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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24 [소판돈 가라오케]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24 [소판돈 가라오케]
  • 김도형
  • 승인 2024.05.08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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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불현듯 피어오를 때가 있었다.

시험 합격에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수백 명 중에 기껏해야 두 세 명이 뽑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 질때가 있었다.

공부는 도서관이 시끌벅적한 평일에 오히려 더 잘 되었다.

주말이 되어 텅 빈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적적함이 밀려왔다.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은 집에 일찍 돌아가 저녁을 먹고 86번 시내버스를 탔다.

86번 버스는 서면에서 출발해 수정동 산복도로를 경유하여 구덕운동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야간 버스 드라이브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밤에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의 야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주로 중간에서 내리지 않고 그 버스를 타고 다시 집 앞까지 왔는데 어느 날은 남포동에서 내렸다.

걸어서 영도대교를 건너며 바닷바람을 쐬고 다시 버스를 타려고 돌아가는데 어느 건물의 지하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레코드에서 흐르는 노래가 아니고 일반인이 마이크로 부르는 노래 같았다.

호기심이 일어서 내려가 창틈으로 봤는데 둥근 라운드형 테이블 가에 손님들이 빙 둘러앉아서 노래를 하고 있었고 가운데는 음향시설과 신청한 노래를 틀어주는 마스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일본을 통해 부산에 먼저 상륙한 가라오케였다.

그 가라오케라는 것은 반주가 일품이었다.

나도 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주머니에 든 것이라고는 버스 회수권과 천 원 짜리 몇 장이 전부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오니 그 가게의 간판이 있었다.

가게의 이름은 '소판돈 가라오케' 였다.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을 타면 가라오케부터 먼저 가고 말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 가게 주인이 진짜로 소를 팔아서 가게를 차린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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