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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희,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온 간절한 메시지 독점 공개
서정희,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온 간절한 메시지 독점 공개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9.04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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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자를 질투하며, 제 자리를 뺏길까 봐 울었습니다”

본지는 미국에 거주하는 서정희가 보내온 메시지를 단독 공개한다. 이 메시지에는 그녀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퀸의 김재우 전 편집장과 서로 주고받은 메시지에 그녀의 아픈 심경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본지는 서세원의 입장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했지만 서세원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점도 아울러 밝힌다. 이혼소송이 불거진 이후 서세원 그는 긴 침묵을 하고 있다(편집자 주). 

▲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신앙의 힘으로 힘든 시간으로 보내는 서정희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마음의 고통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거의 못하던 그녀. 한때 몸무게가 40kg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건강까지 잃은 상태였다.
굳건한 믿음과 사랑으로 수많은 힘듦을 버티고 넘어선 부부. 그렇다 보니 이들 부부에게는 잉꼬라는 타이틀보단 동지란 느낌이 강했다.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들의 여러 잡음을 지켜봤을 때도 두 사람에게만은 ‘단언컨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부부간의 문제는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일이라 함부로 판단할 순 없다. 한데, 지난 12년간 지켜봐 온 그녀의 집착(?)과도 같은 가족 사랑을 떠올리면 지금의 위기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취재 김재우 | 사진 매거진플러스

2002년 여름, 서세원은 연예계 PR 비리 사건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미국 도피 생활. 하지만 지병인 허리디스크의 악화로 10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다. 이렇게 남편의 일이 세간의 도마 위에 올라설 때마다 함께 마음고생 하던 아내. 간절한 기도의 힘 덕분이었을까. 남편은 연예계 복귀 대신 목회자의 길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한데 얼마 전,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뒤이어 부부의 갈등이 온 세상에 낱낱이 드러났다. 남편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대변하며 희생해 온 그녀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일이 있을 때마다 취재를 위해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렸던 기억들.
쉽게 마주칠 수도 없었지만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곁을 내주지 않던 그녀. 제대로 된 인터뷰는 고작 한 번이었을 정도로 그녀는 언제나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안부가 걱정됐다. 조심스레 작은 위로만 전했을 뿐인데, 그녀는 꽤 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메시지는 여러 날, 그리고 많은 이야기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 매일 새벽, 수많은 대화가 이어지던 서정희, 그녀와의 대화창
7월 8일
너무 감사해요. 예전엔 무조건 방어하며 세상이 남편을 힘들게 하면, 보호하려고 몸부림치고 차단하고 안 보고 안 듣고 관계를 끊고! 그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철저히 신앙생활로 버텼던 잘못된 모든 삶을 회개합니다. 죽어도 백 번은 죽고 싶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안부 전해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너무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예전에 무례히 행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감사해요! 목사만 되면 모든 것이 회복될 줄 알고 생명 걸고 달려왔습니다. 남편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요? 바로 목사의 본질로 돌아오기를요~. 아프고 체력도 안 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세상은 지금 말씀 묵상을 할 때가 아니냐고 물을 겁니다. 그래요, 아프고 제정신이 아니고 아파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미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울지 않겠습니까?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7월 11일
다시 서정희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영적으로 대단하다 했지만 지금 보니 다 거짓입니다. 그저 너무 연약한 ‘그냥’ 여자였습니다. 어린 여자를 질투했습니다. 제 자리를 뺏길까 봐 울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온 32년인데요. 이 가정이 깨질까 봐 벌벌 떨며 살았습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움이 생겼습니다. 예수 안 믿었다면 총이라도 쏘고 자살하고 싶었습니다. 제 안에 분노가 생기는 걸 보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약합니다. 한심한 여자일 뿐이었습니다. 그 좋은 믿음도 다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기도도 하기 싫었습니다. 매일 우는 바보입니다. 입만 가지고 신앙이나 떠들면 뭐합니까? 망신당해도 당연합니다. 도대체 주님 위하여 한 일이 뭡니까. 매를 맞아야 정신 차립니다. 남편이라는 우상 단지를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교주가 따로 없었습니다. 김정은이 집에 있는데 뭘 할 수 있습니까? 전도사 타이틀을 반납해야 합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쓰나미처럼 쓸어 버려야 합니다. 이틀 동안 죽을 것 같이 영적 전쟁을 했습니다. 육신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손가락 끝까지 쑤시고 아픈 것이, 마치 수만 개 바늘이 온몸을 찌르고 긁어내는 느낌입니다. 살기 위해 온갖 것을 다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가리는 것 자체가 사치니까요. 기뻐하세요! 이제 40kg을 돌파했습니다. 이젠, 진리가 반드시 이김을 믿습니다. 사랑해 주고, 믿어 주는 자들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살 가치가 있습니다. 더 이상 불의와 타협하고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되어 돌아오기를 오늘도 기도하겠습니다 -

7월 17일
기도 중에 ‘네가 아프냐, 너보다 더 아픈 자들을 돌아보라’는 메시지에 눈물이 납니다. 윤동주의 서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 구절이 떠오릅니다.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이 이 새벽 저를 깨웁니다. ‘우는 자와 같이 울라’~. 아주 작은 풍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자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어졌습니다.

7월 18일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 있지요. 억울한 게 아니라 믿음이 없다면, 신앙이 없다면 백 번 자살할 일입니다. 원래 변명 못하는 성격입니다. 침묵하며 살아온 세월을 누가 알겠습니까? 세상은 몰라 줘도 주님만 아시면 된다고 굳게 믿으며 살았지만, 지금 전 많이 아픕니다. 저를 사랑해 주셨던 팬 여러분과 교회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께 실망을 드린 것이 너무 죄송합니다. 저를 잘 아시잖아요. 32년 결혼생활 동안, 신앙이 없으면 사람으로 견딜 수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믿음이 없는 남편을 위해 믿음만 생기면, 해결될 줄 알았고 마치 어미의 마음으로 참고 인내했습니다. 신학 공부할 기회가 왔을 때에는 다시 희망이 생겼습니다. 목사만 되면 모든 것이 변화될 줄 알았습니다. 목회자가 된 후 1년 동안은 너무도 많은 변화에 기뻤고, 세상을 다 얻은 듯 보였으나 잠깐이었습니다. 다시 서서히 무너져 세상 습관으로 돌아가더라고요. 폭행 사건 후에도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던 사람. ‘잘 해결되었다’며 가정을 지키려는 모습을 하면서 저를 사기죄로 고발하는 것을 보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입니다.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결단하지 않으면 생명처럼 섬겨 왔던 한국 교회를 더럽히는 것 같은 기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되어 돌아오기를 오늘도 기도하겠습니다.

(중략)

그녀의 고백은 거의 매일 이어져 왔다. 어떤 날은 너무도 솔직한 고백에 자신도 당혹스러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복받쳐서 보내다 보니 부끄럽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바로 보내 오기도 했다.
내용 전부를 지면에 소개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혼란스러운 지금의 마음은 메시지를 통해 오롯이 전해져 왔다. 어떻게 지켜 온 가정인데, 그 가정을 한순간에 놓게 될 위기,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마음, 그리고 결심! 아마 조금이나마 비슷한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아주 조금은 그녀를 이해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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