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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비극
사도세자의 비극
  • 권지혜
  • 승인 2015.10.27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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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세자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이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세자 ‘사도’.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무정한 아버지 ‘영조’. 누구도 자세히 그 내막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영조와 사도의 비극은 왕과 세자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을 드러내며 대중 앞에 나타났다. 영화 <사도>의 이야기다.

▲ 사진=쇼박스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 사극에 일가견이 있는 이준익 감독이 또 한 번 사극영화 <사도>로 대중 앞에 섰다.
사도세자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1956년 안종화 감독의 <사도세자> 이후로 처음이다. 그간 드라마로는 많이 각색이 되었지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8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는 팩트 중심의 드라마로 흘러간다.

‘사도세자’에 대한 집착과 과한 훈육
영조는 숙종의 차남이며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경종이 집권하던 시기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그 후, 1724년부터 1776년까지 52년 동안 왕의 자리를 지킨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이다.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했으며, 숙종이 못 다 이룬 탕평책을 완성시킨다. 탕평책을 통해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했으며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쳐나갔다. 완벽한 군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를 괴롭히는 콤플렉스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천민 신분의 후궁 소생이라는 출신이었다. 그는 출신성분 때문에 평생 왕위 계승의 정통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그랬기에 아들 사도만은 완벽한 환경에서 왕이 되는 정도(正道)의 길을 걷기를 바랐다. 영조는 사도가 두 살이 되기 전에 세자로 책봉한다. 사도는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여 영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예쁨을 받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학문보다는 무술이나 그림에 심취하는 예술가적 기질을 보였으며, 앉아서 학문을 익히는 정적인 활동보다 동적인 활동을 즐겼다. 이러한 사도세자의 행적은 영조를 실망시켰다. 영조는 학문을 게을리하고 ‘문’보다 ‘무’에 집중하는 사도를 더욱 호되게 꾸짖는다. 하지만 영조의 집착과 과도한 훈육은 사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는커녕 점점 옥죄고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었던 ‘사도세자’
사도의 총명한 면만을 보았던 영조는 몰랐겠지만, 사도는 이미 어린 나이 때부터 세자로서 짊어지게 된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세자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낳아 준 후궁인 친어미의 품에서 잠들 수 없었다. 어린 세자가 견디기에 왕가의 법도는 너무 무겁기만 했다. 사도의 ‘결핍’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도는 엄하게 꾸짖기만 하는 영조에게서 단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영조는 사도를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간다. 자신에 대한 신하들의 충성도를 시험하기 위해서 사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영조는 사도에게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권력을 쥐고 있는 ‘왕’으로서만 다가온다. 영조에 대한 사도의 원망과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간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라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그동안 사도가 영조에게 맺힌 한이 많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맺힌 한은 사도를 망가뜨렸고,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영조는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결단을 내린다. 결국 사도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비극적 가족사에 초점을 둔 영화 <사도>
영화 <사도>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임오화변’은 1762년 임오년,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힌 사도가 8일 만에 숨진 사건이다. 노론의 하수인 나경언이 사도의 비행 10가지를 영조에게 고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영조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사도는 영조 앞에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석고대죄 하지만, 영조는 기어코 사도를 뒤주에 가두고 만다. 사실은 이러하나 영화 <사도>에서는 당파 싸움보다는 사도와 영조의 관계에 집중했다.
이준익 감독은 ‘임오화변’과 관련된 여러 요소 중 ‘비극적 가족사’에 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들을 뒤주에 넣어서 죽음으로 이끌어 간 아버지의 마음과 심리, 감정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라 생각했다. 뒤주 안의 ‘사도’와 뒤주 밖의 ‘영조’의 심리를 쫓아가다 보니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비극적 가족사’에 초점을 둔 이유를 설명했다. 부자 관계의 갈등을 통해서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감독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들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어느 순간 경쟁 상대가 되었을 때의 두려움과 자신의 기대를 저버렸을 때의 실망감, 그로 인한 애증으로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사도’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은 이에 대해 “‘영조’는 천민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왕이고, 아버지가 정통성이 없다면 아들인 ‘사도’ 역시 정통성이 없는 것이다.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 결코 죽는 날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세대 차이의 표상을 ‘영조’와 ‘사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왕과 세자가 보여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끝까지 왕이기를 바랐던 아버지 ‘영조’와 끝까지 아들이기를 바랐던 아들 ‘사도’의 깊은 감정의 골을 영화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사도>는 깊이 들어가 보면, 좁혀질 수 없었던 두 부자 마음의 깊은 골과 그들 주변의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이준익 감독의 디렉팅과 천의 얼굴을 가진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의 ‘영조’, 그리고 비운의 세자와 눈빛이 꼭 닮은 배우 유아인의 ‘사도’가 만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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