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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자수 작가 이정숙, 예술로 승부하는 민간외교관
전통자수 작가 이정숙, 예술로 승부하는 민간외교관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7.03.17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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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자수를 단순한 답습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반열에 올린 작가가 있다. 이정숙 작가는 전통자수를 현대적 감각과 색채로 우리 곁에 되돌려 준 작가로 관심을 모은다. 최근 활발한 해외 전시를 펼치고 있는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와 한국 전통자수의 세계화에 대해 알아봤다.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조선시대 그림 병풍인가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땀 한 땀 손으로 공들여 지은 전통자수(傳統刺繡) 작품이다. 조선시대 관복에 붙이던 흉배와 물건을 감싸는 보자기 또한 이처럼 세련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상과 정교한 무늬를 자랑한다. 패물함과 노리개, 안경집 등 소품들 또한 마찬가지로, 패물함에 든 장신구가 뭔지 몰라도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할 것 같은 자수 작품이 함을 돋보이게 한다.
전통자수 청헌(菁軒) 이정숙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자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한 눈에 깨닫게 해준다. 그동안 한국의 전통자수 작품을 종종 접했지만 이처럼 눈길을 확 잡아끄는 우수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기는 처음이다.
전통자수는 예로부터 여성에 의한, 여성만을 위한 미를 창조하는 전통예술의 한 장르로서 그 형식과 대상은 정형화되어 왔으며, 이를 깨뜨리는 작업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오직 전통의 틀 안에서 예술적 창조성보다는 단아한 한국여인의 미를 가꾸는 여성만의 예술로서 전수되어온 면이 크다 하겠다.
따라서 전통자수는 수놓는 이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사회의 관습에 따른 관념과 상징성을 형상화하는 방식을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여성문화의 진수이며 전통예술의 결정체인 우리 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은 그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일거에 표현한 것이다. 그 다양한 모양과 종류, 높은 품격, 그리고 세련됨은 예술적 관점에서 보아도 단연 돋보인다.
이정숙 작가의 대단함은 전통자수의 형식과 대상을 뛰어넘는 예술적 시도를 부단히 해왔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전통자수의 품격과 섬세함을 극대화하고 자수예술의 미학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우리 전통자수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해오고 있다.

전통자수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

“전통자수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통자수는 음양이나 입체감을 그림보다 월등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림보다 더 섬세합니다. 40년을 작업했는데 전통자수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지네요. 비록 작업은 고되고 몸은 힘들지만 우리의 전통자수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마음에 여전히 붙들고 있습니다.”
이정숙 작가는 한국 전통자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에 따르면 서양자수는 실용자수로서, 면실인 푼사를 사용해 사실적 묘사에 주력한다. 동남아 중국 일본 등 동양자수는 실크사인 푼사를 사용해 역시 사실적 묘사에 주력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자수는 여러 가닥의 실을 꼰 꼰사를 사용해 더 입체적이고 역동적이며,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상징적인 묘사로 이미지를 부각한다.
의복 흉배 보자기 병풍 장신구 등을 넘나들며 수놓은 그의 작품들을 보면 한국 전통자수의 매력에 정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온갖 우주가 다 들어있으며 작가가 가장 좋아한다는 흉배는 전통의 미를 지키면서 색과 형태에서는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조형감각을 불어넣어 생활공예의 경지에서 벗어난 예술로 승화시켰다.
보자기 역시 전통보자기의 소재영역과 색채는 물론 보다 다양한 형태와 색채를 찾아 현대적 의미와 조형예술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전통의 오방색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색채를 과감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실을 염색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색을 얻어내기도 한다. 이런 과정들이야말로 그의 작품들을 언제 보아도 세련되며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이유다.
“현대인들이 전통에 위화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전통은 만들어진 것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연구과정과 시행착오를 통해 옛것의 답습을 넘어서 발전된 것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것을 재료로 또 다른 것, 발전된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의 작품은 수를 놓아 재현한 고종황제의 십이장복과 명성황후의 십이등청적의부터 노리개나 안경집 같은 조그만 소품들까지 망라한다. 10폭 병풍과 같이 커다란 작품들도 있다. ‘25조 대가사’ ‘묘법연화경반평문’ 같은 작품은 각각 5년에 걸쳐 공을 들여 만든 작품들이다.
이정숙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비교적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정부가 선물로 증정한 ‘화문수(花紋繡) 자수보자기’이다. 백색 명주에 30여 개의 색실로 꽃과 나무, 새를 수놓은 작품인데 현재 로마교황청 바티칸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로부터 15년 전 전통문양을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초발심으로 일일이 실을 꼬아서 수를 놓은 작품인데, 천사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새와 나무로 잇고 있지요. 카톨릭에서 흰색 옷은 교황만 입을 수 있다고 하는데 마침 그 작품이 흰색 명주 바탕인데다 보자기가 모든 것을 싸안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에게 증정된 보자기 작품을 만든 사람은 불교 신자였다. 이 작가는 법명이 보월인 불자로서 궁중자수보다 더 높은 단계인 불교자수의 맥을 잇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훌륭한 불교자수 작품들을 생산했으며 조계종 수덕사·불광사·범어사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종교는 통한다고 했는지 화문수 보자기는 가운데 십자가 형태가 명확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교황 방문 두 달 전 시진핑 주석의 한국방문 때도 이 작가의 작품 5~6점이 선물 리스트 후보에 올라있었다고 한다. 반면 교황에게 증정된 보자기 작품은 애초에 팔려는 마음이 없었던 작품인데 정부의 종용으로 갑작스레 판매하게 되었다고 작가는 회고했다.

