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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반가운 진짜 배우, 문정희
참 반가운 진짜 배우, 문정희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5.02.21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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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

연극과 뮤지컬계에선 아는 이들만 알던 빼어난 주인공, 수준급 살사 실력. 문정희는 탄탄한 히스토리를 가진 정말 괜찮은 배우다. 드라마 <마마>의 서지은을 통해 비로소 주목을 받은 그녀에게 참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요즘이다. 서늘하고 맑게, ‘말하듯’ 연기하는 여배우 문정희.

취재 이윤지 기자 사진 MBC 제공
 
배우 문정희는 늘 역할 그 이상을 해왔던 배우다. 20대와 30대의 경계에서 때로는 새침한 싱글, 또 어떤 때에는 수굿한 아내의 몸짓으로 기복 없이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필모그라피를 채워 왔다. 요즘 부쩍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문정희는 화면 안에서 어색했던 적이 없다.

문정희의 재능과 겸손

<마마>의 서지은 역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정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송윤아’로 시작해 송윤아로 끝난 드라마’라는 보도 타이틀이 일색이었을 만큼 <마마>는 오랜만에 안방으로 컴백한 스타를 앞세웠었다.
하지만 <마마> 속 엄마와 아들 그 이상으로 ‘서지은’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단 몇 회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송윤아가 분한 ‘한승희’와 아주 다르면서도 투샷이 잘 어울려야 했고, 주인공 ‘한승희’가 주도해야 하는 부분만큼 ‘서지은’이 주어야 하는 임팩트도 가볍지 않았다. 문정희를 일찍이 알아본 사람이라면 이 인물에 대한 기대와 안정감이 더 컸을 것이다.
단아한 생김새와 화사한 눈웃음, 고집스러운 입매와 절망을 말할 때의 텅 빈 동공을 문정희는 모두 다 갖고 있다. 20개가 넘는 드라마 필모 중, 주인공이었던 때는 거의 없었지만     역할의 경중과 무관하게 문정희의 씬은 항상 견고하고 진중했다.
극 중의 그녀는 대부분 참 우아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실제로 만나 봐도 그 같은 분위기에 매료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이를테면 <연애시대>에서 손예진과 감우성 사이를 과감하게 파고들어 긴장을 주었던 ‘유경’을 들 수 있다. 자신을 첫사랑으로 기억하는 남자 ‘동진’을 성인이 돼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전 부인인 ‘은호’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남자와의 에피소드를 매끄럽게 이끌어나갔다. 차분한 자태와 음성, 마치 가상 속 유경의 히스토리를 그대로 복제해놓은 듯 착각하게 했던 것이 바로 그때의 문정희다.
<달콤한 나의 도시> 속 문정희는 또 다르다.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으로 갓 30살을 지나는 중인 세련된 ‘요즘 여자’였던 ‘유희’는 유머러스한 일면과 단단한 자의식을 함께 가졌던 매력적인 캐릭터. 아주 감정적인 모습과, 또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넘나들던 도시 속의 그 여자는 어쩜 문정희 자체로 착각할 만큼 천연덕스럽게 유경을 소화해 냈다. 비단 엇비슷한 배역을 맡게 된 우연의 일치로, 문정희의 여자들이 무리 없이 작품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아주 극적인 캐릭터를 힘주어 해내기보다 평범해 보이기 쉬운 누군가가 되어 섬뜩할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힘은 분명 독보적이면서도 뛰어난 재능이다. 그녀가 겸손한 사람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능숙함 속에는 분명 깊은 고찰과 연구가 있지 않나 싶다. 몇 년 전 결혼식에서 문정희는 ‘화려하기보다 삶이 묻어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혼이 삶의 깊이를 더 담게 하는 연기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내비쳤던 스스로의 확신은 아마 앞으로의 그녀를 더 지켜보고 싶게끔 하는, 열정 그 이상의 무엇이었던 것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 프랑스 유학파. 미 브로드웨이에서 큰 관심을 갖고 러브콜을 했을 정도로 뮤지컬에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다. 수준급 댄서이기도 해서 특별한 실력을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적도 잦았다. 배우 입장에서는 씁쓸한 표현이겠지만 문정희는 ‘주인공의 친구’(특히 <마마>에서는 정말 이 표현이 적격이었다.) 역할을 참 자주도 맡아 해 왔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마마>의 한승희와 서지은이 후반에 가서는 동등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내걸며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사랑과 우정’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그런데 ‘누군가의 친구’가 남긴 여운은 늘 길고 신선해서 그 존재를 다시 보게 해 왔다고 할까.
기억을 고쳐보면 문정희에게 주어진 ‘친구’는 애초에 ‘주변 인물’의 대체어가 아니었다. 쉽게 보면 그 말을 먼저 떠올리게도 되겠으나 문정희의 고저 모두 수려한 음성, 안정적인 대화체가 절실히 필요한 인물들이 그녀에게로 갔다고 여기는 것이 더 옳다.

고요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박수가 어울리는

나긋나긋한 말, 차분한 매무새가 미리 알려 주듯 문정희는 갑작스러운 환호와 집중에 동요하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갈채 받았던 작품을 막 끝내고, 무엇보다 열심히 그녀가 이야기한 것은 바로 영화 <카트>.
‘많은 이들과 공감하고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욕심냈다’는 이 시나리오는 정말 각계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귀한 의미들이 나눠졌다. 개봉 인터뷰에서 문정희는 ‘우리 현실’에 대한 공감에 대한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냈다. 배우 이전의, 성숙하면서도 순수한 한 사람이 말하는 영화의 미덕이란 게 어떤 것일까, 누구라도 한 번 쯤 눈을 돌리고 싶게끔 하는 순간이었다.  
학전에서 연극으로 데뷔한 그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내게 쉽게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다”는 말로 운을 뗐고 가진 실력으로 오디션을 보면 정당하게 역을 따낼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는 옛 시절 이야기였다.
공공연한 연예계의 관행이 어쩌면 잘 준비돼 있던 배우의 의욕을 맥없이 꺾었을 뿐 아니라 기회를 얻는 것에도 방해를 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다른 방면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 속상하고 불편했던 문정희는 유학길에 올랐고 지금, 참 괜찮은 자리에 다시 올라 있다. 오랜 팬들로서는 여간 뿌듯한 나날들이 아닐까 싶다. 일찍부터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은 분명 생각보다, 더 많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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