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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가 전원책 변호사의 못다한 ‘쓴소리’
정치평론가 전원책 변호사의 못다한 ‘쓴소리’
  • 김은정
  • 승인 2016.06.22 0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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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인기 있는 60대를 만나다
 

시인이 본업, 변호사는 생업이라고 말하는 남자. 좌나 우를 막론하고 잘못됐다 싶으면 거침없이 비판해 좌우 모두의 미움도 지지도 받는 정치평론가 전원책.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살벌한 토론장의 분위기를 일시에 웃음으로 확 풀어 놓기도 하는 시대의 논객 전원책 변호사를 만나 토론프로그램에서 못다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취재 김은정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인터뷰를 위해 서초동의 전원책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각종 강의와 프로그램 출연 요청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특유의 부산사투리로 차 한 잔을 권하며 인터뷰에 응해준 전변호사는 시원한 호통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던 날 선 토론가의 모습이 아닌 부드러운 남자, 그 자체였다.

내 정서의 뿌리는 문학

총선 직후여서 정치이야기부터 쏟아놓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과 달리 학창 시절 글을 쓰던 이야기부터 풀어놓는 그의 눈빛은 문학청년 시절로 돌아간 듯 반짝거렸다.
“영화에 관심이 많아 중학교 때부터 시나리오를 써서 교지에 실리곤 했어요. 그러다가 부산고등학교에 가서 문예반장을 하게 됐고, 고등학교 때부터 성인 백일장에 나가 수상을 하고 신춘문예 결선까지 몇 차례 올라갔지요.”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일찌감치 빛나 1977년 한국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후 그는 군 법무 참모로 일하게 됐고 그 기간 동안은 학창시절처럼 글을 쓰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모 신문사의 문화부에서 전화가 와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알렸고 출품한 적도 없는 그는 의아했다고 한다.
“ 처음엔 전화를 잘못 건 게 아니냐고 했지요. 그런데 당선작이 <나무를 꿈꾸며>라는 거예요. 내가 쓴 시더라구요. 그땐 군 법무관 시절이라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고 할 여유가 없었는데 아마 후배나 친구가 나 대신 접수를 했었나봐요.”
그렇게 1990년 고시 패스보다 어렵다는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슬픔에 관한 견해>라는 시집도 출간했다.
이렇듯 학창시절부터 문학과 영화에 관심과 재능이 많았던 그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영화인과 연극연출가, 드라마PD 등 엔터테인먼트 쪽 지인들과 잘 맞았다고 한다.
관심 분야가 그쪽이다 보니 전원책 변호사는 국내 연예전문 변호사 1호가 되었다.  송승헌, 고 최진실, 배두나 등이 당시의 의뢰인. 그때는 연예인들에게 계약서라는 것이 제대로 있지도 않아 불공정한 계약이 많았는데 전변호사가 그 틀을 처음 잡았고 지금도 그 계약서가 연예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고.

스타 논객의 반열에 오르다

전변호사는 1992년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에 논객으로 출연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150여회 이상의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노무현정부 들어 보수와 진보의 양 구도로 확실히 이분화 될 때 그는 자연스럽게 보수 쪽의 대표 논객으로 떠오르게 됐다. 
워낙 소신이 뚜렷하다 보니 그를 지지하는 팬들도 많지만 엄청나게 욕을 먹은 경우도 있었다. 때론 집안으로 돌이 날아오고 차가 긁히는 경우도 당했다. 2004년 탄핵정국 당시 모 신문사의 인터넷 판에 ‘침묵하는 다수를 두려워하라’는 글을 썼을 때엔 댓글이 무려 7만 8천개가 달렸는데 그만큼 그의 말과 글은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스타논객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군가산점 제도,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다룬 토론에서였다. 그의 토론은 기존의 토론 프로그램에서의 논객들과 확연히 달랐다. 시인이라 그런지 언어의 자유분방함이 있었고, 그 자유분방함 속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식과, 논리가 들어 있었다. 단호한 눈빛과 말투에서는 기개가 보였으며 상대 논객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요동 없는 정색으로 호통을 쳐버렸다. 그 호통은 정확한 논리와 팩트에서 비롯되었기에 누구도 반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토론프로그램을 나가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보고 자료를 조사하고 돌아가는 정세를 알아내고자 파악합니다. 방송국에서 출연료를 받고 나가는 논객으로서 당연한 임무죠.”
그의 토론을 들으면 속이 시원하다는 평들이 많다. 라디오프로그램에서 토론프로그램을 진행할 당시에는 그의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보고 택시기사들이 돈도 안 받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인터넷에선 그의 어록과 유명 일화들이 아직도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정부가 들어설 무렵 무상보육정책에 관한 토론에서 나온 내용이다. 당시 무상정책에 대해 야당과 여당이 모두 찬성을 하고 다만 방식에 대한 이견만 토론하는 것을 보고 그는 홀로 반대 입장을 펴며 다른 토론자들에 맞섰다.
“사실 무상정책은 급진 좌파적 포퓰리즘 정책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 빚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결국 미래세대의 돈을 뺏어 지금 잘 먹고 잘살겠다는 얘기인데 아무도 반대를 안 하는 거예요. 기가 막히더군요. 그래서 저라도 반대를 해야겠다 싶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처음엔 무상보육에 대부분 찬성하던 방청객들이 그의 논리와 설득력 있는 주장을 듣고 상당수가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던 일화는 지금도 ‘전원책의 5대1 전쟁’으로 회자되고 있다.

