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40 (금)
 실시간뉴스
번역가로 변신한 정선희, 쓰린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다
번역가로 변신한 정선희, 쓰린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다
  • 권지혜 기자
  • 승인 2016.03.11 0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던 스캔들을 가슴 한편에 두고도 여전히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려 노력하는 정선희. 하루하루를 소중히 기억하려고 한다는 그녀가 <하루 세 줄, 마음 정리법>을 번역했다. 책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쌀쌀한 오후, 합정동의 어느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취재 권지혜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정선희. 그녀의 라디오는 늘 동네 언니와의 수다 같았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독설까지. 그런 그녀가 번역가로 변신했다. 스트레스 처방전과 마음을 정리하는 법을 일러 주는 책이기에 정선희의 번역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 그리고 남겨진 정선희

2008년, 연예계는 물론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한 사건이 있었다. 정선희의 남편 故 안재환의 죽음. 그의 죽음을 놓고 많은 소문과 억측이 파다하게 퍼졌다. 대중들은 누구보다도 아팠을 그녀의 상처에 더욱 깊게 파고들었고, 그로 인해 그녀에게는 생채기가 가득 남았다. 벌써 8년 전 일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계속해서 스스로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상처를 극복했다, 라는 완료형은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전쟁의 폭이 좁아지고 강도가 낮아지는 차이가 있을 뿐, 사실 지금도 잠깐 정신 놓고 있을 땐 안 좋은 생각들이 스며들어요.”
드라마를 보면 나쁜 사람들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 되면 하루아침에 회개하고,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를 금방 회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느낀 것은 실제 인생에 그런 반전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극복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꾸역꾸역 하루를 살 때가 있었고, 어떤 때는 살 만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되어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정선희는 생각했다. ‘10년 후에 내가 돌이켜 봤을 때 적어도 후회는 없어야겠다’라고.
“몇 년 뒤 내가 돌이켜 봤을 때 창피하지 않게 그냥 지금 걱정을 넣어 두자고 생각해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즐거운 것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하루하루를 밥상이라고 생각하자 마음먹었다. 그냥 오늘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자는 마음이다.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좋은 일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아픔을 겪을 당시,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독으로 다가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녀의 주변에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 좋은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주변 지인들은 그녀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
“안 좋은 일을 겪고 힘들어할 때 이해하고 따뜻하게 함께 울어 준 경실 언니, 영자 언니처럼 발 벗고 달려와 갖은 일을 도와준 씩씩한 사람, 감성적으로 젖어 있을 때 드라이브시켜 주며 기분을 끌어올려 주던 진경이.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정선희는 크리스천이다. 힘들어할 당시 “너의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이 너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시고, 더 많은 사람이 희망을 품도록 해주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왜 굳이 내가 해야 해? 안 아프고 좋은 일 하면 안 돼? 내가 왜 내 아픔을 이렇게 이용해야 해? 나는 그러기 싫어”라며 화내고 슬퍼했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준 주변 지인들은 그녀의 생각을 바꾸어 주었다. 그들의 삶 역시 치열한데도, 그것을 견디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 역시 견디게 하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픔과 상처에 맞서는 용기

정선희가 <하루 세 줄, 마음 정리법>을 만나 번역하게 된 계기는 출판사 대표의 제안 때문이었다. 과거 라디오에서 욕 일기를 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마침 그걸 듣고 그녀를 찾아온 것. 욕 일기는 그녀가 힘들었을 당시 쓴 것이었다. 오해를 받고 있는데, 해명할 자리도 기회도 없었다.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마음대로 추측하고, 그것을 사실로 밀어붙였다. 어느 날부터 말하는 것조차 지쳤고, 아프고, 또 아팠다. 그녀는 그런 감정을 욕 일기로 썼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내 솔직한 마음들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어요. 너무 화가 나, 어떻게 당신들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 쓰다 보니 너무 어린애 같고 창피했지만, 내가 왜 아파했는지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녀는 화를 낸 대상이나 이유가 눈에 보이니 점차 위로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외면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거였다. 지나고 나서 보니 자신이 확실히 알고 넘어간 게 차라리 마음에 덜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용기를 갖고 상처에 맞서는 것은 어려웠다. 외면하면서 더 아파해 보고 슬퍼해 보고,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맞설 용기가 생겼다.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하루 세 줄 일기

이번에 정선희가 번역한 <하루 세 줄, 마음 정리법>은 하루 세 줄 일기를 쓰라고 권하는 책이다. 하루 동안 ‘가장 안 좋았던 일, 가장 좋았던 일, 내일 할 일’을 적는 것이다. 그녀는 쓰다 보니 생각보다 세 줄을 뽑아 내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안 좋았던 일이 많은 날도 있고, 좋은 일이 별로 없을 때도 있으니까.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쓴 일기를 다시 보았다. 재미있었다. 그 당시 굉장히 짜증이 나서 쓴 건데도 시간이 지나니까 남의 일 같이 보이기 시작한 것. 좋았던 일을 보면서는 ‘그래도 하루에 하나씩은 좋은 일이 있었네’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일상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디테일하게 보였다.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내일 할 일’이었다. 그동안 일이 없었던 그녀는 작은 것이라도 내일 할 일을 부여하고 실제로 했을 때의 성취감으로 ‘내가 꽤 계획대로 살고 있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방송을 안 하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근데 이 일기를 쓰면서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방송을 갈구하는 것을 내려놓게 되었어요. 방송 외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 책을 번역할 때는 대상이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어떤 사람이든 스트레스가 있었다. 집에서 정신도 몸도 상쾌하게 하고 나와도 집 문을 여는 순간부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는 것이다. 문을 열다가 손을 찧거나 하는 크고 작은 변수들. 누구를 만나거나 누군가로부터 예상했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듣거나,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말을 듣는 것 등, 모든 변수를 만나게 되는데 어떻게 스트레스가 없을 수 있을까.
“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피할 수 없는데 어떻게 즐겨요. 중간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 피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즐길 수 있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주는 변수를 만났을 때 그녀가 정말 권하고 싶은 것은 ‘내가 나를 아는 것’이다. 내가 뭐에 반응하는지 아는 것. 일기를 쓰고 2주에 한 번씩 체크를 하면서 보면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극복했다고 자부하는 것을 보게 되고, 아닌 척하던 실체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건강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선희는 지금, “나랑 연애하고 있어요”

그녀는 19살에 데뷔해 보여 주는 삶에 익숙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어떻게 만들까 신경 쓰며 살았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도 사람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 맞다며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녀는 점점 자신을 되돌아보는 힘이 생겼다.
“가까이 있을 때 못 보던 것들을 떨어뜨려 놓으면 보이잖아요. 보이더라고요. 아등바등 사는 나 자신이. 그러면서 나에 대해 애정이 생기고. 나랑 연애하는 느낌 있잖아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나를 오랜 세월 자신 없어 하고 안 좋아하고 피하다가, 뒤늦게서야 나와 연애를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정선희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 역시 많은 사람과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강연이라기보단 “수다를 떨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마음의 모서리들이 많이 깎였을 때, 사람들이 읽고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할머니 동화작가가 될 거예요. 한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지 않아요. 호기심 많고 동화를 쓰는, 웃긴 할머니로 늙고 싶어요. 내가 있는 곳에서만큼은 그래도 조이풀한 에너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살고 싶어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