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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사랑한 작곡가 드보르작
기차를 사랑한 작곡가 드보르작
  • 송혜란
  • 승인 2016.08.2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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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트래블
 

기차역에는 늘 누군가 오고 또 누군가는 떠난다. 그것은 누군가는 남고 또 누군가는 이별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줄의 기찻길이 만들어 가는 이 미묘한 분위기는, 한 지점에서 볼 때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무한의 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한의 기찻길을 따라가는 눈은 하늘에 걸리고 때로 구름에 걸린다. 내리는 승객들의 가방에는 타지에서 가져온 고단함이 담겨 있고, 떠나는 승객들의 가방에는 희망이라는 '가끔은 쓸 만한 짐'이 들어 있다.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작(1841년 9월 8일 ~ 1904년 5월 1일)은 ‘기차광’이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제국 프라하(현재는 체코 공화국) 근처의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태어나서,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곳 넬라호베제스에는 1850년 경 증기기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드보르작은 평생 기차 구경하는 것이 가장 큰 취미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매일 기차역에 가서 증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와 기차 바퀴의 피스턴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발명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작품 전부와 바꿔도 아깝지 않겠다고 말한 기록이 남아 있다.
드보르작에게는 기차에 얽힌 또 다른 일화도 있다. 그의 딸 오틸리에는 드보르작의 제자였던 요제프 수크와 연인 관계였다. (Josef Suk, 체코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후에 프라하 음악학원 원장이 된다.) 어느 날 드보르작은 새로 개발된 기관차를 관찰하러 갈 시간이 없어서 제자인 요제프 수크를 보내서 기관차의 제조 번호를 적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수크는 기차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을 적어서 드보르작에게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드보르작은 그의 딸 오틸리에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이런 멍청이와 정말로 결혼할 생각이냐?"

평생을 기차에 대한 동경 속에 산 드보르작의 ‘음악 속 기차’

드보르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체코의 작곡가로서 관현악과 실내악에서 모국의 보헤미안적인 민속 음악 작풍과 선율을 표현하였다. 즉 스메타나에 의하여 확립된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인 고전음악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 속에서 나타나는 기차는 꽤나 많다. 우선 대표적인 것이 <신세계> 교향곡이다. 증기 기관차가 이제 뭉게구름 같은 엄청난 양의 하얀 증기를 하늘로 뿜어내며 달리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 곡의 마지막 악장 첫 소절부터 나타난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천천히 점증형으로 다가오며 스케일의 웅장함과 때로 감격적 진취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기차가 힘차게 달리는 듯한 느낌 그대로이다. 이 곡의 4악장 첫 소절은 또한 공포의 점증법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 <죠스>에서 식인 상어가 나타나는 대목에서 공포를 극대화하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드보르작은  미국에 있을 때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람하고 나서 그것에 영감을 받아   현악사중주 12번 <아메리카>를 작곡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제자가 목격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 있다. 이 곡 역시 기차에 관련된 부분이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에 따르면, 현악사중주 12번 <아메리카> 4악장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받은 영감뿐만 아니라 기차에 대한 사랑도 적지 않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즉, 기관차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소절들이 적지 않다고 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유모레스크> 7번도 기차 소리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기찻길 위를 달리는 기차 바퀴 소리를 비교 실험 결과, 놀랍게도 기차소리와 유모레스크의 반복 리듬이 거의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어릴 때 받았던 영향이나 가슴에 지닌 동경이 평생을 간다. 드보르작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프라하에 철도가 개통되고, 드보르작의 고향마을 넬라호제베스를 지나면서 9살 소년 드보르작은 증기기관차의 냄새, 소음, 웅장함에 거의 빠지다시피 했고, 또 가슴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평생을 기차에 대한 동경 속에 살았고, 기차에 대한 생각 속에서 작곡을 했다. 그가 남긴 위대한 음악 속으로 오늘도 기차가 달리고 있고, 또 그 달리는 기차를 따라 우리는 지금 드보르작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다.

 

 

 

 

글 사진 김선호
1958년 강경출생
외국어대학교 문학사, 성균관대학교 문학석사.
(전)IT 관련 공기업 코레일네트웍스 대표이사
(현)라끌로에프렌즈 대표이사.
음악 에세이 <지구촌 음악과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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