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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감성 가득, 오류동 항동 철길
겨울 감성 가득, 오류동 항동 철길
  • 최효빈
  • 승인 2017.01.26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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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운치 있는 곳으로 특유의 겨울 감성을 지닌 항동 철길. 간이역 등 향수를 자극할 만한 공간으로 추억을 사진에 담기에도 좋은 항동 철길로 특별한 ‘기찻길 여행’을 다녀왔다.

글사진 최효빈 기자

몇 년 전까지 나의 ‘인생 영화’라 불리던 영화가 있었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주연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바로 그 영화이다. 시리즈로 3편까지 제작되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리즈는 당연히(!) 1편인 선라이즈.
국적이 다른 두 남녀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사랑과 죽음, 운명과 같은 가치관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그러다 결국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마는 그 영화는 스무 살의 나에게 ‘기차’에 대한 어떠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는데 매우 감성적이고 예민했던, 무엇보다 운명 같은 사랑을 꽤나 믿었었던 그때의 나는 그 이후로 ‘기차’라는 운송수단에 남들과 조금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차 여행길은 늘 혼자였다는 점 역시 기차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기차를 타야 하는 날이면 나는 늘 두꺼운 책을 가방에 챙기곤 했는데,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기차 밖 풍경을 바라보면 괜히 ‘마음 부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내 시간을 오롯이 보내는 가장 고요하고도 역동적인 방법이랄까. 아무튼 공간을 가로지르며 드는 수많은 생각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항동 철길은 나에게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사람이 아닌 원료와 생산물 등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화물용 철길이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남아 있는 건 ‘기찻길’이니까 말이다.
쌀쌀한 겨울 날씨가 잠깐 주춤하던 어느 오후, 오류동에 위치한 항동 철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 찾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느끼는 나는 막연히 ‘그래도 철길이라니 찾기 쉽겠네’  하는 생각으로 안심하고 길을 나섰는데, 막상 목적지에 다다라도 철길이 있을 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 살짝 당황했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고된 하루가 시작 되는구나’ 하고 마음을 비우고 길을 제대로 찾아보려는 순간 느닷없이 철길이 나타나 또 다시 당황했다.
항동 철길은 철길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할 수 없는 평범한 주택가에서 시작됐는데, 너무 뜬금없이 시작돼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1/2 승강장을 보는 것 같았다. 마법 같이 나타난 철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는 길. 양 옆으로 빼곡하게 들어선 주택들은 철길만 없으면 어느 곳이나 있을 법한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무척 고요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철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에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이는 항동 철길이 아직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풀과 자갈이 덮인 레일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치 옛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는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깥을 구경하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성이 느껴졌다.
항동 철길에는 철길 말고도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푸른 수목원이 바로 그것이다.
푸른 수목원은 항동 철길 입구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나타나는 서울 광장 8배 규모의 수목원으로, 다양한 나무와 화초를 무료로 구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길 여행에 숨을 불어 넣는 공간이 될 만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짧지만 운치 있는 곳으로, 간이역 등 향수를 자극할 만한 공간과 조형물이 가득한 항동 철길. 기차 특유의 감성을 좋아한다면, 겨울 감성 가득한 특별한 서울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이번 주말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항동 철길로 향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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