일년 중 6개월 이상은 얼음과 눈 속에 갇혀 지냈고, 3년 동안은 철저한 묵언 속에 명상 수행을 했습니다. 그는 그 고통스러운 수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요?

수도자의 영적 수행은 자신의 구도생활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선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런 극도의 수행 또한 개인의 영적 성장 혹은 자아 해방이라는 ‘행복’에의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현실 밖 이야기이지요. 대지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막연한 깨달음의 신화가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처방전입니다. 

시중에는 행복과 불행을 이야기하는 처세서와 자기계발서들이 넘쳐납니다. 행복해지기 이전에 먼저 불행부터 물리치자며 불행 피하기 기술을 일러주는가 하면, 걱정을 위한 걱정을 하지 말라며 잡걱정 퇴치술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마음챙김 홈트레이닝으로 자신의 몸이 편해졌다며 고통의 근원인 이기심을 다스릴 것을 권하기도 하지요. 행복으로 이끄는 경로는 다르지만 공통된 전제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입니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이기적 동물인 게 사실입니다. 인간 만큼 자기 보존의 원칙에 철저한 생명체가 또 있을까요? 가족 가치(Family Value)가 소중한 것이라고 해서 오로지 가족주의에만 매몰돼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행복을 지키는 것은 좋지만 강박에 빠져 맹목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는 스스로에게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정유정의 소설 ‘완전한 행복’은 행복강박증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은 완벽한 재혼 가정을 꿈꿉니다. 이를 위해 그가 택한 행복의 연금술은 ‘뺄셈’입니다. 불행의 불씨가 될 만한 전혼(前婚)의 기억과 흔적을 모조리 지워냄으로써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루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무리하게 쌓아올린 행복의 바벨탑은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 지나친 행복에의 집착은 때론 비극을 불러옵니다.  

행불행에 관한 한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행복을 한꺼풀 벗기면 불행입니다. 누구나 사연을 간직하고 살지요. 

욕망과 싸워 이길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집착은 힘이 셉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지만 너무 행복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만물은 유전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가운데 찾아드는 행복이 진짜 행복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답고 오래 가는 행복이지요. 

“행복은 향수와 같다.”고 한 철학자 칸트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의 말대로 향수는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기운이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가게 해야지요. 이웃의 불행을 돌아보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자신의 행복도 챙겨가는 이타적 삶, 그런 치유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