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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시간을 품다, 백인제 가옥
100년의 시간을 품다, 백인제 가옥
  • 김이연 기자
  • 승인 2016.01.27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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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인 생가 탐방

이제 서울 도심에서도 고즈넉한 대형 한옥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역사는 100년이다. 백인제 가옥은 일제강점기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북촌의 대표적인 한옥으로, 지난 11월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조성되어 개방됐다. 100년의 시간을 품은 백인제 가옥으로 가 보자.

진행 김이연 기자|사진 양우영 기자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 
민속문화재 제22호, 백인제 가옥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당당한 풍채의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대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근대적 변화를 수용해, 백인제 가옥은 건축 규모나 역사적 가치 면에서 윤보선 가옥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 잡고 있다.
백인제 가옥은 소유주가 네 차례 바뀌었는데, 마지막 소유주인 백인제 박사에게서 지금의 명칭이 유래했다. 건립은 1913년 당시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경성박람회 때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을 사용하여 지었다. 이 가옥을 조선 양반 문화를 보여 주는 근대식 연회 장소로 활용해, 역대 조선 총독은 물론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2세까지 이 집을 방문했다. 1935년에는 민족 언론인 최선익의 소유가 되었다. 그는 27세의 나이로 중앙일보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1944년에는 당시 외과 명의이자 현 백병원의 창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백인제의 부인 최경진 여사가 원형을 거의 보존하며 이 집에 살아오다 2009년 서울시에 인도했다. 따라서 현재의 명칭은 마지막 소유주인 백인제 박사에서 유래하게 되었고,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당대 전통 한옥과 구분되는 근대적 특성들 가져
각 방에는 서울 상류층의 생활상 전시

한자리에 100년을 머문 그 시간만큼이나 실로 위풍당당과 묵직함이 전해 오는 장관이다. 서울 최상류층의 부유한 이들이 생활하던 공간이라 부지가 매우 크고, 전통적인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동시대 다른 전통 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획기적인 근대적 양식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가옥 내부 또한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반영해, 타임 슬립을 경험하듯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백인제 가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형적인 상류 주택과 구별되는 근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구분되는 전통식 한옥과 달리,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복도가 있어서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며, 안채에는 기존에 예가 거의 없는 2층 공간도 두었다. 또한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사랑채는 툇마루와 복도뿐 아니라 사랑대청까지도 모두 일본식 장마루를 적용해 일본 고위 인사들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꾸려 놓았다. 본채 전체에는 전면에 유리 창호를 사용해 보온 등을 고려한 근대 한옥의 특징도 잘 보여 주고 있다.
가옥 내부는 크게 사랑방, 안방, 작은 사랑방, 건넌방, 할머니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방은 바깥주인이 거주하던 공간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서재의 기능을 함께 했던 곳이다. 널찍한 대청이 있는 사랑방은 많은 손님을 수용할 수 있어 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 준다. 방의 4면이 마루로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안방은 집안의 안주인이 거처하던 공간으로, 안주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다. 한옥 중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집안 이외의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안방의 바로 옆에는 작은 방도 하나 있는데, 안방 주인의 주요 살림살이와 귀중품을 보관하는 장과 농, 반닫이 등을 놓았다. 작은 사랑방은 아들이 거주하던 방이다.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남쪽에 위치해 있다. 전통 한옥에서는 사랑방과 사이에 두고 위치하지만, 이 가옥에서는 사랑방 뒤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보다 독립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건넌방은 며느리가 사용하던 공간으로, 안방의 건너편에 있으며 작은 사랑방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할머니방은 안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난 할머니가 기거하던 곳으로, ㄱ자로 꺾인 안채의 끝에 있다. 문 앞에는 별도의 작은 대청을 두어 휴식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각 방의 내부는 건립 당시 한옥에 거주했던 서울 상류층의 생활상으로 꾸며져 있다. 의걸이장, 이층장 등 전통 목가구와 병풍 등 소품 150여 건을 비롯해 조선시대 전통 목가구와 당시 유행하던 수입 중국 가구, 서양 축음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 거주자인 외과 명의 백인제와 관련된 사진과 의학 자료, 그의 골동품 수집 취미를 반영한 전시품 30여 점도 전시하고 있다.

백인제 가옥 마지막 거주자,
외과 명의 백인제(白麟濟, 1898년~미상)

이 가옥의 마지막 거주자였던 백인제 박사는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로, 그의 연구는 다방면에 걸쳤으나 특히 구루병과 혈액에 대한 연구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44년 9월부터 1968년까지 약 24년간 소유했다. 사후 그의 부인 최경진 여사가 1988년까지 20년간 머물렀으나, 사실상 1944년부터 거의 60여 년 동안 이 가옥을 지켰다.
백인제 박사는 1915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 4학년이었던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도쿄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외과 주임교수가 되었다. 당시 그는 최초로 신장 적출 수술에 성공하고, 장폐색증 환자를 치료하는 등 조선 제일의 외과 의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41년 그는 스승이 운영하던 병원(현재 서울 백병원 자리)에 백인제 외과의원을 새로 개업했다. 그가 설립한 백인제병원은 오늘날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모태가 되었다.

백인제 가옥 관람안내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7길 16(가회동)
개관시간 화~일, 10:00~17:00
휴관일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 
관람방법 자유관람 또는 가이드투어(소요시간 50분)-예약제(www.yeyak.seoul.go.kr) 
관람료 무료
문의전화 02-724-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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