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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서태지가 돌아왔다
진짜 서태지가 돌아왔다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11.06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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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페셜

신비주의보다 빛났던 아빠와 남편의 얼굴

데뷔 22년차, 서태지는 대중 앞에 선 첫 해부터 지금까지 늘 최고의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음악적 수준은 국외 뮤지션들과 견줄 만큼 의미가 있었고 메시지 역시 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늘 두꺼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으면서 새 앨범 발매 시기에나 단독 무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서태지, 최근 그에 관련된 이야깃거리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어찌 됐건 친근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컴백한 그의 일면은 애처가이면서 아이 이야기에 설레는 아빠였다.

취재 이윤지 기자 사진 서태지컴퍼니 제공

 
서태지가 TV에 나왔다. 늦은 밤 스타들을 초대해 수다 꽃을 피우는 <해피투게더>에. 흥미롭고도 믿기 힘든 ‘출연설’은 사실이었고 편안한 니트 차림, 여전히 앳된 얼굴의 서태지는 동갑인 유재석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조심스러운 질문들에 쾌활하게 답변했다. 어린 신부 이은성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새 곡을 듣고 태동으로 응답했다는 아이 이야기까지 진지하면서도 거침없이 말했다. 항간에서는 이 역시 전략이 아닐까 시큰둥하기도 했지만 그는 신곡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소개해 주었고 아이유를 보컬리스트로 내세워 선발매한 타이틀 곡 ‘소격동’은 언제나처럼 서태지라는 이름과 함께 주요 음원 차트를 점령했다.
 
서태지, 대중에게 한 뼘 더

평범한 인물이 아니어서였을까. 영원히 숨겨둘 것만 같았던 서태지의 사생활은 스케일부터 달랐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이지아가 전 부인이며 두 사람이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를 통해 팬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더군다나 소송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이 속속들이 터져 나왔고, 2014년을 목표로 준비 중이던 서태지의 새 음반보다 그의 결혼과 이혼에 더 많은 관심이 몰렸던 것은 당연했다.
잠적에 가까운 활동 중단 기간으로 팬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기 일쑤였고 앨범을 통해서나마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문화대통령’의 믿기 힘든 이야기는 당사자의 침묵 속에 참 다양한 추측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이번 9집을 아주 이색적으로 발표하겠다고 나섰다. 특설무대도 단독 콘서트도 아닌 TV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들과 오랜 회포를 풀겠다는 선언을 한 것. 그도 그럴 것이 이지아가 <힐링캠프>를 통해 지난 일들을 일부 털어놨고 아직 이슈의 온도는 식지 않았던 터였다.
그가 ‘서태지 쇼’ 같은 형태가 아닌 유재석과 <해피투게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것을 해명하고 또 무슨 새로운 사실을 털어놔 줄까에 대한 기대심리는 높아져 갔다. 방송인 유재석과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그간 자신에게 쏟아졌던 질문에 답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도 나누고 싶었을 그.
방송 최초로 아내 이은성과 데이트하며 찍었던 해외여행 사진과 결혼식 날의 고운 한복 자태를 공개했다. 지난 8월 출산한 딸 사진도 함께였다. 서태지는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팬들과의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 형식의 메시지와 사진들을 간간이 공개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사진들은 매우 일상적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더욱 특별했다.
서태지는 딸의 태명이 삐뽁이라고 소개하며 “신곡을 들려줬는데 '삐뽁삐뽁' 하는 부분에서 발차기를 하고 귓방망이를 날리더라. 다른 노래를 들려주면 별 반응이 없었다”고 이유를 밝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MC들은 서태지에게 전 부인인 이지아에 대한 질문도 시도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외국에 있을 때 접해서 사실 그렇게 큰일인 줄 몰랐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심각성을 느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당시엔 많이 어렸었고 그때는 잘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남녀 사이가 대부분 그렇듯 생각처럼 안 됐다며 “그분도 힘들었을 거다. 내가 남자니까 다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제 아빠가 된 그는 비밀 연애의 비결과 함께 이은성과의 설레는 러브 스토리를 친절하게 풀어내주었고 게이설, 재벌설, 아내 감금설 등에 대한 여러 루머를 해명하기도 했다. 친근하게 다가온 그를 단 몇 시간 동안 본 것으로 ‘서태지도 평범한 남편, 딸바보 아빠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에게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아우라가 걸쳐져 있고, 남편과 아내로서의 평범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증명했다 해도 그 모습은 남달랐다.
서태지가 시도한 이번 ‘소통’은 대중이 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특별한 계기였다. 동시에 그가 침묵을 매개로 한 신비주의를 스스로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시각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 음악은 매번 새롭지만 서태지 고유의 색을 가진 새로움이었고 그의 메시지는 애매모호하면서도 강력했다. 아이유를 내세워 ‘소격동’을 들려준 그는 너무나 전략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주 순수한 구석을 지닌 남자로 보이기도 한다.

‘소격동’, ‘크리스말로윈’ 시대 속의 서태지

 
서태지의 ‘소격동’은 달콤한 사랑이야기 같으면서도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본인 역시 ‘예전에 살았던 동네다. 그 시대의 추억과 아련한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그가 ‘시대유감’을 품고 있다는 생각은 지우기 힘들다. 소격동은 군사정권 당시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고문하던 국군기무사령부가 위치하던 곳이다. 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정신교육을 자행했던 곳.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소격동’은 암흑 같았던 80년대의 사회상을 은유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서태지는 오래 전 유년 시절 군사정권의 폭력에 숨 죽이며 많은 것을 빼앗겨야 했던 주민들의 아픔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해 두었을 것이다.
크라스마스와 할로윈의 합성어인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 역시 낯선 느낌의 조합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서태지가 소셜 음악감상 서비스 카카오뮤직에 개설된 자신의 스타 뮤직룸에 ‘크리스말로윈’에 관해 직접 올린 글에 의하면 “9집의 두 번째 에피소드이자 타이틀곡인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은 세상에 규정된 선과 악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곡”이다. 그는 “‘크리스말로윈’은 크리스마스와 할로윈의 합성어로 세상에 규정된 선과 악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곡입니다. 어린 시절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숨겨진 진실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물론 신나게요.”라고 설명했다.
발매 당일 국내 10개 음원차트에서 ‘퍼펙트 올킬’을 기록했다. 일렉트로닉과 덕스텝을 녹인 독특한 사운드에 서태지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사로 풀어낸 이 곡은 평론가들을 통해 ‘일렉트로 팝에 영향을 크게 받아 트렌디 함을 가미하되 서태지만의 색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선악의 양면성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편안하다’는 등의 호평을 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서태지의 독특한 에너지는 늘 ‘세상’과 ‘시대’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통해 새 논의가 일어나도록 시도한다는 데 있다. 그 자신이 ‘사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던 놀랄 만한 이야기는 어쩐지 벌써 사그라질 조짐이 보이고 그의 새 사운드와 가사가 보다 폭발적인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서태지’라는 이름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쉽사리 그 영향력을 잃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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