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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기획 특집]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기획 특집]
  • 박소이 기자
  • 승인 2022.05.15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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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여성, 미래 사회 주류 될 것”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기획 특집](사진=Queen)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기획 특집](사진=Queen)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지난 2월 26일 영면했다.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고인은 암 투병 끝에 향년 89세로 타계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은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다. 퀸(Queen)은 그동안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이 시대 대표 석학인 그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고인을 추모하며 그가 퀸에 남긴 마지막 글과 이야기를 모았다.

기획 Queen 편집부 | 사진 Queen DB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를 비롯해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부를 이끈 고인은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업무 이관 등 4대 사업으로 문화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체육훈장 맹호장(1989), 대한민국 청조훈장(1992)과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88서울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을 총괄 기획한 고인은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을 연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장 중앙을 사선으로 지나가는 굴렁쇠 소년의 모습을 통해 전쟁고아의 이미지에 불과했던 한국의 인상을 새롭게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다. ‘굴렁쇠 소년’은 16년 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회식에서 소년이 홀로 대형 종이배를 타고 물을 가로지르는 모습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part1.
고인에 대한 추억

2015년 11월, 기자가 만난 이어령 선생과의 첫 인터뷰는 진정한 배움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탄이었다.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대중 시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은 언어를 넘어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를 터주는 향로였다. 모두 같은 소리를 내는 사회에서 타인과 다르게 생각하는 게 잘못이 아니라 그래서 오히려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 계기가 되었다.

이어령 선생은 AI 시대, 디지로그 시대를 사는 지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혼돈의 사회 속에서 언제나 삶의 방향타 역할을 톡톡히 해준 분이었다. 그의 이야기 기저에는 늘 여성의 위대함, 특히 엄마 역할의 중요성이 깔려 있었다. AI 시대에는 여성이 가진 감성과 섬세함, 부드러운 리더십이 더 힘을 발휘할 것이며, 이러한 엄마의 교육방식이 향후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그다.

그는 항상 남보다 한두 발짝 앞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예견은 틀린 적이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들이 안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기 전부터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대면, 비대면 수업을 번갈아 가며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00% 비대면 수업으로 이뤄졌을 때 생기는 ‘코로나 블루’라는 부작용도 그는 일찌감치 예상했었다.

“디지털의 접속과 아날로그의 접촉이 서로 균형,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산업화, 정보화 다음에 올 신문명을 창조할 수 있어요.”

지난해 7월, 퀸(Queen) 창간 31주년 기념호 인터뷰에서도 그는 디지로그 시대를 넘어 다가올 미래는 ‘생명화시대’라고 규정하고, 역시 여성이 주류가 되어 이끌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암투

병 중에도 병마와 싸우기보다 친구처럼 지낸다던 그는 당시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기록하고 정리하고 엮는 일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이 시대 석학이 떠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따듯한 마음으로 정리한 마지막 글, 지난해 7월 퀸 창간기념 축사와 인터뷰를 다시 펼쳐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사명을 다해 남긴 그 기록들을 통해 끊임없이 배워나가야겠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 송혜란 기자]
 

생전 인터뷰 “오는 생명화 시대에는 여성의 힘이 지배한다”

농경시대, 산업시대, 정보화 시대 다음에는 생명화 시대가 온다. 그 때 여성들의 역할이 꽤 막중하다. 코로나의 팬데믹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희망을 준 위인 중에 유독 여성이 많았다는 것도 그 징후다. 화이자 백신을 개발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바이오엔테크의 공동 대표 우구르 사힌, 외즐렘 튀레지 부부 이야기다.

부부는 터키 이민자 출신으로, 독일 사회에서 터키 이민자는 막노동자로 멸시당하고 차별받기 일쑤다. 코로나 승자가 대기업이나 실리콘밸리의 어마어마한 과학기술을 가진 연구소도 아닌 여성, 그것도 마이너리티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중국 우한에서 최초로 코로나가 발생하자마자 외즐렘 튀레지라는 여성은 남편과 함께 자택 컴퓨터를 이용해 지금까지 쓰지 않던 새로운 mRNA 역학방식으로 단 일 년 만에 백신을 만들었어요. 세계 초유의 일을 해낸 것입니다. 인플루엔자 같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도 무려 4년이 걸렸는데 말이지요. 영국에서 그 백신을 최초로 맞은 사람도 간호사 출신의 할머니였답니다.”

어디 그뿐인가. 부부가 시제품을 만들 때 실제로 기술개발을 한 것도 카트린이라는 여성 학자였으며, 그녀 또한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마이너리티 여성이었다.

