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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그 고단함에 대하여
경쟁, 그 고단함에 대하여
  • 송혜란
  • 승인 2015.12.28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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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칼럼
사진=서울신문

농촌에서 자란 탓일까? 자그마한 체구에 비해 달리기를 잘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남학생들과 함께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1등이었다. 마음이 급해 다리가 꼬여 넘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달리기 왕이었다. 6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을 때의 긴장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50미터가 못 되는 반환점을 달려가면서 혹시 뒤에서 친구가 나를 추월하면 어쩌나 초조했던 기억, 반환점 나무막대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과자를 가장 먼저 달려가 따 먹었을 때의 짜릿함도 아련히 추억으로 새겨져 있다.

달리기에서 1, 2, 3등이 공책을 선물로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6명이 한 조가 되어 달리기를 해도 발이 빠른 세 명만 과자를 먹고 달리기 반환점을 돌아오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정말 당연할 것일까? 몸이 약해 달리기를 잘 못 하는 사람, 몸이 불편해 달리기를 잘할 수 없는 사람, 시합 당일 컨디션이 좋지 못해 빨리 달리지 못한 사람(…) 3등 안에 들지 못한 사람들 등 제각각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빨리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올림픽과 같은 공정한 시합에서 금, 은, 동메달을 겨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운동회에서 3등까지만 과자를 따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3등까지만 공책 선물을 주는 것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제한된 상이 결국 경쟁보다는 협동을 배워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도록 만들지는 않을까?

2001년에 사법연수원 동기들과 독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우연히 브레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국인 유학생 가족들과 현지인들이 가족 체육 행사를 하는데 참여했었다. 진행요원 자격으로 달리기 하는 초등학생들이 반환점에서 따 먹을 과자를 나무막대 줄에 걸었다. 얼핏 6명 정도가 한 조인 듯하기에 과자는 3개만 걸었다. 1, 2, 3등만 따 먹으면 되니까.

그 모습을 본 독일인 엄마가 달려와 물었다. “왜 과자를 3개밖에 달지 않았나요?” 그 질문에 내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3등까지만 따 먹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때 그 여성의 설명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아니죠, 애들이 6명이 뛰잖아요, 목적지까지 뛰어온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과자를 먹을 수 있도록 해야죠.” 당시 그 여성은 몇 가지 부연 설명을 더 했던 것 같다. 달리기를 못하는 애들도 있다,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적지까지 온 아이들이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등의 참 좋은 말들이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경쟁이 경쟁인지도 모른 채 경쟁 속에 파묻혀 고단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선을 다해 목적지까지 가기만 한다면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따 먹을 수 있는 과자가 있다면 마음이 덜 급해지지 않을까? 먼저 가기 위해 친구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싶은 충동도 사라지지 않을까? 내 친구가 나를 앞서가 과자를 다 먹어 버릴까 봐 초조해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제는 우리 모두 고단하기만 한 경쟁 기차에서 내려야 할 때다. 빨리 가지 않으면 어떤가? 늦더라도 서로 마음을 나누고 손잡고 함께 갈 친구가 있다면 그 길이 곧 꽃길일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만끽하는 여유로움과 행복이 곧 배부른 열매일 것이다.

 

 

글•사진 김재련 변호사
김재련 변호사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42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32기를 수료했다.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위원, 검찰청 성폭력범죄전문가,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권익증진국 국장 등을 지낸 여성 인권 전문 변호사다. 현재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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