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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전문가 심영순의 인생 레시피
한식 전문가 심영순의 인생 레시피
  • 김은정
  • 승인 2016.12.13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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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곧 사랑입니다
 

주말 방송에서 추성훈 가족에게 요리를 가르침 한식요리 전문가 심영순. 단아한 한복을 입고 나타난 심 선생은 7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잡티 하나 없는 고운 피부였다. 방송에서 다소 엄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대가의 모습에선 향기로운 밥 냄새, 국 냄새가 났다.

글 김은정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고귀한 인생 한 그릇

본명보다는 옥수동 심 선생, 향신즙 선생으로 더 유명한 심영순 선생.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재벌가에서 모시고 갈 만큼 한식 요리 선생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최고의 요리맛>, <23가지 양념장으로 만든 203가지 요리> 등 요리책을 출간하고, EBS <최고의 요리비결>, 올리브tv <한식대첩>, <아바타셰프>, <옥수동 수제자> 등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불꽃 튀는 요리 대결이 펼쳐지는 <한식대첩>에서 보여 준 선생의 냉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카리스마는 프로그램의 품격마저 높이기도 했다. 방송 출연하랴 요리 수업하랴 바쁜 와중에 심 선생은 틈틈이 삶을 회고하고 기록을 남겨 70여 년 인생을 담은 에세이집을 냈다. 사실 예전부터 책을 쓰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번번이 고사해 오다가, 이젠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이야기를 써 보라는 딸들의 적극적인 권유에 출간을 결심했다고 한다.
“책을 낸다는 것이 참 조심스러웠어요. 혹시라도 내 자랑이 될까 봐,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서요. 제가 재벌가의 요리 선생을 했다고 하니 기자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재벌가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하더라고요. 하지만 특정 집안, 특정 인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참 좋은 분들과 따뜻하고 즐거운 추억이 많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최대한 자제하고 안 썼어요.”
70년대 말부터 정, 재계 집안의 며느리와 딸들을 가르치는 요리 선생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집안의 내밀한 이야기를 궁금해할 만도 하지만 책에는 그런 이야기를 안 썼다. 대중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만한 재벌가의 이야기는 없지만 음식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행복을 줄 수 있는 위대한 것인지 그녀가 살아오며 터득한 지혜와 연륜이 담겨 있다.       

사랑은 음식을 만들게 한다

심 선생은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많이 알려졌듯 어릴 때부터 친정어머니의 혹독하리만큼 엄한 훈육을 통해 요리와 예절을 배우며 자랐다. 충청도 진사댁 양반가에서 자라 온 어머니는 딸을 시집보내려면 그만한 소양을 갖추어야 함을 기본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서 요리와 살림을 배우며 자라 온 심 선생은 시집을 가서 매일 아침 남편에게 9첩 반상을 차렸다. 사랑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결혼 전에 남편은 참 거짓이 없고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연애 때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택시를 타는 사람들도 많은데 꼭 전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더라고요. 그리고 얼마나 효심이 깊은지. 자기가 번 돈을 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동생들 가르치고 하는 모습이 그렇게 착해 보일 수가 없더군요.”
남편의 착한 모습이 좋아 결혼해서 한결같이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는 심 선생. 많은 활동으로 바쁜 요즘도 그렇게 차리는지 궁금했다. 요리 수업하랴, 방송하랴, 책 내랴 바쁜데 이젠 좀 편하게 차리지 않을까.
“요즘은 더 잘 차리죠. 딸아이가 반찬 가게를 하는데, 어머니 아버지 드시라고 매일 두세 가지 반찬을 꼭 보내 와요. 게다가 나도 수업을 하고 나면 식재료들이 많이 남아 그것들을 이용해 반찬을 만들다 보면 가짓수가 더 늘어나더라구요. 오늘 아침도 이것저것 차리다 보니 반찬이 열 가지가 넘더군요. 물론 간은 심심하게 해서 남는 양 없게 아주 조금씩만 담지요. 오늘 아침에도 그 설거지를 다 하고 나왔답니다.”
매일 아침 최고 솜씨의 아내가 차린 밥상을 받는 남편은 무슨 복일까 싶었다. 마침 인터뷰 장소에도 직접 아내를 태우고 왔다는 선생의 부군이 같이 계셨는데,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해 보였다.
“남편은 지금도 운전을 하고, 나와 손잡고 산책을 가고, 내가 하는 일의 회계 정리까지 다 맡아서 해 준답니다.”
인터뷰하는 아내를 한 발짝 떨어져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공손한 높임말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선생. 황혼의 노부부가 참 아름다워 보였다. 빨리 뜨거워졌다 빨리 식는 것이 요즘의 인스턴트 사랑인데, 진짜 사랑이란 이렇게 오래 묵힐수록 깊은 맛이 나는 된장, 고추장 같은 사랑이 아닐까   
“우리가 행복을 여기저기서 찾으려고 하는데, 행복은 잘 차려진 밥상 위에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맞벌이를 한답시고 아침상도 안 차리고 그냥 대충 빵이나 커피로 아침을 때우는 집들이 많던데, 그건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 남편을,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게 되죠. 사랑은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의 희생도 없이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절로 움직여 음식을 만들게 되죠. 그래서 전 사랑은 음식을 만들게 한다고 생각해요.”
오랜 연륜을 쌓아 온 대가다운 명언이었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이유로 아침부터 밥과 국, 반찬을 제대로 차려 먹는 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부터 ‘먹는다’라는 말보다 ‘한 끼 때운다’라는 말이 더 적절한 현대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한식 대가의 꿈은 한식 세계화