“이 사람들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생명 자본의 텃밭인 어머니와 할머니의 파워가 인류를 구했어요. 항상 생명자본은 사회의 약자로 억압받던 젠더나 인종적 마이너리티에서 생겨났습니다. 주류문화에서 버린 이삭이나 쓰레기통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예는 역사 속에 수두룩해요. 그렇게 해서 역전 드라마, 생명 자본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산업주의 정보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중심이었다면, “미래 생명화 시대를 이끌어갈 주류는 여성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이어령 선생. IMF 환난 때 7번 아이언으로 헤자드에서 맨발로 빠져나온 박세리가 우리에게 주었던 힘을 생각해보자.

“향후 수없이 찾아올 위기를 원초적 생명력으로 극복할 힘,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퀸 여성 독자들에게 큰 용기를 심어주길 기대해 본다.

(2021년 Queen 7월호 인터뷰 중에서)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기획 특집]
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 [기획 특집] (사진=Queen)

 

Queen 창간 31주년 기념 축사

열대우림의 나무들에는 나이테가 없다고 합니다. 겨울의 추위와 계절의 변화에서 세월의 연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Queen이 창간하여 31년의 나이테가 쌓이기까지 쾌청한 날씨와 여름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내우외환이 잦은 사회, 여성이 억압되고 소외되었던 역사 속에서 여성지가 걸어온 길은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고 봅니다. 경영자, 편집자 그리고 독자들의 조화와 협조 없이는 오늘의 풍성한 기념 잔치도 없었을 것입니다.

잡지 이름 그대로 여러분들은 한 분 한 분이 여왕벌 같은 Queen입니다. 여왕벌을 중심으로 모든 벌들은 일사불란으로 움직입니다. 그것이 인류를 여기까지 번성케 한 가족의 의미입니다. 가부장제도 아래에서도 숨어 있는 가족의 중심은 여전히 여성이었지요.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제로 피의 연속성은 ‘미토콘도리아 이브’의 유전학에서도 증명된 것처럼 모계로 이어져 왔습니다. 여성은 늙어도 할머니 파워로 자손들을 기르고 지켜왔습니다. 영화 <미나리>처럼 말입니다.

31년 전 창간 당시의 Queen지를 열어보십시오. 여권이 얼마나 신장되었고 생활의 질이 얼마나 높아졌으며 나라 전체의 지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한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 모든 것이 남성들이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그 남편들의 뒤에는 땀 흘리는 아내가 있었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있었으며 손자의 구두끈을 매준 할머니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Queen 가족들에게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생명 가치가 높아진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성 지도자가 이끌어갈 사회에서 Queen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더 높아졌습니다.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2021. 06. 22)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화여대 교수

 

part2.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고 이어령 전 장관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저서 집필에 마지막 힘을 쏟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김지수 작가와 대화 형식으로 지은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2017년 암 선고 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선생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왔는지 보여준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통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본다.

정리 김홍미 기자 | 자료 제공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이어령 지음, 열림원)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사진=김용호 작가 제공)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사진=김용호 작가 제공)

(죽음을 직시하며 이어령 선생이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는 철학과 종교를 넘나들며 삶과 죽음에 대해 가로지르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지도 슬프기만 하지도 않다. 솔직함으로 풀어낸인생과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해’

선생님은 당신이 생각하기에 운 좋은 인생을 사셨나요?

내 인생이 운이 좋다 나쁘다, 그런 평가를 해본 적은 없네.

운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 자체가 어쩌면 운이 좋다는 뜻 아닐까요?

따져보면 태어난 것 자체가 엄청난 운을 타고난 거라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해. 세상에 나온 후엔 제 각자 운명의 길을 걸어가지. 다른 소설, 다른 시, 다른 드라마를 사는 거야. 인생극장이라고 하지 않나.

(이어령 선생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서 숨 쉬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것이 곧 기적이라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명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고 설파했다. 인류가 만년 동안 농업, 산업, 정보 혁명을 이룩하며 쌓아 올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이 한낱 미세한 바이러스에 와르르 무너졌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소중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생명을 받은 운 좋은 인간들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실한 노예의 슬픔’

착실한 노예가 있었어. 시키는 대로 해도 되니 이 노예는 행복했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삶이 다 있나 좋아했지.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감자 씨를 뿌리고, 거두고, 쌓았어. 어느 날 주인이 말했네. ‘큰 감자는 오른쪽 구덩이에 넣고 작은 감자는 왼쪽 구덩이에 넣어라.’ 그 노예는 해가 떨어지도록 들에서 돌아오지 못 하고 엉엉 울고 있었어.

‘성실한 네가 왜 이런 쉬운 일을 못 하고 울고 있느냐.’
‘주인님, 감자를 잡을 때마다 이걸 큰 감자로 넣을지 작은 감자로 넣을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나?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거라네.
 

‘고분고분 살지 말게.’

지구가 동그랗든 평평하든, 그게 우리가 사는 평범한 일상에 무슨 영향을 미치나? 미국엔 진화론도 지동설도 믿지 않는 사람이 아직도 4천만 명이나 돼. 그래도 사는 데는 문제가 없어.

