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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로맨스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 이윤지
  • 승인 2015.08.28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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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망설이는 남과 여 17년
▲ 사진=SBS

긴 시간 우정을 나눠온 남녀가, 그것이 혹시 우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나 다시 생각해 본다. 하지원-이진욱 주연의 <너를 사랑한 시간>은 풋풋한 시절부터 이어져온 애매모호한 둘 사이의 관계를 소재로 삼고 있다. 모두가 함께 그리워할 만한 시간들로 거슬러 올라가며 첫사랑과 성장통을 말하는, 설레는 한여름 밤의 꿈.

<너를 사랑한 시간>은 서른 네 살, 생의 애매모호한 지점을 파고들며 멀리서 보기엔 팍팍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시간의 의외의 사랑스러움 같은 것들을 우리 대신 발견해내 주는 드라마다. 서른을 지난 여자의 사랑은 대체로 속물스럽든지 애처롭거나 우스꽝스럽게 말해지곤 한다. 그것도 아니면 단계 없이 무작정 성숙해져 버린 인물의 새 얼굴을 보여주며 서둘러 ‘서른 즈음’은 이상적인 그 무엇으로 뭉뚱그려진다. 하나와 원은 요샛말로 서로 ‘남자사람친구’, ‘여자사람친구’인 셈이다. 그들의 역사를 대충 건너뛰는 대신 하나하나 빛나는 때를 더 밝혀주는 이야기, <너를 사랑한 시간>으로 들어가 본다.

서른, 달면서도 쓴

오하나. 꽤 좋은 직업을 갖고 있고 좋은 친구, 좋은 가족을 가진 딱히 서럽지 않은 삼십대다. 조금 지친 얼굴이지만 헤어컬도, 메이크업도 마구 나빠지진 않았다. <너를 사랑한 시간>은 야근을 막 끝내고 힐 속에서 긴장해 있던 발을 꼼지락대며 빼내 러닝화로 갈아신고 데스크탑을 종료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열일곱 살의 나는 스무 살의 나를 그려봤고, 스무 살의 나는 서른 살의 나를 그려봤다. 어느덧 서른도 훌쩍 넘긴 지금, 오히려 난 열일곱 살의 나를 스무 살의 나를 자꾸만 돌아본다. 그럴수록 더 선명해지는 현실. 보고 싶지 않은데 보이는 주름, 촛불도 아닌데 꺼져가는 머리숱.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보란 듯이 날아드는 결혼독촉장, 독신경고장”
여지없이 삼십대 싱글녀는 신경을 세워가며 시달리던 하루 끝, 무언가 아쉽고 또 씁쓸하고 다 끝내고도 긴가민가 싶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당장 이런 하루들을 청산하고 결혼부터, 연애부터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오하나에게는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두’가 있고 성취해야만 하는 일들이 수북히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 지금 그녀에게 시간이란 건 점점, 지나간 것들을 되새기는데 허비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에너지다. 그리고 나이라는 건 굳이 마주보고 싶지는 않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나쁘지 않은데 좋지만도 않은, 한 해 한 해 빨리 지나가는 것 같기도 또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한 늘 양면성으로 공격해 오는 오묘한 말이다. 
<너를 사랑한 시간>의 오하나의 일상이 이 나이대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시간과 나이의 은근한 압박 속에서 실수로 삶을 망치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는 얼굴일 거다.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 방에 도착해 묵직한 가방들을 툭툭 던지고 풀썩 주저앉은 오하나 앞엔 영화 <파니핑크>가 재생된다. Non, Rien de rien(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Non, Je ne regrette rien(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서른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만들어낸 가장 담담한 목소리와 화면이다. 아주 달콤하지만은 않을 거란 예고 속에서 <너를 사랑한 시간>은 시작된다.
대만 작품 <아가능불회애니>(我可能不會愛, 아마 난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 오하나의 키워드로 시작해 오랜 우정을 쌓아온 친구 최원과의 아슬아슬한 감정을 섬세하게 만져가며 둘 사이의 이야기를 점점 확장시킨다. 성장통이라고 부르기엔 좀 늦은 감이 있어서일까, 매회 17년 전 학창시절을 자주 되돌아본다. 그러다보면 10년을 넘어가며 잦아들어 있던 통증이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남녀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너를 사랑한 시간>의 오하나의 일상이 이 나이대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시간과 나이의 은근한 압박 속에서 실수로 삶을 망치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는 얼굴일 거다. 

