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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동구밭'
따뜻한 '동구밭'
  • 김이연 기자
  • 승인 2015.11.25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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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텃밭

텃밭으로 사회 변화를 일구어 가는 이들이 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발달 장애인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동구밭’ 이야기다. 일주일에 한 번,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고픈 대학생과 직업보단 친구가 필요한 발달 장애인이 만나 우정을 만들어 나가는 따뜻한 도시 농부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행·사진 김이연 기자

날씨가 다소 흐렸던 지난 10일, 마포구 상일동에 위치한 ‘친환경공동체텃밭’을 찾았다. 인적이 드문 길가 안쪽에 자리잡은 이 텃밭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친구들의 얼굴은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밝았다. 대학생 친구들 8명, 그리고 또래로 보이는 발달 장애인 친구들 8명이었다. 예정된 인원이 모두 모이자 두 사람이 한 짝을 이루어 텃밭으로 향했다. 대지가 높아 멀리서 보면 파란 배추밭이 꼭 파도처럼 일렁이듯 보이는 텃밭이다. 오늘 모인 친구들은 2시간 가량 파종과 수확, 물주기 등 텃밭 활동을 하고, 수확한 채소로는 각자 챙겨 온 재료들을 더해 풍성하게 비빔밥을 해 먹었다. ‘동구밭’은 대학생(비장애인)과 발달 장애인이 매주 1회씩 1대1 짝꿍이 되어 함께 텃밭을 가꾸고, 협동을 통해 성취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사회 소통 프로그램이다. 대학생들은 잠시라도 스펙과 취업난에서 벗어나 숨통을 트고, 발달 장애인 친구들은 비장애인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사회성을 신장시킨다. 현재 발달 장애인 60여 명, 대학생 자원봉사자 70여 명이 서울 시내 12곳에서 참여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이 사회적 기업 모델로 이어져
발달 장애인 사회성 신장 프로그램, 동구밭

동구밭 노순호 대표는 홍익대 사회공헌 동아리 활동을 통해 도시농업에 관심을 가졌고 사회변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동구밭을 만들었다. 이후 도시농부로 이름난 이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고, 공동체 복원의 뜻에 공감하게 되어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도시농업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이 발달 장애인에게 도시농법을 전수해 직업을 창출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이 활동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 섞인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수익이나 스펙을 생각한다면 다른 것을 하라는 권유도 있었다. 그러한 걱정들을 뒤로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발달 장애인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발달 장애인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사회성 결여에 있다는 것이었다. 발달 장애인 친구들과 6개월을 함께 하는 동안 기대했던 농사에는 큰 재능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욱 의미 있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눈도 전혀 마주치지 않던 친구들과 대화가 가능해진 것.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보니 이 친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직업보다 또래 친구들과의 유대, 사회와의 소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사회성은 일방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보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또래와 어울리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초기 직업창출의 목표를 사회성 신장으로 약간 선회했다.

직업교육 이전에 사회성 신장이 필요하다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기초 공간이 학교다. 물론 발달 장애인도 학교를 다닌다. 특수학교도 있지만 요즘은 통합교육으로 기우는 추세다. 일반계 학교에도 특수반이 있고 그것이 법제화 되어 있어 비장애인 또래를 사귈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교우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 같은 문제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활동하는 발달 장애인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학교를 졸업했는데, 폭력이나 왕따를 겪었다. 또 보건복지부가 초중고를 졸업한 발달 장애인을 대상으로 친한 친구가 몇 명인가 물었더니, 발달 장애인 친구 1.3명, 비장애인 친구 0.5명이 조사됐다. 결국 평균적으로 발달 장애인 친구 1명이 있을까 말까이고, 비장애인 친구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더라도, 사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사회성 신장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부모님이나 교사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가 취직이다. 보통 바리스타 교육을 많이 시킨다. 그것이 취직으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커피전문점에 취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진 않다. 취업을 하더라도 5명 중 3명은 1년도 안 돼서 관둔다. 적성에 안 맞아서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성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발달 장애인은 대인관계에 낯설기 때문에 손님이 오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 것은 이 친구들을 위한 지속적인 솔루션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좀 더 능률적으로,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의 해답이 사회성 신장이었다.

발달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가 느끼는 변화
동구밭 추진의 가장 큰 원동력

동구밭을 1년차 진행했을 때, 한 어머님이 노순호 대표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이를 언제까지 기억해 줄 거냐고, 우리 아이는 평생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노순호 대표에게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억될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조금씩 일면 사회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확대해서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받은 편지에서는 동구밭을 통해 희망을 느꼈다는 대목을 읽고 큰 보람을 느꼈다. 발달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이 직접 느끼는 변화, 이것이 동구밭의 추진력이 된다.

발달 장애인 친구와 텃밭 활동하는 방법

프로그램 커리큘럼은 연중 2회로 구성되어 있다. 봄 시즌 2~8월, 가을 시즌은 8~12월까지 진행한다. 가장 춥거나 더운 1월과 8월에는 휴식기를 갖는다. 이때는 각 지역구별로 테마 활동을 한다. 음악·운동·그림·도예·영화와 같은 테마별 관심사가 같은 친구들이 모여 있다. 발달 장애인 친구들과 사전 인터뷰를 통해 좋아하는 활동을 미리 파악한 후, 같은 활동을 좋아하는 대학생 친구를 매칭하는 방식이다. 음악 텃밭은 텃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타악기를 만들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영화 텃밭은 단편 영화를 만들고, 도예 텃밭은 도자기 굽기 체험을 하는 등의 활동이다. 지원자 모집은 2월과 8월 중에 이루어지며, 동구밭 SNS 채널과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홍보한다.

발달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바람
마을 어귀에 텃밭들이 하나씩 생겼으면

노순호 대표의 바람은 인식의 개선이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발달 장애인의 직업훈련 센터를 만들고 있는데, 주민 반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동구밭도 도시농업 파트를 맡았는데, 지금은 전면 중단된 상태. 발달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 위협감 때문이다. 국가의 노력은 물론, 사회적 기업 또는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좀 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조금이나마 가능하지 않을까. 동구밭은 ‘마을 어귀 작은 텃밭’이라는 의미다. 그 의미처럼 마을 어귀에 텃밭들이 하나씩 생겼으면 하는 것이 노대표의 소망이다. 단기적으로는 2017년까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에 텃밭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장기적으로는 동구밭 초기의 목적처럼 적은 규모라도 발달 장애인에게 도시농법을 전수해 직업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LED 형태의 실내형 농장을 구상해 발달 장애인들을 직접 고용,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공동체 문화를 확산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사업적으로도 수익이 많이 남아서 또 다른 사업으로 확장하고 발달 장애인들을 더욱 많이 고용할 수 있는, 그런 선순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노순호 대표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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