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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어린시절 / 무대 위에서 불태운 한평생 연극배우 손숙, 어머니로서 어머니를 이야기하다
명사의 어린시절 / 무대 위에서 불태운 한평생 연극배우 손숙, 어머니로서 어머니를 이야기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5.21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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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어린 시절

 무대 위에서 불태운 한평생
연극배우 손숙
 ‘어머니로서 어머니를 이야기하다’

‘어머니’의 모습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 가지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다. 연극배우 손숙에게도 ‘어머니’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그이 역시 누군가의 딸이며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의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그이가 털어놓은 인생 이야기.

취재_ 황정호 기자  사진_ 권오경 기자
장소협찬_ 카페 ‘고-희’(02-734-4907)


    “솔직하게 10년 동안 연극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러나 저를 붙잡은 것 역시 연극이었죠”


갑작스레 내리기 시작한 봄비에 쌀쌀한 기운마저 감도는 어느 날, 짧게 자른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는 배우 손숙을 만났다. 새로이 시작하는 연극 ‘손숙의 어머니’ 공연을 앞두고 분주한 요즘, 그이는 40여 년을 넘게 해온 배우 생활이지만 이번만큼은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한다. 지난 1999년 정동극장 초연 당시 무심코 “20년간 이 연극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겠다”고 한 말을 이제 절반쯤은 지켰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한 말이었어요(웃음).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죠. 그때 제 나이가 50대였으니 20년을 해서 70대가 되면 그것으로 내 연극 인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때가 되면 역할에 딱 맞는 나이가 되겠다 싶기도 했고…. 그런데 정말 이렇게 10년째가 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네요.”

10년 전과 지금, 현실의 시간은 흘렀어도 무대에 설 때의 느낌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그이. 그때나 지금이나 무대 위의 ‘어머니’는 그 옛날의 어머니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무대 밖 세상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나날이 변해온 듯하다. 어머니로서, 또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배우로서 그이는 그러한 변화가 아쉽기만 하다.
“작품 속의 엄마가 살아온 그 시절만 해도 그렇고 또 10년 전에도 똑같았어요. 엄마는 무조건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했죠. 그런데 그 사이 엄마라는 말의 느낌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식을 위해 완전히 나를 희생하는 엄마는 이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나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엄마들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고 있는 이 작품의 엄마 역할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무수히 떠올렸던 ‘연극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그이의 인생 대부분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극 무대. 그러나 때때로 무작정 떠나고 싶은 생각 때문에 고민을 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연극계의 어려운 상황은 배우로서 최선의 무대를 선보이고 싶은 그이의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요. 그렇지만 연극 공연을 준비하기까지의 환경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열악하기 그지없죠. 게다가 볼거리가 많아지는 세상에서 홍보를 한다고 해도 관객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이런 시대에 내가 연극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존심뿐인데, 때로는 그 자존심마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다시금 그이를 잡아준 것 역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작품 ‘어머니’였다. 심각하게 그만둘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20년 하기로 했잖아’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를 다독였다는 그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그이조차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관객들 앞에서 말한 이상 그것은 자신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무대에 오른 지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느낀 것이 있다면,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죽겠다’는 표현은 그리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배우가 무대에 선다는 것은 혼자만의 욕심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때론 고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예전에 런던을 갔을 때 연극 한 편을 봤어요. 굉장히 유명한 원로배우의 공연이었는데, 오랫동안 좋은 연기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분이었죠. 그러나 무대에 선 그를 보니 연세가 여든 살은 돼 보였어요. 대사도 전달되지 않을뿐더러 감동조차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 공연을 보면서 속으로 문득 ‘그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이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을 배우 본인이 깨닫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어머니의 딸은 또다시 세 딸들의 어머니가 되고

몇 년 전 그이는 에세이집을 발표하며 자신의 가정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 있다. 동갑인 아버지와 사랑이 아닌 의무로 평생을 살아왔다는 그이의 어머니. 자식을 위해 본인의 한평생을 오롯이 희생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그이를 걱정했다. 그이 역시 그런 어머니처럼 세 딸을 낳고 키워왔지만, 어머니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 

“제 어머니는 지금 제가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이야기 속 어머니와 같아요. 어머니 세대에는 무조건 가정이 우선이었죠. 결혼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식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만이 여성의 본분이던 시절이었어요. 어머니가 산 시절에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거죠. 그러나 제 경우는 달랐어요. 우리 세대는 굉장히 과도기적인 어머니인 것 같아요. 때론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네요(웃음).”
결혼을 하고 세 딸을 낳아 키우면서도 그이는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 세대와는 다르지만 그이 세대 역시 일하는 여성이 드물었던 시절. 그럼에도 딸들은 모두 잘 자라줬다.

“아이들은 굉장히 독립적으로 자라줬어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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