교복을 입었던 그들의 시간

글쎄, 서로 익숙했던 남자-여자 친구가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다 문득 특별한 관계로 진전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드라마일 뿐이야, 싶은 이야기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있다면 아마 그건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오늘을 맞이했기 때문에 결론을 보지 못한 경우이지 않을까. 하나와 원은 여전히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17년 전 그 때부터 지금까지 둘 모두 말하지 못한 비밀 같은 것을 품고 있는 것 같다. 한창 자신을 둘러싼 갑작스러운 일들에 놀라고 설레고 들뜨는 17살, 또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부단히 누군가 사랑하고 연애에 몰두하기 좋은 20대를 지나 서른 넷. 하나와 원은 이제 너무 들어버린 나이를 가지고 서로를 ‘디스’해가며 더 돈독해진다. 
17년 전 교복에 백팩 패션이 제대로 어울리던 두 사람. 동그란 안경테 덕에 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하나와 커다란 키, 서글서글한 눈매로 은근 인기 있었던 원은 매일 아침부터 만나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도 늘 함께였다. 어릴 적부터 바로 옆집에 살았던 소년 소녀, 공간과 거리는 남다른 시작을 하게 해 주었다. 원은 늘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위태로웠던 순간을 미리 알아채 다치지 않도록 바쁘게 곁을 지켰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관계성이 특별한 마음을 흐릿하게 가려 버리는 속도까지 알 수는 없었다. 또한 하나는 연애에 안달복달하는 때마다 원을 찾았고 때로 자신도 그 자신을 잘 모를 때엔 원에게 선택을 맡겨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냥 친구이지만 가족처럼 오래된 사이’가 돼 갔다. 이렇게 오래, 오랜 친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어떤 까닭으로 원은 늘 어떤 의미를 담은 눈빛이나 말을 숨겨왔고, 들여다볼수록 그냥 친구라고 하기엔 뭐한, 이 관계 속에서 하나는 원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에 대한 묘한 질투와 불안을 익숙하게 넘겨왔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석연치 않은 옆집 남자인 친구와 옆집 여자인 친구에 관해 느긋하게 짚고 넘어갈 시간은 안타깝게도 주어지질 않는다. 전에 없이 엇갈리고 헷갈리는 하나와 원. 굳이 선을 그어 따지지 않아도 그저 좋았던 지난날들을 되짚어 가면서 둘은 관계를 재정비해 나간다. 매일 다른 구두를 신지만 많이 지쳤을 때나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면 오하나는 늘 발이 편한 낮은 신으로 바꿔 신고 걷는다. 슬리퍼나 러닝화를 신고 천천히 걷는 동안 흘러나오는 독백은 조금 느리게 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는 하나의 시간을 잘 보여준다.

