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권비영, 영화 <덕혜옹주> 원작 소설가
권비영, 영화 <덕혜옹주> 원작 소설가
  • 송혜란
  • 승인 2016.12.02 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지막 황녀를 통해 대한제국을 재조명하고 싶었다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외롭게 떠나야 했던 덕혜옹주. 조국과 일본이 모두 버린 황녀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통해 첫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늘진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잊힐 뻔했던 덕혜옹주를 일깨우는 일에 사명감을 다한 작가는, 왜곡되고 굴절된 시절의 오해로부터 덕혜옹주와 시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건져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자료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소설 <덕혜옹주>가 시나리오로 각색돼 한창 인기를 끄는 와중에도 권비영 작가는 차기작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울산에 본가를 둔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 게다가 방송 녹화까지…. 꽉 찬 스케줄로 분주한 그녀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어렵사리 마주할 수 있었다. 장대비에도 우산 하나 없이 집회 현장에 뛰어든 그녀의 취재 열정을 보아하니 <덕혜옹주>를 비롯해 소설 <은주>, <몽화>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법도 했다.
영화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7년 전 발표한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 되었다. 그녀가 처음 덕혜옹주에 대한 소설을 집필할 때 특별한 바람이 있었을 것 같았다.  
“망국의 옹주잖아요. 우리가 거의 잊다시피 했고…. 특히나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를, 그 시대의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든 잊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제 조금은 냉정하게 다시 그 시대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그늘진 역사 아래 잊힌 덕혜옹주를 통해 대한제국까지 통틀어 재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뜻은 소설뿐 아니라 이번 영화를 통해 비로소 빛을 발했다. 덕혜옹주의 고독한 삶을 세밀한 문체로 담아내 많은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 소설 <덕혜옹주>는 2009년 초판 인쇄부터 지금까지 누적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어 영화 <덕혜옹주>는 배우 손예진과 박해일의 명연기가 큰 호평을 받으며 500만 관객을 향해 여전히 흥행 순항 중이다. 영화가 애초 소설의 의도를 잘 표현해 냈을까, 영화를 본 원작자의 소감이 궁금했다.
“저는 영화를 여섯 번이나 봤어요. 역사적 사실이 다르게 설정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소설에서 밋밋하게 끝났던 탈출 장면이 영화에서는 훨씬 다이내믹하게 그려져 놀랍기도 했고요.”
특히 혼신을 다한 손예진의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권비영 작가. 그녀는 감독의 연출뿐 아니라 주연 조연을 맡은 배우 모두가 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고 평했다.
“해방 후에도 덕혜옹주가 입국을 거부당하는 신이 있어요. 그때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손예진 씨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김장한으로 나오는 박해일 씨의 절도 있는 연기도 아주 멋졌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그만큼만 하는 것도 참 어려웠을 거라고 봐요. 덕혜옹주 아역을 맡은 김소현 씨 연기도 좋았고요. 이마가 툭 튀어나온 게 실제 덕혜옹주와도 많이 닮았더라고요. 라미란 씨의 연기는 뭐 말할 것도 없죠.(웃음)”

영화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한 소설가의 일침

▲ 영화 <덕혜옹주> 속 장면(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덕혜옹주 개인의 고난과 결혼 생활, 딸 정혜와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과 달리 영화에는 극적인 재미를 위한 여러 장치가 가미되었다. 이를테면 덕혜옹주가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한다든지 김장한이 독립투사로 묘사되는가 하면 다수의 인물이 모여 새롭게 만들어진 캐릭터도 있다. 특히 배우 라미란이 열연한 복순 역은 자칫 무겁게 느껴질 뻔했던 영화에 코믹 요소를 더했지만, 가공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 왜곡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소설 또한 황실을 너무 미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원작자의 입장은 비평가만큼이나 꽤 날카로웠다.
“영화나 소설은 창작의 영역입니다. 실제 역사를 가지고 서술하는 전문서나 다큐멘터리물이 아니에요. 창작자의 상상이 들어갈 여지가 충분히 있지요.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해 만든 이야기에 대해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우리가 만약 이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식의 고민을 먼저 해봐야지요.”
영화는 영화, 소설은 소설일 뿐 정사를 다룬 교과서는 아니다. 특히 다른 미디어보다 훨씬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는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얼마든지 이야기를 비틀고 부풀릴 수 있다. 지나친 확장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확대해석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있다.
“보는 이가 영화만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실제 역사는 어떠했는지 책도 찾아보며 본인만의 시각을 키워야지요. 역사는 반복되잖아요. 안 좋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순전히 영화만 보고 역사 왜곡이니, 순 엉터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대한제국의 다양한 해석이 나오길
 
그러고 보면 권비영 작가는 <덕혜옹주>를 비롯해 일본 위안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몽화>까지 많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 역사소설에 크나큰 애정을 쏟아왔다. 두 소설은 대한제국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가 소설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점이 꽤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할 터. 그럼에도 그녀는 작가로서 대한제국의 역사를 정립해 가는 일에 사명감을 다하고 있다.
“대한제국은 아직 제대로 정리된 역사가 없어요. 일제에 침략당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자료를 많이 없애기도 했고, 또 우리가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탓도 있지요. <덕혜옹주>나 <몽화>는 오롯이 제 안목으로 썼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대한제국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봐요. 꼭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그녀가 지난 두 편의 작품을 통해 대한제국의 역사 정립을 향한 첫 물꼬를 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덕혜옹주>를 쓰며 <몽화>에 대한 자료조사도 함께 진행한 그녀가 어쩌면 그 시대의 아픔을 그린 또 다른 작품을 후속으로 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권비영에게 소설이란

권비영 작가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쓴 소설로 선생님의 칭찬을 한몸에 받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곧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연일 부푼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도 아득했다.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낙방하기를 거듭한 그는 결국 소설가를 포기한 채 결혼 후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강연장에서 만난 고 박완서 선생을 마음의 멘토로 삼게 된 그녀는 1995년 신라문학대상을 받으며 비로소 등단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등단에 실패하며 글 쓰는 일은 내 길이 아니라며 포기했었어요. 그렇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았는데, 애들이 훌쩍 크고 나니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꿈틀대더군요. 가슴속에는 여전히 그 불씨가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과연 이 나이에 소설이 가당키나 할까, 고민도 많았는데요. 그때 박완서 선생님을 뵙고 용기를 냈어요. 선생님을 정신적 지주로 삼은 덕에 다소 늦은 나이에도 소설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이룬 꿈이기에 그녀에게 있어 소설의 의미 또한 남다를 듯하다. 권비영 작가에게 소설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자존심, 삶 자체다.
“제가 소설을 안 썼으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아마도 보통 아줌마로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에게 소설은 제 삶입니다. 또,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우리네 옆집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사실 그 어떤 철학적이거나 표피적인 말보다 소설은 삶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저뿐 아니라 인간의 삶이 즉 소설입니다.”
최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성찰하게 하는 소설 <달의 행로>까지 무사히 펴낸 권비영 작가. 왜 자꾸 여성에 대한 슬픈 이야기만 쓰냐는 어느 독자의 돌직구에 ‘그러면 더 슬픈 이야기를 쓰겠다’며 엄포를 놓았다는 그녀는, 차기작으로 젊은 여성부터 할머니에 이르는 세대 간의 소통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딱 중간 입장에 놓인 그녀가 풀어놓을 각 세대의 스토리는 또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줄까. 이 역시 근대 여성사를 모두 아우르는 소설로 탄생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