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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감성으로 스크린 활보하는 배두나의 화려한 외출
30대 감성으로 스크린 활보하는 배두나의 화려한 외출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5.2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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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여배우의 사명감을 가지고 찍은 영화예요”


여배우가 30대가 되면 고민이 많아진다. 풋풋했던 신인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 자신만의 분명한 캐릭터가 잡혀갈 시기. 현명한 배우라면 자신이 잘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하고 동시에 연기 변신도 서슴지 않는다. 또 작품을 보는 눈이 높아지고 뚜렷해지기 때문에 작품 선택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는다.
화보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은, 신예 모델이었던 배두나는 30대에 접어들기 전부터 이미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배우였다. 일찌감치 신인감독이었던 봉준호, 정재은 감독의 눈에 띄었고 코미디, 스릴러, 멜로 등 다양한 장르에서 그녀만의 끼를 발휘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괴물’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친 후 많은 감독들의 워너비 스타가 된 배두나는 일본 열도에까지 유명세를 퍼뜨렸다. 2005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린다 린다 린다’에 출연하면서 주목받은 그녀는 지난해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에 캐스팅되어 새로운 배우 인생을 맞았다.

이제 악역에 도전하고 싶다
“한국 여배우로서 일본 촬영장에서 칭찬을 받고 싶었어요. 한국 배우가 멋진 배우구나, 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추워도 춥다는 말을 하면 ‘한국 여배우들은 엄살이 심해’라고 생각할까 봐 절대 추운 내색도 하지 않고, 약속시간도 꼭 늦지 않게 나갔어요. 한국에서보다 더 긴장을 하고 촬영을 했어요.”
배두나의 이 같은 노력을 알아챘는지, 감독을 비롯해 일본의 스태프들은 그녀의 열연을 높이 샀다. 그리고 일본 아카데미영화상, 도쿄스포츠대상영화제, 다카사키영화제 등 다섯 개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지난해 최고의 여배우로 주목받았다. ‘공기인형’은 지난해 일본에서 먼저 개봉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올 4월에 개봉했다. 배두나는 공기인형이지만 인간에게 감정을 느끼면서 사랑에 빠지는 ‘노조미’ 역을 맡았다.
“캐스팅이 되기 전 감독님이 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말을 들었어요.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 ‘아무도 모른다’를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기대감과 신뢰가 있었고요. 인형을 연기하다 보니 메이크업과 추위 때문에 고생한 것 말고는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영화를 찍으면서라도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배두나는 “지금까지는 현실의 나와 다른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평소 작품 선택을 무척 깐깐하게 하는 편이다. 다작을 하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다. 배두나는 하고 싶지 않은 작품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 배우이고, 영화제나 패션쇼 무대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해요. 지금 욕심이 있다면 정말 악마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제 안에 그런 모습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끄집어내서 연기해보고 싶어요. 요즘 메이크업을 진하게 하는 것도 제가 좀 지겹고 해서 못돼 보이고 싶어서예요(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배두나의 연기를 두고 “방식이 섬세하고 과장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배두나의 풍부한 표현력 때문에 영화가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며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낼 정도였다.

‘배우 엄마’ 보면서 자연스레 연기 입문
그녀를 칭하는 또 다른 타이틀은 ‘연극배우 김화영의 딸’. 배두나는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엄마의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두 모녀는 친구인 동시에 동료 그리고 선후배이다. 지난해에는 연극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기업인인 아버지와 배우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에 배두나를 ‘엄친딸’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은 루머”라며 단정했다.
“고생하며 산 건 아니지만 평범하게 커왔어요. 연극배우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공연을 볼 기회가 많았던 건 사실이에요. 스무 살부터 배우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못했다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반대로 ‘나처럼 편안하게 살아온 사람이 어떤 표현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맡은 배역 안에서 좌절을 겪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배두나는 어머니로부터 “연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영화에서 노출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이 컸다고 한다.
“배우인데 왜 벗는 것을 두려워하냐고 말씀해주셨죠. 이번 영화 ‘공기인형’에서도 누드신이 있었는데, 한국과 달리 현장에 정말 많은 스태프가 지켜보고 있어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저도 여자인데 쑥스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국 여배우들은 ‘프로’라는 말을 들으려고 더 열심히 찍었어요.”
배두나는 오히려 누드신을 처음 촬영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매우 어색해하는 것 같아 감독의 긴장을 풀어줬다고 말했다. 촬영은 한겨울에 진행되었는데 영화 속 배경은 초여름이라 배두나는 얇은 원피스 하나만 걸쳐야 했다. 인형 분장을 하려면 세 시간이 걸렸는데 새벽 5시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우리 집에서 촬영을 한다고 하면 엄살을 부릴 수도 있겠지만, 일단 밖에 나가면 마음이 달라지잖아요. 일본에서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배두나는 영화를 찍고 나서 6개월 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예전에는 한 작품이 끝나면 후련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나치게 몰입한 탓인지 스스로가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고 한다. 휴식을 마치고 그녀가 선택한 작품은 드라마
‘공부의 신’.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다소 편하게 선택하는 배두나는 ‘공부의 신’에서 마음씨 좋은 영어교사 역을 맡았다. 11년 전, 드라마 ‘학교’에서 반항아 학생 역을 맡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학생 역을 하다 교사 역할을 맡는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반항아가 열심히 공부해 선생님이 된 경우잖아요. 당시에는 연기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친정같이 느껴져요. 학창시절에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모범생이긴 했어요(웃음). 저는 원래 빈틈 많은 캐릭터를 좋아해요. 너무 열연하면 시청자들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있고, 오히려 절제된 연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더 좋아요.”

나를 채워가는 작업들
피아노, 드로잉, 꽃꽂이, 베이킹 등 다양한 취미를 섭렵하고 있는 배두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특히 그녀에게 사진은 오랜 취미이다. 여행 에세이집을 세 권이나 낼 만큼 도시와 여행에 대한 애착도 깊다. 책에는 서울, 도쿄, 런던을 바라보는 배두나의 취향이 소소히 배어 있다. 젊은 여성들의 스타일아이콘으로 부상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간결하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 다만 즐기고 싶었고 그것을 했을 뿐이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작을 하면서 저 자신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요. 좀 더 저를 채워가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20대에 청춘을 다룬 작품에서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고, 30대에 접어든 지금 배두나는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졌다. 언제나 담백한 연기를 꿈꾸는 그녀는 너무 가득 차기 전에 쉼표를 둘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듯하다. 관객들이 소비하는 배우의 이미지를 잘 요리하는 배두나는 영민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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