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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통주, 삼해주 이야기
서울 전통주, 삼해주 이야기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7.03.19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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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대한민국 인구의 오분의 일이 모여 사는 서울,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한겨울에 빚어 버들가지가 피어날 즈음의 봄에 익는다 하여
‘유서주(柳絮酒)’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얻은 삼해주.
서울의 술을 빚고 마시며, 한 잔의 술과 같은 삶의 풍류를 느껴보자.

 

삼해주는 돼지날에

이름에 술 빚는 시기가 담겨 있다. 정월 첫 해일(亥日)에 세 번에 걸쳐 담근 술이 삼해주(三亥酒)이다. 해일은 12일 간격 또는 36일 간격으로 돌아온다. 그 해일에 매번 덧술을 하는 만큼 최소 36일 이상 또는 108일이 되어야 비로소 술을 뜰 수 있다. 덧술을 반복할수록 발효는 안정되고 저장성은 높아진다. 술의 양이나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고, 술의 맛과 향이 중첩되어 좋은 술이 된다.

삼해주의 유래나 발생 배경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민간 풍속에서 술 빚는 날로 해일을 선호하였는데, 술은 빛깔이 맑고 밝아야 맛과 향이 좋기 때문이다. ‘해(亥)’자는 12지신 중 마지막 순서인 돼지를 뜻한다. 12지간 가운데 돼지의 피가 가장 붉으면서 밝은 색깔을 띠므로 돼지날을 술 빚는 시기로 잡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1241년)에 삼해주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부터 주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권력과 상권의 중심지였던 한양의 사대부와 반가에서 애음했을 것이다. 덧술을 거듭하려면 당시 귀하게 여기는 쌀을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래서 사대부나 부유층이 아니면 삼해주를 빚어 마시기 힘들었을 테다. 이런 이유로 일반 가정에서 취흥을 돋우기 위한 술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후에 대중적으로 즐기게 되었는데, 곡물 조달이 어려운 폐해가 막심하자 ‘삼해주로 인한 양곡의 소비가 심하니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고 한다. 18세기 조리 관련 문헌에서 등장 빈도가 가장 높은 술로,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술이 삼해주였다.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삼해주는 18도 약주인 삼해주와 45도 소주인 삼해소주로 나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삼해주 빚기

삼해주는 본래 계절주의 성격을 띤다. 가장 추운 한겨울에 술을 빚어 저온에서 발효한다. 여느 술과 다르게 술 빚는 기간과 술 익는 시간이 오래 걸려 백일주(百日酒)라고 부를 만큼 과정이 까다롭다. 자칫하다 주조에 실패하기 쉽다.

제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50년경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가장 오래된 요리책 <산가요록>이다. 이 외 여러 문헌에 삼해주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재료의 가감과 처리 방법 등 가문마다 고유의 방법을 취하며 주조법에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삼해주는 대개 청주로 마시지만 소주로도 즐겼다. 조선 중엽 이후에는 소주의 술덧으로 쓰이는 예가 많아져 소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삼해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게 되면, 양이 30%에 그쳐 고급술에 속한다.

현재 서울에는 세 가지 방법으로 제조하는 삼해주가 있으며, 원료의 처리방법 등 각기 다른 방법으로 술을 빚고 있다.

 

삼해소주가에서 술 한 잔

술을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빚어보는 적극적인 술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술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 더 이상 사 먹지 못한다고 모두 한입 모아 말한다. 숙취 또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시 최초의 전통식품명인인 김택상 명인의 삼해소주가를 방문했다. 남녀노소 그리고 국적도 가리지 않고 즐긴다는 삼해주 체험은 유명 인사도 예외가 아니다. 김 명인은 얼마 전 가수 김세환 씨를 만났다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훨씬 동안이어서 뒤로 물러난 채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유쾌한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 전통주를 빚는 곳답게 삼해소주가는 소담한 한옥에 자리 잡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술항아리들이 맞이해준다. 김 명인의 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자들의 2차 덧술을 지켜봤다.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정성스러운 작업이었다. '전통'이라는 말에 담긴 무게가 느껴졌다. 이렇게 공들이는 노고는 전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제자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을 던지며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직접 빚은 각종 소주와 약주, 막걸리 등을 시음하며 술맛에 푹 빠졌다. 상황버섯주, 포도소주, 귤소주 등 술 빚으러 왔다가 어째 마시는 술이 더 많았다.

우리 선조들은 삼해주를 극찬했다. 고려의 명문장가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삼해주의 뛰어난 맛을 언급했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 정은 <태평한화>에서 ‘삼해주 없다면 극락이라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기대상은 <고봉집>에서 삼해주 마시는 즐거움을 노래했다.

현대인이 음미하는 삼해주도 다를 바가 없다. 삼해주가 담긴 잔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향을 맡으며 한 잔 했다. 입안에서 굴러가며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이어졌다. 술을 삼킨 후에는 독한 술기운을 느꼈다. 한 제자는 마시고 나서 올라오는 강한 후향이 삼해소주 같은 증류주의 매력이라 했다. 삼해소주의 투명한 빛깔은 그 맑음이 비할 데 없어 마시는 순간 뼛속까지 투영되는 듯했다.

술을 잘 알지 못해도 그저 궁금하다는 호기심에 와도 좋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오기도 하고 술 좋아하는 커플이 함께, 혹은 혼자 와도 된다. 초짜부터 한가락 하는 주당까지, 화기애애하게 서울 전통 삼해주로 풍류를 만끽할 수 있다.


전통식품명인 제69호 김택상 명인이 말하는 삼해주

식품명인은 우리 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 ‘식품산업진 흥법’에 의거하여 우수한 식품 기능인을 국가에서 지정하는 제도이다. 전통식품은 국산 공산물을 주원료로 하여 제조·가공되고,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우리 고유의 맛· 향·빛깔을 내는 식품이 대상이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8호 삼해주 보유자인 이동복 장인의 아들인 김 명인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올해로 30년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삼해주를 빚을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첫째 마음가짐, 둘째 환경, 셋째 재료, 넷째 사후 관리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삼해주를 빚으면 좋을까요?
쉽고 편하게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전통을 잇는다는 정체성을 기억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느림의 미학을 향유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삼해주와 어울리는 음식은?
맵고 짠 강한 풍미의 음식은 술 고유의 향미를 잃게 만듭니다.
견과류나 싱싱한 회 또는 육회, 산과 밭에서 나는 우리 농산물 요리를 곁들이면 좋습니다.


진행 [Queen 김민주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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