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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생의 첫사랑과 마주하다 교수 그리고 작곡가 김효근
다시, 인생의 첫사랑과 마주하다 교수 그리고 작곡가 김효근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5.2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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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팝’을 통해 모든 세대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따스한 소통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 귀국하면서부터 이화여대에 부임해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그는 국내에 ‘지식경영’의 개념을 소개한 초창기 선도 연구자이자, 지식을 3차원 입방체로 설정해 조직지식을 설명하는 ‘지식큐브’ 이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가 연구한 지식큐브 이론은 지식경영을 실시하는 대표적인 방법론으로 포스코, KT, 하나은행 등 한국의 대기업 2백여 곳의 현장에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주목받는 성과를 연이어 내놓는 경영학자로서 바쁜 세월을 보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음악을 향한 열망이 숨어 있었다.
봄볕 따스한 주말 오후,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이화여대 교정에서 그를 만났다. 음반 ‘내 영혼 바람 되어’를 내면서 오래도록 묵혀온 음악을 향한 열정을 갓 터뜨린 그의 설렘이 절로 목련의 모습에 겹쳐지는 듯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열어준 신세계
김효근 교수는 음악에 푹 빠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의 중ㆍ고등학교 시절은 온통 합창단 활동과 음악회 관람으로 가득했다.
“음악에 처음으로 빠져들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즈음 동네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죠.                아침에 눈뜨면 기타부터 잡고, 잠들기 전까지 기타를 칠 정도로 푹 빠져 있었어요. 그전까지는 장남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 덕분에 당시 유복한 집에서나 가능했을 피아노 수업을 받았지만, 전혀 음악에 흥미를 갖지 못했거든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남학생을 찾기 힘들던 시절, 중학교에 입학하며 가정환경조사서의 ‘특기’란에 ‘피아노 연주’를 써냈던 그는 바로 합창부 담당 교사의 관심을 끌었고, 합창부 반주자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제가 반주한 첫 합창 발표곡이 가곡 ‘고향의 노래’였어요. 무척이나 멜로디 라인이 아름다운 노래였는데, 그렇게 조금씩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죠. 마침 그때 음악 연습실에 새로운 오디오 스테레오가 들어왔어요. 음악선생님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원판을 사와서 저희를 앉혀놓고 들려주셨어요. 신세계 교향곡의 4악장을 처음으로 듣던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음악이 전신을 감싸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죠. 바로 그 순간 제게 신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아버지가 편찮아지면서 가정형편이 점점 어려워졌다. 그는 전교에서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3년 동안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 부모님은 ‘공부를 계속 잘해야 좋은 대학을 갈 텐데, 음악에만 빠져 있다’고 걱정을 무척 하셨어요. 그래서 ‘1등을 하면 음악활동 하는 것에 잔소리하지 마시라’는 조건을 내걸었죠. 사실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게 아니라, 음악을 계속하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편이 맞아요(웃음).”
대입 본고사를 코앞에 둔 고3 시절까지도 부모와 담임교사의 눈을 피해 합창단 아이들을 이끌고 합창제를 나가곤 했던 김효근 교수. 다행히(?) 서울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이후부터는 ‘반음대생’의 생활이 시작됐다. 경제학과 전공과목만 제외하고는 모든 과목을 음대 전공 과목으로 신청해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에 들어갔다.
“정작 전공인 경제학 성적은 대개 B+, B0 수준이었는데 음대 전공수업은 모두 다 A+를 받았을 정도”라고 웃음을 터뜨리는 그. 김효근 교수는 대학교 3학년 때 제1회 MBC대학가곡제에서 ‘눈’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작곡과 학생들만 참여하다시피 했던 대회에서 그는 유일한 타과 학생임에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거머쥐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음악인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법했지만 그는 고민 끝에 학업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과 노력으로 한길을 걸어온 전공자들이 가득한 음악계는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마추어처럼 도전하기에는 너무도 치열했다.  
“대학 4학년 1학기가 끝날 때까지 전 음악에 빠지고 꿈에 빠져서 보냈어요. 혼자 작곡하고 연주하며 마냥 행복하게 지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주변의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들 취업준비며 고시준비, 유학준비로 바쁜데 ‘난 해놓은 게 뭐지’라는 불안감이 밀려왔죠. 그때 친하게 몰려다니던 경제학과 친구들이 절 걱정해서 제 진로를 두고 ‘대책회의’까지 열었을 정도예요(웃음).”
이론과 실제의 접목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현재 그가 가르치고 있는 분야는 경영학 중에서도 경영정보시스템 영역.
“유학을 떠난 후부터 음악은 전혀 안 접하다시피 했어요. 한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사실 딴 생각을 하기가 어렵잖아요. 목숨을 걸고 해야지. 그렇게 연구에 파묻혀 지나간 시간이 20년 가까이 된 거죠.”
다시, 첫사랑을 만나다
‘지식경영’ 연구가 탄력을 받고, 경영학 분야에서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 들 때쯤 그에게 다시 옛 사랑, 첫사랑인 음악이 찾아왔다. 조심스레 음악에 발을 디딘 것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한국 가곡 작곡가들과 교류하고 작곡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는 그 사이 몰라보게 달라진 음악 풍토에 깜짝 놀랐다. 1970∼80년대만 해도 ‘가곡의 밤’은 대중이 즐기는 가장 고급스러운 음악회로 꼽히며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곡은 대중과 제대로 된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가곡이란 원래 시에 노래를 붙여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인데,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었어요. 대학교에서 강사와 교수가 되기 위한, 자신의 작곡 능력을 검증 받기 위한 시험대가 되었더라고요. 곡은 점점 난해해질 수밖에 없고, 불리지 않는 노래들이 만들어졌죠. 이제 가곡은 50∼60대의 사람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듣는 노래가 됐어요. 그나마 ‘그리운 금강산’, ‘님이 오시는지’ 등 10여 곡밖에 안 되는 곡만 애창되고 있죠. 시인들의 정제된 언어로 그려낸 훌륭한 시어와 대중의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작곡을 하면 사랑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전공자가 아닌 ‘이방인’으로서 그는 “오히려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어 좋다”고 미소지었다. ‘내 영혼 바람 되어’는 그가 새롭게 만든 ‘아트팝’ 장르다. 전통예술가곡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들을 사용해 외면당했던 현실을 극복해보려는 새로운 시도의 결과다. 이번 음반에서는 그가 작곡한 곡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을 맡은 바 있는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노래했다.
1985년 사랑하는 애인에게 청혼을 하고 싶었던 가난한 대학원생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리했다.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며 15곡의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붙였다. 손으로 직접 써내려간 작곡집을 제본해 프러포즈 선물로 건넸고, “언젠가 나이가 들고 돈을 벌게 되면 이 노래들을 담은 음반을 꼭 내줄게”라는 약속도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고, 기자가 펼쳐본 그의 음반 속지 맨 앞에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 배은영에게…’라는 글이 곱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에게 바쳤던 곡 중 ‘사랑의 꿈’, ‘첫사랑’도 수록했다. 25년 전의 약속만큼이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의 음악. 삭막한 삶을 견뎌내야만 하는 우리 모두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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