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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전 회장과 결혼 11년 만에 파경 맞은 장은영 이재만 담당 변호사가 전해준 두 사람의 진실
최원석 전 회장과 결혼 11년 만에 파경 맞은 장은영 이재만 담당 변호사가 전해준 두 사람의 진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5.2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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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수많은 일들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버거움 쌓였다…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변함없어”

지난 5월 14일 장은영ㆍ최원석 부부의 이혼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재벌 회장과 인기 아나운서의 결합으로 세간에 화제를 뿌렸던 두 사람의 결혼이 결국 파경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거듭된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은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해온 부부이기에 두 사람의 이혼 소식에 다소 당혹스러웠다. 장은영ㆍ최원석 부부는 변호사를 찾아 함께 이혼합의서를 작성하고, 이혼절차를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의 이혼 소송을 담담했던 이재만 변호사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파렴치범으로 몰릴 뻔했던 주병진의 무죄를 입증해준 것으로 유명한 연예 전문 변호사. 편승엽·길은정 소송, 김병현 선수 초상권 침해사건, 송일국 명예훼손 사건 등에서 변호를 맡아 승소를 이끌어낸 그는 유명인들의 말 못할 속내와 고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어온 변호사다. 장은영ㆍ최원석 부부의 속내를 들어본 이재만 변호사가 파경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 대한 배려가 돋보였다

- 장은영의 이혼 소송을 맡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예전부터 최원석 전 회장 부부와 교분이 있어서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아무래도 이혼을 결심할 때가 되니 아는 변호사에게 상의를 하고 싶어 찾아온 것 같다.

- 두 사람의 이혼 의사를 처음 들은 것은 언제인가.

지난 겨울이다. 장은영 씨가 혼자 찾아와서 이혼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이혼에 대한 합의는 되어 있는데, 재판을 할 경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협의이혼이면 반드시 당사자 양측이 법정에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당사자가 법정에 나가지 않는 방법을 원해 재판상 이혼을 설명해줬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들은 대리인의 출석이 가능한 재판상 이혼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간 후 몇 개월은 연락이 없다가, 올 3월 초 소송을 진행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3월 26일 두 사람이 이곳 사무실로 왔고, 최 전 회장 측 변호사도 함께 입회한 상태에서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위 두 사람은 이혼하기로 합의한다. 재산분할 및 위자료 등의 청구는 서로 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그후 장은영 씨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 장은영이 이혼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뭔가.

두 사람이 이미 이혼에 합의했기 때문에 누가 소송을 제기하는냐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3월 26일 이혼합의서를 작성했고, 소장은 두 사람의 의사에 따라 4월 9일에 접수했다. 그리고 4월 20일 재판 첫 날, 두 사람이 합의한 내용대로 바로 조정이 성립했다. 법적으로는 4월 20일 남남이 된 것이다. 조정조서를 받은 후 관할 구청에 이혼신고를 하면 형식적인 서류 정리까지 마치게 되는데, 지금은 다 끝난 상태다.

- 이혼합의서를 쓰기 위해 찾아온 두 사람의 분위기는 어땠나.

두 사람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좋았다. 이혼이 아닌, 어떤 법적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찾아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 배려하는 마음도 있고,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다. 최 전 회장이 “이혼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다툼이 심한데, 우리는 부부관계는 끝나지만 인간적 관계는 계속 갈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두 사람이 이혼해도 장은영 씨는 최원석 전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산학원의 이사직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의결권이 있는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 것은 장은영 씨에 대한 최 전 회장의 신뢰가 남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혼 후 여러 차례 큰일을 겪으며 마음의 병 얻어

- 결국 이혼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뭔가.

최원석 전 회장은 “장은영 씨가 젊은 나이에 시집을 와서 며느리도 보고 사위도 봤다”며 안쓰러워했다. 장은영 씨는 많은 식구들의 새어머니로, 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역할을 다했고, 최원석 전 회장이 법적으로 어려운 문제(2004년 배임 및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를 겪을 때도 여러 가지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최원석 전 회장이 몇 년 전 몸이 아팠을 때(2006년 아들 은혁 씨에게 신장을 이식 받았다)는 병원을 지키며 병간호에도 최선을 다했고…, 결혼 이후 계속 큰 산들을 넘어온 셈이다. 이제야 그 산을 다 넘고 평화가 찾아왔는데, 막상 자신의 가정은 없다는 느낌이 들어 힘들어한 것 같다. 장은영 씨는 “회장님은 너무나 큰 인물이고, 그릇이 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여자이기 때문에 그 큰 그릇을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웠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 그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해준다면.

“달리는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결혼 후 여러 가지 큰일을 치를 때는 오히려 힘든 줄을 몰랐을 것이다. 막상 자식들의 혼사를 잘 치르고, 최 전 회장의 법적인 문제도 해결되고, 신장 이식 수술 후 건강도 회복하고 나니 장은영 씨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한다. 30대의 그 젊은 나이에 며느리와 사위를 보고, 손주들이 찾아오면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런 과정에서 쌓인 버거움이 계속 누적됐던 것이다.

- 이혼이 자녀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얼핏 보면 최 전 회장의 자녀가 많으니까(4남 1녀) 그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다. 자녀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원만했다. 자녀들도 새어머니를 무척 잘 따랐고, 장은영 씨도 평소에 자녀들 칭찬을 많이 했다. “다들 외국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매너도 굉장히 좋고, 나를 어머니로 선선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굳이 자녀 문제라면 최 전 회장의 자녀들과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는 점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장은영 씨는 “만일 우리 둘 사이에 아이만 있었다면 이혼 결심이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장은영 씨는 평소에 조카들도 굉장히 예뻐했고, 자신을 닮은 딸을 갖기를 무척 바랐다. 

- 아이가 있었다면 두 사람의 구심점이 되었을까.

아이가 없다 보니 자기 자신의 가정을 꾸린 게 아니라 최 전 회장 가정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든 것 같다. 장은영 씨는 정말 아내의 역할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본인이 직접 장을 봐서 반찬을 준비하고, 요리를 차리는 등 보통 주부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많이 애썼다. 최 전 회장이 외국에서 다시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애쓸 때 장은영 씨가 유창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에 직접 나섰을 정도로 내조에도 적극적이었다. 당시 최 전 회장은 아내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주부라면 자신이 꾸리는 가정이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하는데, 계속 남편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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