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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작별-50여년 연기 여정 마친 김자옥
슬픈 작별-50여년 연기 여정 마친 김자옥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2.16 0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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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공주’ 영원히 잠들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배우 김자옥이 11월 16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63세.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최근 폐로 암이 전이돼 투병 중이었다. 김자옥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했다. 최근까지 주위에 투병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하게 연기 활동을 해온 그이이기에 그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김자옥이 지내온 연기여정을 살펴봤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매거진플러스

사진 속의 김자옥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작고 아담한 체구, 소녀 같은 미소와 여린 감성. 50여 년의 방송 인생 중 드라마 속에서 악독한 얼굴을 별로 보여준 적 없는 그이다.
젊어선 청순가련의 대명사였고, 나이 들어선 ‘만년 소녀’였다. 때론 ‘공주’란 닉네임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비틀기도 했다. 올 초 동료 여배우들과 해외여행을 떠나는 tvN <꽃보다 누나>에서도 그녀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 같았다.
그랬던 그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1월 19일 오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그이의 발인 예배가 있었다. 이날 발인 예배에는 박미선, 이경실, 이성미, 조형기, 송은이, 강부자, 강석우 등 많은 동료 연예인이 참석해 고인 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동생 김태욱 아나운서는 비통한 표정으로 말없이 운구 행렬을 따라 걸었다. 운구차가 장례식장을 떠나자 유족과 동료들 사이에서 “가지 마, 가지 마”라는 애잔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남편 오승근은 발인 예배에서 “이제 아내와 헤어지려 한다"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밝은 미소와 따뜻한 성품으로 주변 밝히던 사람

김자옥은 지난 2008년 건강검진 도중 대장암을 발견, 수술을 받았다. 최근 암이 전이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눈을 감았다. 아들의 결혼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 크다. 소속사 측은 “11월 16일 오전 7시40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했다.
최근 암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해왔으나 11월 14일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입원했다”고 밝혔다. 소속사 이상민 대표는 “여러 차례 수술과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약한 상태였다. 주무시는 것처럼 편히 가셨다. 유언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이는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올 초 <꽃보다 누나>에 이어 3월 종영된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출연했다. 5월에는 악극 <봄날은 간다>에도 출연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 윤문식은 “암 치료 때문에 연습에 늦은 적은 있지만 예정된 공연은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며 “연극을 자주 하는 배우가 아닌데도 연극을 경외하고 성의를 다하는 모습이라 과연 스타는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고인은 생전 늘 밝은 미소와 따뜻한 성품으로 주변을 환히 밝히던 사람이었다. 특히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연기 생활을 병행하며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용기를 잃지 않아 귀감이 됐다. 그이는 지난 2013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암 판정을 받았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암 판정을 받은 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주변을 더욱 따뜻하게 돌아보고 가까운 가족들에게 좋은 말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던 한 여배우의 표정은 늘 밝은 기운이 맴돌았다.

70년대 트로이카에서 ‘국민 공주’로 사랑받아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자옥은 CBS 기독교방송 아역 성우로 출발했다. 1965년 배화여중 시절 TBC 드라마 <우리집 5남매>에 출연했고,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뽑히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1971년 서울중앙방송(지금의 KBS 한국방송공사)에 스카우트 되어 드라마 <심청전>의 히로인으로 발탁되며 스타덤에 올랐다.
1974년, MBC 문화방송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계절’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성우로서 겸업을 선언하였고, 한국방송대상 성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5년 김수현 작가의 MBC 드라마 <수선화>로 그이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그이는 한혜숙· 김영애 등과 함께 70년대 안방극장의 간판 스타가 됐다. 앳된 외모로 청순가련형의 대표 주자였다. 드라마 <사랑과 진실> <유혹>, 영화 <보통 여자> <O양의 아파트> 등이 대표작이다.
인기 절정이던 1980년 가수 최백호와 결혼한 그이는 이혼 후, 가수 오승근과의 재혼 등으로 잠시 공백을 가진 뒤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그이는 1990년대 들어 대변신을 시도한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철없는 공주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아저씨 나한테 홀딱 반했지” 같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그는 ‘공주병 이미지’로 두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휘감고 ‘불치의 전염병’으로 알려진 공주병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전국적으로 공주병 신드롬이 유행했다. ‘미나공’(미안해 나 공주야) ‘미나자’(미안해 나 자옥이야) 같은 유행어도 등장했다. 1996년 그가 발표한 ‘공주는 외로워’ 앨범은 60여만 장이 팔렸다.
암 발견 이후에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오작교 형제들>에 출연했고, 지난 1월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로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 등 선후배 여배우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 지난 5월에는 연극 ‘봄날은 간다’로 무대에 서는 등,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정적으로 살아간 배우였다.
젊은 시절에는 지고지순한 한국의 여인상으로, 중년의 나이에는 공주병에 걸린 푼수 아줌마로, 환갑을 넘긴 뒤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유유자적한 ‘꽃누나’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긴 엔터테이너. 자그마한 체구에 덧니가 살짝 보이는 미소로 폭넓게 사랑받은 친근한 여배우.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생이 좌절하거나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스타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사진=매거진플러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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