공부 안 하는 지식인,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 안타까운 현실

그는 토론프로그램을 하면서 정치인, 언론인, 경제학자들 등 소위 지식인들이 너무나 공부를 안 하고 자기 분야만 아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낀다고 한다.
“예컨대 경제학자는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원칙으로만 이해하고 법학자는 자유, 평등,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사상 체계로 이해하며 철학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문의 융합이라고 하면 대개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만 생각하는데 정치, 경제, 법학, 철학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와 같은 문제점이 야기된 것으로 대학교육의 현실을 지적했다.
“다각적인 분야를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없어요. 그렇다보니 대학을 나왔으면 최소한 우리 사회의 아젠다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청년들을 보기 힘들어요. 대학이나 공무원교육 등 강의를 나가 보면 참 답답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답답함 때문일까. 그는 틈틈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허구를 꿰뚫는 통찰력 있는 저서를 다수 출간하기도 했다.
“제가 책을 쓰는 이유는 책을 많이 팔아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꼭 알리고 싶어 썼습니다. 최근에 출간한 <잡초와 우상>도 그런 바람에서 쓴 것이구요.”
그는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국민들이 뉴스만 보고 신문의 정치 면만 읽는 걸로 정치를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아젠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은 학자나 토론가들이나 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무관심해서는 국민의 주권을 행사할 수 없고 우리 정치가 나아질 수도 없습니다.” 
 
4.13 총선에 대한 쓴소리

그에게 이번 4.13 총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여과 없이 쓴소리를 한다.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의 후퇴입니다. 새누리당은 공천과정이 특정 층의 전횡이었고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줬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불러 당권을 줘버렸습니다. 국민의당은 정책이 모호합니다. ‘개혁적 보수’, ‘성찰적 진보’라고 하는데 그건 듣기에만 좋을 뿐 말이 안 됩니다. 그런 모호한 당은 있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며 그는 솔직히 선거를 하러 가기 싫었다고 한다.
“의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럴 시간에 기를 쓰고 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지금 의회를 보면 진정한 정치, 경제 전문가가 없어요. 우리나라 정당은 이념과 철학보다 보스에 따라 움직이는 보스당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치평론가다운 날선 소리에 많은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대목이었다. 

썰전 출연, 정치를 쉽게 대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올 초부터는 jtbc의 썰전에 출연해 유시민 전장관과 함께 프로그램의 축을 이루고 있다.
처음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예능프로그램은 안 한다고 거절했는데 어느 날 유전장관이 같이 출연하지 않겠냐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람과 같이 하면 괜찮겠다 싶어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유시민 전장관은 책읽기가 상당히 되어 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서로 이 대목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며 무슨 뜻으로 하는지 금방 알아차리죠. 그리고 대중들에게 정치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출연했어요.”
그래서일까. 썰전에 출연한 두 사람은 대립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들만의 케미를 엮어가고 있다.
“토론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이 누군지를 보는 편입니다. 저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과 같이 토론하는 것을 싫어해요. 공부가 덜 되어 무슨 말을 하면 잘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겐 설명까지 하며 토론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특정 이념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 아예 대화가 안 되니까요.”
 
엄청난 내공의 우리시대 진정한 논객

이렇듯 다방면의 높은 식견과 소신, 거기에 대중의 인기까지 얻고 있는 그에게 정치권의 러브콜도 많았지만 그는 고사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지식, 균형감각, 결단력, 정직함, 그리고 용인술을 꼽았다. 사람들이 왜 정치를 안 하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앞의 네 가지 덕목은 갖추었는데 용인술은 부족하다. 정치를 하려면 냉정하게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난 누구나 다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냉정하게 사람을 쓸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가 정치를 안 하는 이유를 하나 덧붙였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너무나 무력해질 것 같아요. 300명 중의 1인일 뿐이고 초선의원으로서 무엇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정치를 할 마음이 없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사실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도 정치라고 생각해요. 나의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여론을 형성하고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정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평론가인 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어떻게든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작용을 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정치평론가의 역할에 대해 정의했다.
“정치평론가는 정략을 평론해선 안 됩니다. 이건 평론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론가는 정책을 분석해 어떤 것이 문제이고 뭐가 잘못됐는지 대중들에게 제시해줘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칭찬보다는 비판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평론가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스탠스를 굳이 정의한다면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며 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두 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 동안 정치는 물론 경제, 철학, 법학, 역사, 그리고 그의 영원한 본향인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을 넘나들며 풍부한 식견을 펼치는 그를 보노라니 이토록 박식하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토론프로그램에서 꼿꼿한 기개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펼치던 그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짐작이 갔다.
그는 단지 말 잘하는 토론의 달인이 아니라 그의 말의 바탕에는 어마어마한 학습의 노력과 그로 인해 쌓인 내공이 꿈틀거리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논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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