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1 02:10 (토)
 실시간뉴스
안나푸르나 등정 생중계한 KBS 정하영 촬영감독
안나푸르나 등정 생중계한 KBS 정하영 촬영감독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5.28 14: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 방송국 내에서는 박대기 기자보다 더 유명해지다

정말 그 순간은 긴박해 보였다. 세계 최초 HD 생중계에 도전하며 산소통에, 카메라를 짊어지고 오 대장과 함께 산을 오른 사나이. 그에게 눈사태가 덮쳤다. 화면으로만 보아도 ‘죽음의 기운’이 느껴질 만큼 긴박한 순간이었다. 만약 내가 생방송 중 그런 위기에 봉착했다면 어떠했을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주저앉았을까? 아니면 마이크를 꼭 쥐고 있었을까? 그런데 방송으로 전해져오는 그의 목소리, 감동이었다.
“카메라 잡아! 카메라 잡아!”

조수빈 같은 방송국 소속이라 그런가요. 뉴스를 진행하면서 오은선 대장보다 더 뵙고 싶었어요. 그런데 훨씬 체구가 클 줄 알았는데,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네요.
정하영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몸이 힘들어서요. 일부러 체중을 70kg 안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늘 일정하게 하는 편이에요.
조수빈 지금 KBS 내에서는 박대기 기자보다 더 유명해진 것 아시죠?
정하영 그러게요. 산에서 내려와 서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했는데, 첫마디가 “아빠, 박대기 기자보다 더 유명해졌어” 하더군요(웃음).
조수빈 방송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눈사태가 일어난 장면이 있었어요. 그 화면을 보면서 무척이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아차’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카메라 잡아. 카메라 잡아” 하시던데요. 그 와중에 역시나 프로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하영 저 멀리서 눈사태를 보곤, 멋있다 하는데 바로 우리 쪽으로 오더라고요. 너무 커져서 오는데 순간 두렵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하는 비유로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고가의 장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조수빈 앵커도 그 상황에서 마이크는 잡을 것 아닌가요?
조수빈 전 당장 마이크 던지고 제 몸을 피할 것 같은데요(웃음). 한 수년 전에 그 비슷한 고산을 촬영하다 한 카메라 감독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전 그 장면을 보고 너무 무서웠겠다 싶던데요.
정하영 아마 1999년 일일 겁니다. 5층 크기의 눈덩어리가 무너져 사고를 당한 것이었죠. 저도 물론 걱정과 두려움으로 그 눈사태를 몸으로 받아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조수빈 오은선 대장이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지만, 감독님은 올라간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위험을 감수하고 정상까지 올라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하영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하나 조수빈 앵커도 취재 때문에 전쟁지역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취재할 수 있는 입장이잖아요. 난 촬영을 하는 사람이고, 그 장소가 히말라야 산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조수빈 만약 무슨 문제가 일어났어도 후회가 없으셨겠어요?
정하영 후회 안 했을 것입니다. 원망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근무명령이 내려올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지원을 받아서 갈 의향이 있는 사람만 간 것이니까요.
조수빈 혹시 방송국에서 위험수당 같은 것이라도….
정하영 조금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위험한 곳이나 고도 4천미터 이상이 되면 정해진 기준이 있습니다. 
조수빈 전문산악인도 아닌데, 오은선 대장과 어떻게 같이 올라가셨나요.
정하영 이번이 아홉 번째입니다. 이전에는 엄홍길 대장을 촬영했고, 오은선 대장과는 작년에만 세 번을 같이 다녀왔습니다. 몇 번 해보니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몸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죠.
조수빈 그럼 몸 상태가 거의 산악인 수준이겠어요. 운동은 평소 어떻게 하셨나요.
정하영 산에 올라가려면 자주 쓰는 근육을 단련해야 합니다. 오은선 대장도 누구 못지않은 꿀벅지의 소유자입니다(웃음). 허벅지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선 자전거나 등산이 필수입니다. 수영은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데 좋고요.
조수빈 가실 때마다 정상까지 촬영한 것은 아니지요?
정하영 이번이 처음입니다. 늘 7천 미터 이상의 4캠프까지 동행하던 것이 전부였거든요.
조수빈 11년 전 엄홍길 대장이 낭가파르밧(8,125m)을 등정할 때 촬영팀에 합류하면서 산악 촬영의 세계로 들어섰어요. 첫 느낌은 어떠하셨나요.
정하영 처음 갔을 때는 고산병이 와서 반쯤 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3일간 베이스캠프에서 먹는 것마다 다 토하고 촬영은 아예 생각도 못했죠. 등반기술도 없고, 눈과 얼음, 빙벽… 다 생소하기만 했어요. 같이 다녔던 셰르파에게 올라가고 하강하는 등반기술을 배우고, 아이젠을 신고 눈길 걷는 것 등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조수빈 11년이 지났으니 이번에 갔을 때는 고산병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오은선 대장도 힘들다는 정상을 함께 가 촬영까지 하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하영 정상을 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죠. 체력과 날씨가 허락하면 시도를 하려 마음먹었습니다. 일주일 먼저 네팔로 떠났는데,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년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한번 고소에 적응되면 6개월은 지속된다고 하더라고요. 5천4백 미터 이상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고개에서 하룻밤 자고 내려오는 등 적응시간을 갖고 베이스캠프로 간 것이죠.