왠지 아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수학적 진실, 과학적 진실, 삶의 진실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걸 알아야 하네. 그런데 어릴 때 야단맞을까 두려워 딴소리 안 하고,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고 살게 돼. 안타까운 일이네.

(이어령 선생은 평생 남과 다른 삶을 살았다. 22살에 쓴 ‘우상의 파괴’로 권위있는 학자들에게 비수를 꽂는 유명인사가 된 이후 60여년 간 언어기호학자이면서 언론인, 비평가이면서 소설가, 시인, 행정가, 크리에이터로 살아왔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인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세상에 선보이며 아무리 인공지능과 사이버 세계가 발전해도 우리 육체가 살아있는 현실에서는 디지털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역설해왔다. 그런 그의 삶이야말로 모난 돌처럼 계속해서 질문하며 자기만의 이야기로 존재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외로웠네.’

내가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점이 바로 그거였어. 한번 문제를 붙들면 풀릴 때까지 놓지 않았지.

문제적 인간이셨죠!

그래서 사는 내내 불편했지. 아이 때도 어른이 되고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말꼬리 잡는다, 얄밉다는 소리만 들었으니까. 대학교 강의실에서 강의하면 5~6백 명 좌석이 꽉꽉 차도,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다른 교수에게 주더구만…. 내 강의에 영감을 받고 내 글을 사랑해줬지만, 스승의 날 나에게 꽃을 들고 찾아오고 싶다는 친밀감은 못 주었던 모양이야.

항상 지적 대치 상태 같은 긴장을 요구하셨으니까요. 온유하기보다는 서늘했을 겁니다.

그래서 외로웠네. 이 외로움 속에서도 수십 년씩 변함없이 관계를 맺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도 다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일 거야.

(내가 만약 이 대화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했다. 어느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어떤 질문을 이어가야 할까, 긴장했을 것 같았다. 가끔 숨이 막힐 것 같기도 했다. 외롭다 말하는 선생의 고백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평생 평화롭기보다 지혜롭기를 선택해서 살았던 이어령의 치열한 나날들이 보여 쓸쓸했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지…’

딸, 손녀, 손자가 그립다 해도 예전보다는 감정이 많이 무뎌졌어. 못 견디게 보고 싶던 사람들인데 무뎌지더라고. 분노도 그리움도 마찬가지야.

이건 비밀인데 말이지. 지금껏 살아온 중에 제일 감각이 느리고 정서가 느린 게 지금이라네. 그게 진실이야. 죽음을 앞둔 늙은이가 절실한 시를 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 하나님이 잘 만드셨어. 내가 지금 20대 30대의 감각으로 죽음을 겪고 있다면 지금처럼 못 살아. 내 몸은 이미 불꽃이 타고 남은 재와 같다네.
 

‘그때 그 말을 못 했어.’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그 때 고맙다고 할걸…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그래서 너희들도 아버지한테 ‘이 말은 꼭 해야지’ 싶은 게 있다면 빨리 해라. 지금 해야지 죽고 나서 그 말이 생각나면, 니들 자꾸 울어.

(고인은 예전 퀸과의 인터뷰 중에도 딸의 이야기를 했다. 일찍이 유학생활을 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몸으로 실감하지 못한 딸 이야기를 할 때면 가족에게 충실하지 못했던 후회와 아쉬움을 표현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것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지 않았던 그의 딸은 목사가 되어 목회 활동을 하다 2012년 3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는 딸을 그리워하며 책을 쓰기도 했다.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고 서로 몰랐던 그 때를 후회하며 선생은 남은 인생을 마음껏 딸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힘썼다.)
 

‘인생은 한 커트의 프레임’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뤄지고, 관계가 이뤄져. 찍지 못한 것,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그 모습을 남은 시간 동안 보여주려 하네’

나처럼 암에 걸린 사람을 위해 과학자들은 특효약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그런데 나는 과학자도 영웅도 그렇다고 의지가 강한 사람도 아니야. 나 같은 사람이 암에 걸려 죽을 때까지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면, 암이 뭐가 무섭겠나. 내가 암세포 죽이는 약은 못 만들어도 암에 걸린 사람을 위한 정신 치료제는 만들 수 있지 않겠나.

발톱 깎다가
눈물 한 방울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발가락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그게 늙은이의 슬픔이고 늙은이의 분노야.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늙은이는 기막힌 비극 앞에서도 딱 눈물 한 방울이야.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 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기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선생은 사는 동안 죽음을 기억했다. 혼과 육의 삶을 살다 갔지만 끊임없이 마음을 비워 영이 닿는 우주의 공간을 흠모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메시지들이 우리 모두의 삶에 큰 용기와 희망을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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