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4 02:30 (토)
 실시간뉴스
걸음마다 작품, 이화동 벽화 마을
걸음마다 작품, 이화동 벽화 마을
  • 최효빈
  • 승인 2016.09.30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기행

삶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 있는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곳, 이화동 벽화 마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떠나온 듯한 기분을 선사했던 이화마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진행 및 사진 최효빈 기자
 

 

혜화역과 동대문역 사이 낙산공원 아래 위치한 작은 마을 이화동 벽화 마을. 2006년 공공미술추진위원회에서 소외된 지역의 시각적 환경을 개선하고자 주관한 ‘낙산프로젝트’를 통해 마을 곳곳에 그림과 조형물이 탄생하게 된 이화마을은 ‘언젠간 꼭 가 봐야지’ 생각만 하고는 정작 찾아가지 못했던 버킷플레이스 중 하나였다.
가 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매스컴에서 화려하게 비추곤 했던 마을에 대한 이미지가 뒤섞여 방문 전부터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던 이화마을 기행은 소나기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루어졌다.
이화마을로 가기 위해 마로니에공원과 옹기종기 모인 소극장 사이를 지나는 길. 언제나 그렇듯 데이트를 하는 수많은 연인들과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열심히 전단지를 돌리는 알바생, 그리고 그런 사람들 틈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살찐 비둘기들이 나를 반겼다.
‘저 커플은 만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부터 ‘저 전단지 알바생은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할까?’까지 넘치는 호기심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대학로를 지나(구경만 하는데도 해도 한참이 걸렸다) 이화동 벽화 마을이 시작되는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짧지만 높고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 도착한 낙산공원 입구. 주차장까지 겸비한,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하는 낙산공원은 그 자체로도 이미 명소였는데, 특히 화려하고 운치 있는 야경이 유명해 저녁에 방문하면 좋을 만한 곳이었다. 예정엔 없었지만 둘러보고 싶었던  낙산공원을 다음으로 기약한 채 이화마을 입구로 걸음을 재촉했다.
오른편 도로를 따라 죽 세워진 갖가지 조형물과 탁 트인 혜화동 전경을 바라보며 도착한 이화마을 입구. 한적한 낙산공원과는 달리 이화마을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촬영일이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벽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찾는 이가 많았다. 관광객들은 중국인들과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주를 이뤘는데, 학생들은 특히 마을 교복 대여점에서 80년대 감성이 물씬 풍기는 교복을 대여해 특별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깃이 빳빳한 교복과 양 갈래로 정갈하게 땋은 머리, 교모와 완장 등으로 꾸민 80년대 스타일은 빈티지한 동네 분위기와 어우러져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는데, 동네의 이미지를 반영하여 새겨진 곳곳의 벽화 또한 이러한 레트로 무드를 완성하는 중요한 도구로서 이화마을만의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화동 벽화 마을은 본래 ‘관광지’이기 이전 분명한 ‘주거지’로서 마을 주민들이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는 곳으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관광객들 뒤로 더위를 피해 그늘막에 모인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낮 시간에 마주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동네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동네의 모습이 좋은 것인지, 혹은 싫은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연신 부채질을 더하고 계셨다.
사실 이화마을은 최근 ‘주거지 대 관광지’를 두고 마을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로, 지난 4월에는 이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잉어계단과 꽃 벽화가 훼손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벽화들 사이로는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이냐’ 등의 빨간 래커 문구가 분노한 주민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이었지만 마냥 아름답다기보다는 조금은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강했던 이화동 벽화 마을. 아름다운 벽화를 느끼고 즐기기 이전, 서로를 애써 외면하는 듯 보였던 방문객과 주민들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조금 더 큰 시간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