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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뢰한> 속 김남길의 수사 방식, 적법한가
영화 <무뢰한> 속 김남길의 수사 방식, 적법한가
  • 송혜란
  • 승인 2015.07.28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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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법률

범인을 잡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는 형사 정재곤(김남길). 그는 사람을 죽이고 잠적한 박준길(박성웅)을 쫓고 있다. 그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박준길의 애인인 김혜경(전도연). 재곤은 정체를 숨긴 채 혜경이 일하고 있는 단란주점 마카오의 영업상무로 들어간다. 재곤과 혜경은 가까워지게 되고, 특히 혜경은 재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랑보다도 범인 검거가 우선이었던 재곤. 재곤은 준길이 혜경에게 요청한 돈까지 제공해 가며 준길을 검거해 내고야 만다. 혜경은 준길에게 마지막 의리로 돈을 제공해 주고 재곤에게 갈 생각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철저히 배신당하고, 빚 때문에 마약 소굴에까지 팔려가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필자가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어떤 관람객 한 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범죄자 잡는 게 중요하다지만 사람을 저렇게까지 이용하다니. 전도연이 너무 불쌍해. 김남길, 저런 거 불법 아니야?” 영화를 관람한 퀸 독자분들 중에도 이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함정수사의 의의

‘함정수사’라는 용어는 우리 모두에게 꽤나 익숙하다. 영화에서 준길은 형사인 재곤이 준길의 애인인 혜경을 이용해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져 현장에서 검거된 것이므로 얼핏 보면 함정수사가 아닌가 의심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함정수사의 의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함정수사란 ‘수사기관이 범죄를 행하도록 유도해 그 실행을 기다려 범인을 체포하는 수사 방법’을 의미한다. 영화 <신세계>에서 조직 내 두 파벌 사이의 항쟁을 유도해 검거한 것이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여형사를 범인이 좋아하는 취향의 외모로 분장시켜 형사들이 잠복하고 있었던 것은 함정수사가 사용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함정수사의 효력에 관해 대법원은 ‘공소기각설’을 취하고 있다. 즉, 함정수사를 통해 적발한 범행 및 범인에 대해 검사가 기소하면 법원은 함정수사의 위법성을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손님을 가장하고 성매매 업소에 잠입해 성매매 범죄를 적발한 사안에서 함정수사는 범죄 의도 자체를 유발해 범죄에 이르게 하는 경우에만 이에 해당하고, 이미 범죄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자에 대해 단지 기회만을 제공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해 함정수사의 범위를 매우 축소해 해석하고 있다.

재곤은 위법한 함정수사를 한 것일까?

재곤은 처음부터 준길을 검거하기 위해 혜경에게 접근했다. 재곤은 혜경 옆에 붙어 있으면서 준길이 혜경에게 도피 자금의 마련을 요구한 정황을 포착해 혜경에게 돈까지 마련해 준다(물론 나랏돈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혜경이 준길에게 돈을 건네주는 현장을 덮쳐 준길을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혜경은 준길에게 돈을 건네주고 나서 준길을 떠나보내고 재곤과 새출발을 하려 했지만 재곤은 이런 혜경을 끝까지 이용했을 뿐이다. 자, 우리는 여기서 함정수사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함정수사는 수사기관이 범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행하도록 유도해야 성립하는 것이다. 혜경이 준길에게 도피 자금을 마련해 주도록 한 것은 준길로 하여금 추가적인 범행을 저지르도록 유도한 것은 아니다. 단지 준길이 나타나는 현장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내연녀로부터 도피 자금을 제공받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곤이 사용한 수사 기법은 함정수사의 개념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고, 그 어떤 다른 불법 요소도 없다. 그 과정에서 혜경이 느꼈을 배신감과 상처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일까. 혜경은 마약 소굴에 팔려간 자신을 구하러 온 재곤을 칼로 찌르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게 된다.

 

 

 

 

글 강신범 변호사

2004년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 2005년 2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북부지방법원 소속 국선전담변호사 등을 거치면서 1천500건 이상의 소송을 수행하였고, 현재는 법무법인 청람에서 구성원변호사로 재직 중.
문의 02-596-9002  이메일 volkisad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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