수십 년 세월을 음식을 만들어 온 한식 대가인데도 여전히 한식이 어렵다는 선생. 그만큼 한식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정치가가 되고, 미술이 좋은 사람은 미술가가 되듯 음식에 빠진 선생은 온통 음식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고.
“생선도 종류별로 다 특성이 다르거든요. 민어와 금태가 또 다르죠. 금태는 살이 잘 부서져 포를 뜨기가 힘들고 통으로 요리를 하는 것이 좋거든요. 이 재료는 어떻게 어떤 양념으로 조리를 할까 하는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면 기록을 해요. 마치 베토벤이 악상이 떠오르면 악보를 그리듯이 말이죠.”
독실한 크리스천인 선생은 기도를 하다가도 갑자기 식재료와 조리법이 떠오르면 어느새 기도가 멈춰지고 온통 요리 생각이 맴돈다고.
“어쩔 땐 기도를 하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하나님께 죄송하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게 하늘이 주신 제 달란트인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요리를 하고도 아직도 늘 연구하고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니 역시 대가라는 단어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닌 듯싶다.   
“무나물을 하나 맛있게 잘 무쳐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을 수 있어요. 한식은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맛이 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한식의 맛을 요즘 젊은이들이 잘 모르고 달콤새콤하고 뭔가 입에 자극적인 베이비 푸드만 찾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요즘은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많고 외국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젊은이들이 입에 당장 와 닿는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가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밥, 된장찌개, 김치를 먹어야 속이 편한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빵이나 커피, 베이컨을 먹어도 괜찮다고 하죠. 그리고는 점심도 간편하게 대충 먹고 저녁엔 치킨이나 피자 같은 기름진 걸로 대신하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보다 더 골골한 경우가 많아요.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영양가 없이 먹는 걸 보면 걱정이 돼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한식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의 바람이다. 또한 요즘 방송에서 젊은 스타 셰프들이 많이 나오면서 셰프라는 직업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기왕이면 한식을 연구하고 만드는 셰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선생의 꿈은 맛과 영양, 위생적으로도 뛰어난 우리 한식이 세계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비싼 돈을 내더라도 한식을 먹고 싶어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식 예찬.
“우리 음식은 참 오묘하게도 양념도 다양하고 조리법도 다양해요. 우리 한식에 ‘갖은 양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한 가지 음식에도 고추장, 된장, 마늘, 참기름, 깨소금 등등 여러 가지 양념을 배합해서 색다른 맛을 내는 건 우리 한식뿐이에요. 그런 한식은 동서양인 모두에게 몸에도 좋죠. 그런 한식을 만든다는 것에 저는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답니다.”
이렇듯  한식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에 딸들이 어머니의 길을 이어가겠다고 할 때 선뜻 지지했다고. 선생의 네 딸들 중 세 명의 딸이 한식을 만들고, 어머니가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리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래도 나는 요리하는 일이 너무 좋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에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해 왔어요. 그래서 예술을 전공했던 딸들이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응원했어요. 악기는 관악기, 현악기 각각 특징이 있고 색깔이 다르지만, 음식은 종합예술이지요. 맛있는 음식은 전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보다 정성껏 만든 음식 한 접시가 더 값지고 귀하다고 생각해요.”
음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이렇게 클 수 있을까? 음식을 잘 만든다는 것은 단지 손맛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얼마나 정성과 사랑, 혼이 담겨져야 하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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