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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대란,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보육대란,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 송혜란
  • 승인 2016.02.29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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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지방교육청 누리과정 예산 갈등
 

지난 2012년 영유아 무상보육의 첫 발을 떼고자 시행된 누리과정. 최근 이러한 누리과정의 예산 편성 책임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갈등을 빚으며 무상보육의 꿈이 무너지고 있다. 당장 자녀를 맡길 곳이 없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 누리과정 예산 갈등, 무엇인 문제인지 짚어보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서울신문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누리’를 따 지은 이름, 누리과정. 누리과정은 만 3세에서 5세 아이들이 국가의 책임 아래 교육을 받아 더 큰 꿈을 꾸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다. 구체적으로 모든 아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영유아 무상보육 현실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해당 연령대의 전체 아동이 매달 20만원씩 지원받고 있다.

문제는 2016년 올해다. 애초 보건복지부 소관이었던 어린이집 보육비가 2013년 2월 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 시행령 수정으로 국고와 지방비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4년 10월 기획재정부는 다음 연도 예산안부터 누리과정 지원 예산을 아예 책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세수가 감소하고 부채는 늘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이미 단계적으로 지자체 교부금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으로 어린이집 보육비까지 떠넘겨 받은 지방교육청은 뿔이 났다. 이내 같은 해 10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누리 과정 예산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편성을 거부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이들은 누리과정에 투자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근거로 들었다. 영유아 무상보육은 온당히 정부에서 책임지는 것이 합당하는 이유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 측 입장은 요지부동. 누리과정 예산 편성 책임 처는 엄연히 지난 정부 때부터 서로 합의 하에 결정된 사안이라며 선을 그을 뿐이었다. 이때부터 이미 올해 보육대란은 예견된 순서였다.

학부모-어린이집 원장도 불안감 증폭

누리과정 예산 편성으로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물론 학부모다. 특히 맞벌이로 자녀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는 학부모들은 당장 자녀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누리과정 혜택이 중단될 경우 매달 30만 원 이상의 보육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모씨는 “갑작스럽게 이번 달부터 정부 지원이 끊기게 되면 일을 그만두어서라도 아이를 직접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다”며 “남편의 벌이로는 두 아이를 키우기 벅차 생활비만 근근이 벌고 있었던지라 보육대란 예고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학부모는 물론 어리이집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번 달부터 정부 혜택이 끊기면 아이들의 이탈 현상이 심화될 것이 뻔한데, 학부모 수요에 따라 고용한 보육교사의 월급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일부 시•도교육청, 누리과정 예산 편성
그래 봤자 몇 개월 치뿐 ‘긴급 수혈’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로 학부모와 어린이집의 불만까지 증폭되자 급기야 정부는 지방교육청을 고도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5일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편성 촉구 담화문’을 발표하며 예산 편성을 끝까지 거부하는 교육감을 감사원 감사청구와 검찰 고발을 포함한 법적, 행정적, 재정적 수단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어 시•도교육청에 누리과정 추경 예산 편성 계획을 11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교육청이 끝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할 경우 교육부는 내년 보통교부금에서 해당 예산을 감액해 내려 보낼 방침도 확실히 했다.

강수에 강수를 거듭했던 중앙정부와 교육청 사이에서 일단 교육청이 한 수 물러나는 것일까. 결국 중앙정부의 강한 압박을 못 이긴 일부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1월 16일 현재,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았던 세종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이 먼저 정부 지원을 조건으로 예산을 편성키로 했다. 세종시교육청은 1~3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42억원을 예비비에서 긴급 지원하고, 나머지 130억원은 정부지원금 등이 들어오면 추가 편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남도교육청도 정부가 누리과정 지원을 위해 편성한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지원받는 전제 하에 어린이집 5개월분과 유치원 8개월분의 누리과정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기존에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했던 경남, 경북 등을 제외한 후 아직 예산 편성 소식이 없는 곳은 서울과 경기, 인천 정도다. 이들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매달 20일은 학부모가 ‘아이행복카드’로 어린이집 교육비를 결제하는 날이다. 끝까지 누리과정 예산이 편성되지 않을 경우 아이행복카드는 결제되지 않을 수 있다. 20일 보육대란은 수도권 3개 교육청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모든 교육청이 긴급 수혈식으로 몇 달 치 예산을 편성한다고 해도 당장 눈앞에 닥친 불만 끄는 식이라, 영유아 무상복지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우리 아이의 보육을 책임지는 무상보육 정책이 향후 그 방법론을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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