오하나의 구두, 최원의 맥주

구두는 여자를 가장 여자답게 보이도록 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아주 세련된 메타포이기도 하다. 하나의 직업을 구두를 어루만지고 고르고 연구하는 MD로 설정함으로써, 드라마의 화면은 물론 인물의 내면이 보다 다양한 이미지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무엇보다 하나의 구두에 관한 지론이 그 자신의 무의식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내 연애 중이던 애인이 바람나 결혼한 다른 팀 후배를 만난 오하나는 축하 대신 ‘30대가 되니 거추장스러운 장식과 불편한 디테일은 편하지가 않더라. 오랫동안 신을 수 있고 발이 편안한 구두가 훨씬 좋다는 것을 이제 안다’고 후배의 디자인에 관해 진실된 충고를 했다.
구두가 그려진 커다란 쿠션이 전면에 보이는 하나의 방, 화려한 화보 페이퍼가 빽빽하게 붙은 벽. 사랑스러운 구두들과 구두상자들이 쌓여 있어 조금 좁지만 생기 넘치는 하나의 자리 같은 것들은 캐릭터의 입체감을 한껏 살린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구두들 사이를 걷는 하나의 발걸음은 가볍다. 계절이 바뀌고 새 디자인이 나오며 끊임없이 달라지는 진열대 앞에서도 고민은 길지 않다. 언제든 빠르게 마음에 들어오는 구두 한 켤레를 고를 수 있고 확신한다. 아마 하나가 마음이 흐린 날에도 변함없이 그 날을 위한, 어제와 다른 구두를 고르고 구두와 일이 있는 회사로 걸어가는 건 그런 믿음 때문일 거다.
오하나의 구두만큼이나 최원의 ‘맥주 한 캔’의 의미도 특별하다. 가볍게 한 잔 할래, 물을 수 있는 초저녁의 맥주, 마스카라가 무지막지하게 번질 만큼 눈물이 나는 날 말없이 몇 캔 내미는 맥주 등은 학생 때 토스트에 케첩을 발라주던 원의 익숙한 위로가 언제까지나 메뉴만 바꿔가며 하나를 지켜줄 것 같단 생각이 들게 만든다. 원은 늘 긴 말 대신 가벼운 말로 마음을 달래준다. 
서른 네 살 원은 항공사 부사무장으로 남들이 알기론 좀 까칠한 남자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눈길은 하나와 있을 때만 보인다. 재잘거리는 하나 옆에서 얄밉게 깐죽거리며 지지 않지만 회상에서도 현재에도 그는 몰래 걱정하고 본심을 늘 숨기고 있다. <너를 사랑한 시간>의 결정적인 키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아직은 헷갈린다. 주인공 남녀의 히스토리를 빠르게 전개하고 또 전환하는데도 아직 밀고 당기는 중심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 아마 한 쪽을 건드린 시소처럼 천천히 무게중심을 잡아나가며 두 사람의 관계는 새롭게 피어나겠지. 또 다른 사건들을 맞이하고 새로운 인연과 조우하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보이지 않던 감정의 진동이 조금씩 공기를 달라지게 한다. 밤이 긴 여름, 옛사랑을 또는 짝사랑의 고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오랜 친구사이’ 두 사람의 공방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가능한, 사랑 이야기

원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저하지 않고 직언하는 쾌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우리로서도 그의 마음을 알아낸 적이 없다. ‘우정’으로 엮여 있는 남과 여의 골치 아픈 난제를 다룬 많은 드라마들에서 그렇듯 남자들은 복잡해진 감정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대충 마음 어느 구석으로 밀어두고 애써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는다. <너를 사랑한 시간>의 원 역시 다르지 않지만 17년 전과 지금, 데자뷰처럼 같은 상황에서 멀뚱히 서 있는 원의 속도는 조금 느리다.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웃음을 짓는 그는 하나와 우리 모두를 못 견디게 궁금하도록 만든다. 
하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자주 삐걱대고, 엎친 데 덮친 격 이 나이에 엉뚱한 상대에게 차이기까지. 그리고 여전히 원에게 전화해 위로를 청한다.
“24살 땐 34의 여자를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아줌마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면 설레고 좋고 슬프고 이런 감정들이 달라질 것 같았어”
하나의 한숨 섞인 말들은 너무 절망적이고, “하긴 이젠 아줌마 소리 들을 때다”라고 응수하는 원의 말 역시 맥이 빠진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화제는 자주 ‘사랑’으로 흐른다. “사랑은 양보하고 희생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하나에게 원은 “사랑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지”라고 답해준다. 
실연당해서 또는 일상에 치여서 이래저래 엉망인 하나에게 불닭발을 쥐어주고 얄밉지만 애정 어린 말로 아픈 순간을 잊도록 하는 남자 원. ‘인생의 중요한 반전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온다’고 읊조리는 사랑스러운 여자 하나. 관계에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랑으로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보이지 않던 감정의 진동이 조금씩 공기를 달라지게 한다. 밤이 긴 여름, 옛사랑을 또는 짝사랑의 고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오랜 친구 사이’ 두 사람의 공방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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