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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 스폿, 해방촌 산책길
아날로그 감성 스폿, 해방촌 산책길
  • 최효빈
  • 승인 2016.08.30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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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행

1945년 광복을 하면서 실향민과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모여 살기 시작해 해방된 지 7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여전히 ‘해방촌’이라 불리는 낡고 오래된 동네 해방촌. 이제는 이색적인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거듭나는 중인 해방촌을 찾았다.
취재 및 사진 최효빈 기자   
 

 

아무리 여름 특유의 ‘넘치는 생명력’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가끔 무섭도록 높은 기온, 그리고 그 기온만큼 높이 오른 습도, 그리고 그러한 기온과 습도를 한껏 높여주는 수많은 사람들 틈 속에 있다 보면 가슴이 꽉 막힐 때가 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밤 친구들과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러 가는 날도 마찬가지다. 그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은 것뿐인데 버스 안에서, 그리고 정류장에서 가게까지 걸어오는 그 길 위에서 더위와 사람에 먼저 지쳐버린다. 가게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  더위를 피해 몰려든 손님으로 바글바글한 가게는 닭살이 돋을 만큼 냉방을 빵빵하게 틀어, 결국은 추위 속에서 맥주 한 잔을 얼른 마시고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름엔 특히 더 사람 많은 곳을 피하던 내가 해방촌을 발견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핫플레이스인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에 비해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해방촌은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었다.(더 정확히는 적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주 편했다. 주말에 가도 걸어 다니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1945년 광복을 하면서 실향민과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임시 거주지로 모여 살며 시작된 해방촌은 현재까지도 예전 그 본래의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과거로 타임캡슐을 타고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한때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당시 빈민을 다룬 문학작품,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곤 했던 해방촌의 낡고 오래된 모습들은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온전하고 짙게 깔려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낯선 기분을 가지고 출발한 해방촌 산책길.
얕은 오르막을 따라 쭉 이어진 건물에는 허름한 동네 슈퍼와 이색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카페, 그리고 10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오래된 미용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리고 또 특이했던 점은 활짝 문을 연 가게들이 거의 다 테라스를 설치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구성원들이 거의 다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라스뿐만 아니라 해방촌 거리에는 한국인의 비율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더 높았는데, 손님 뿐 아니라 가게 주인, 그리고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에 나선 주민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외국인이 해방촌 안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남산을 향해 좀 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해방촌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폿이 나온다. 사실 해방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야경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야경은 작은 탄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불빛,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루프탑 바가 만들어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몇 주간 쌓였던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주었던 해방촌 산책길.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는 시간까지 사람에 치이고 더위에 치였다면, 이 여름이 가기 전 사람 냄새 가득한 해방촌에 야경 보러 가보길 추천한다. 서울에서 가장 이방인이 되는 동네를 걸으며, 그 곳에 살고 있는 진짜 이방인이 내뱉는 인사와 미소를 받고, 그들이 이루고 있는 작은 보금자리를 낭만적이면서도 시원하게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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