해외 전시로 한국 전통자수의 우수함 알려

 

안타깝게도 이정숙 작가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012년부터 해외에서의 전시회 요청으로 지금까지 미국 일본 프랑스 루마니아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등지에서 10여 차례나 해외 전시회를 열었다. 2016년에도 전시회를 위해 네 차례나 외국에 다녀왔다.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 전시회를 가졌던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거의 국빈 대접을 받고 있다. 퀼트와 자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터키에서도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그의 전시회를 열어줬다.
일본에서도 꾸준한 요청이 있어 지금까지 네 차례나 전시회를 가졌다. 미국 마이애미국제공항, 메사추세츠 뉴베드포드아트뮤지엄 등지에서도 전시회를 열어 동양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도 전시 무대로서 루브르박물관과 그랑팔레 국립갤러리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어 파리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해외 전시회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굉장히 번거롭고 고된 일이에요. 준비과정에 힘이 많이 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지요. 지금까지 남편의 외조 덕에 해왔지만 한계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남들은 작품을 팔아 꽤 많은 수입을 올렸겠구나 생각하는데 사실과는 전혀 달라요. 공들여 만든 작품들을 파는 게 딸 시집보내는 것처럼 아쉬워서 그동안 모아만 뒀다가 대략 2년 전부터 팔기 시작했어요. 민간외교활동을 한다는 생각에서 한 거지 돈을 바라고 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
이 작가는 전통자수 작품을 판매하는 국내 여건도 그리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통자수를 예술보다는 공예라고 우습게 생각해서 제값을 쳐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전통자수에만 매달려선 본인은 물론 여섯 제자의 노후대책이 전혀 안 선다고 덧붙였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자수박물관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자수기법 선정과 채도 계획, 사용할 실에 대한 염색, 도안 등 작품 기획과 준비에 보통 6개월에서 1년을 들인다. 수를 놓는 본격 작업과정이 2~3년인 경우도 흔하다. 오랜 작업과 전시 준비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뒷바라지를 잘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정숙 작가의 재능은 친정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집안에 미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친정어머니가 수를 잘 놓아 기본 기술은 어머니에게 다 배웠다. 나중에 인천지방 인간문화재 자수장인 김계순 선생을 사사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는 힘의 원천인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손에서 매듭을 놓지 않으셨다”면서 “우리 자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갖고 계시던 어머니의 순수한 열정과 가르침을 평생 기억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자수 작업의 고단함을 얘기하면서도 새해 전시계획과 작업계획에 들뜬 모습을 보여주는 이정숙 작가. 그는 올 3월 패션 디자이너 이영주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또 명성황후가 사용하던 10첩 병풍 ‘종정도(鐘鼎圖)’를 새해에 자수작품으로 만들겠다면서 “대를 이어가겠다는 사명감으로 다음 대에 표본이 될 작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Queen 백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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