11년간 5개의 산을 아홉 번을 다닌 산 전문 촬영감독

TV를 보는 사람들은 화면에 비치는 아나운서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방송국 안에는 우리 같은 진행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자기 분야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는 안나푸르나’ 방송은 카메라 뒤에 있어 언뜻 놓치기 쉬운 ‘촬영감독’이란 분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사람들이 안방에 앉아 안나푸르나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위험을 무릅쓰고 카메라를 짊어진 한 남자의 집념 덕분이었다. 아나운서도, PD, 작가도 그 순간만큼은 숨죽이고 지켜봐야 했다. 그 높고 험한 산 위에서 우리에게 안나푸르나의 드넓은 품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오직 그뿐이었다. ‘화면’만이 그 순간엔 주인공이었다. 그는 ‘일’이기 때문에 올랐을 뿐이라 말했지만, 난 정말 감사했다. 같은 방송인으로서 그의 사명감이….

조수빈 안나푸르나를 풍요의 여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품은 쉽게 허락을 하지 않잖아요.
정하영 11년간 아홉 번을 다섯 개의 산을 다녀봤는데, 이번이 가장 두려움이 컸던 산이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눈사태가 빈번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과정이 긴장과 두려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자면서 베이스캠프에서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죠.
조수빈 아무래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운데 생(生)과 사(死)가 공존을 하기 때문이겠죠.
정하영 그렇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정상에서는 사실 기쁨보다는 방송을 해야 했으니, 가면서도 마이크가 잘 연결이 될까, 배터리는 충분할까… 별별 걱정을 다 하게 되는 것이죠.
조수빈 정상까지 함께한 카메라가 특히 궁금하네요. 게다가 세계 최초 HD 생중계였다고 해서 더 화제였잖아요.
정하영 베이스캠프엔 짐과 장비가 많았지만,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품을 줄여야 했습니다. 그 작업이 없었다면 중계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 산소통 무게까지 있었으니까요. 정상을 가는 데 자신의 짐이 10kg 가까이 되면 힘이 든다고 합니다. 오은선 대장도 물 한 통만 차고 스폰서 깃발을 품에 안고 배낭 없이 올라갔거든요. 저는 셰르파에게 장비 일부를 넘기고 카메라 1∼2kg, 산소통 4kg을 메고 올라간 것이죠. 
조수빈 그 무게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힘들다고 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요.
정하영 버릴 수도 없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