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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초파일 초대석 - 불화 작가 도야 김현자
부처님 오신 날, 초파일 초대석 - 불화 작가 도야 김현자
  • 송혜란
  • 승인 2017.05.02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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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불화 <통일찰해도>,<36문수보살 화현도> 작가
 

손을 모은 채 통일을 기원하는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화 <통일찰해도>와 오대산 상원사의 천정화 <36문수보살화현도>에 빛나는 도야 김현자 작가. 불모(佛母)라 불리는 도야는 창작 불화를 그리는 흔치 않은 작가로 손꼽힌다. 오랫동안 과거 문헌을 샅샅이 뒤지며 불화의 구성 형태와 문양은 물론 재료를 끈질기게 연구해온 도야 김현자(경기무형문화재 단청장 이수자)를 만나 그녀의 작품 세계를 들어보았다.     

화창한 봄날에 찾은 김현자 작가의 화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화실의 벽은 어김없이 대형 불화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바닥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한창 작업에 몰입 중이었다는 걸 짐작케 하는 미완성 작품과 화구들이 즐비해 있었다. 인터뷰 사진 촬영 차 잠시 붓을 잡은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채색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도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어릴 적 절에만 가면 발걸음을 짐짓 멈추게 했던 으스스한 탱화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찰에 있는 여느 불화와 느낌이 사뭇 다르죠? 아마 색감 때문일 거예요. 석채를 사용했거든요. 탱화에 자연 색상을 가미하면 훨씬 편안하고 안정감 있어 보입니다.”

처음 불화를 만나던 날

어언 40여 년 전 그녀는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유화부터 동양화, 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회화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서울에서 입시 미술학원을 비롯해 만화학원을 15년 넘게 해오며 미술 강사로도 승승장구했다. 미술교육 사업은 이내 어린이 미술학원에까지 뻗을 정도로 흥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닥뜨렸다.

당시 그녀의 나이 서른 중반 즈음 되었을 때 일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육체적으로도 혹독한 시기를 겪던 그때,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대학 시절부터 접한 불교 경전이었다. 불교 경전을 다시 펼쳐보며 겨우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한 지인의 권유로 단청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청은 그녀가 불화와 인연을 맺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기로에 놓였는데 말 못할 만큼 참 암담하더라고요. 식음을 전폐할 만큼 힘든 나날이었어요. 그러나 부처님 말씀으로 내게 닥친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걷어지자 비로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그때 절에 있는 으스스한 불화를 보고 아차 이거다 싶더군요. 그리고 마음먹었지요. 아, 나는 저렇게 무서운 그림이 아니라 온화하고 예쁜 불화를 그려야겠다고요.”

자연의 빛깔, 석채의 아우라

불화를 그리겠다고 굳게 결심한 순간. 제일 먼저 그녀는 기존 탱화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고뇌했다. 대학 시절 불교학생회 회원이었던 도야는 절에만 항상 가면 ‘그림이 왜 저리 무서울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고 한다.

마침내 과도한 원색이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불화에 석채 천연색의 부드러운 색감을 가미했다. 대단하게도 자연 빛깔로 채색된 불화는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풍기며 엄청난 아우라를 뽐냈다. 

석채는 값도 비싸도 소량으로 생산되므로 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주로 화학 안료가 석채 대체품으로 쓰이고 있다. 화학 안료는 자연 안료보다 색상이 선명하고 세한 느낌이 있어 여러 색을 혼합하면 화학적 상호 작용으로 인해 색이 탁해지거나 건조 후 변색이 빠르게 진행되는 단점이 있다.
 
“제가 물감 하나 때문에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언젠가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옛 그림의 수리를 맡은 적이 있는데요. 그 그림에서 빛나는 색채에 반해버렸거든요. 비결은 석채였는데 빛깔이 참 곱더라고요. 그때부터 전통공예학과 문화재학으로 석사 학위를, 수리회화복원학과 미술사학으로 박사 과정까지 내리밟으며 재료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오늘날 그녀의 불화 작품이 색감 면에서 가히 뛰어난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이다.
도야 김현자는 석채의 기를 받으며 2001년 경기무형문화재 단청장 이수자가 되고, 2005년 문화재 수리기능자 화공도 이수했다. 2002년 수월관음도 모사본으로 불교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정승공예전과 불교미술대전에서 각 입선과 특선을 거머쥐는 등 상복도 상당했다. 2014년에는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공로상을 받는 영예까지 껴안은 도야는 불화 작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여 년 작업을 통해 색감과 필력 등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아 불화 작가로 명성이 높은 도야는 작품 활동 외에 동국대 문화재과 교수, 한국문화재 수리기능인 협회 이사, 도야 불교미술·단청문양 연구소 소장 등 대외적으로 불화의 진흥을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 (좌)통일찰해도 (우)36문수보살화현도.


신중탱화 <통일찰해도>

지금껏 도야가 남긴 불화로는 부산 범어서 관음전에 있는 <수월관음도>부터 화성 칠보사의 <아미타 삼존후불도>, 인천 구양사의 <신중도>, 동국대 정각원에 봉안된 <통일찰해도>, 오대산 상원사에 걸린 <36문수보살화현도>까지 수십 점이 넘는다. 조계사와 서울 백련산 팔각정, 영광 연흥사 등의 단청 공사도 꽤 진행한 바 있다.

그 중 ‘도야 김현자’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은 단연 <통일찰해도>와 <36문수보살화현도>이다. 현재 불화는 기존 원본을 모사해 그려진 게 대다수다. 그러나 두 작품은 오로지 그녀의 창작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창작 불화로 특히 유명한 <통일찰해도>는 그녀가 대학 때 불교학생회 지도 법사였던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스님이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로고를 보여주며 ‘탱화를 한번 구상해보라’고 제안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로고는 동그란 원 안에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창작의 고민을 거듭하다 모든 불교 서적을 뒤진 그녀는 <화엄경> 39품 중 하나인 ‘화장세계품’에서 설명하는 비로자나불의 정토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윽고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와 같이 남북이 하나 된 염원을 형성화해 작품을 완성했다.

도야는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연화장 세계를 받치는 풍륜을 그리고, 대연화장 안에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에 등장한 산과 백두산 천지를 넣었다. 바탕에는 태극 문양을 깔았으며, 한반도를 수호하는 사천왕까지 상생과 화합을 향한 그녀의 간절한 발원을 고스란히 상징화했다.

“<통일찰해도>는 호위와 바람, 믿음 등 고대부터 현대인들이 믿는 모든 대상을 다 넣어 조성한 불화예요. 조국 평화통일과 불교중흥을 기원한 신중탱화이지요.”
이 작품은 현재 동국대 정각원에 봉안돼 있다.

창작 불화 <36문수보살화현도>

그녀의 또 다른 역작은 강원도 오대산의 상원사 청풍루 천장화인 <36문수보살화현도>이다. 상원사 청풍루에 들어설 때 머리 위 천장의 문수보살 탱화를 친견하면 누구나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절로 환희심이 샘솟는다고 명성이 자자하다.

멀고 먼 신라 시대 보천태자와 호명 왕자가 오대산에 들어와 수행했다. 당시 진여원이라 불리던 현 상원사에 문수보살이 매일 나타나 36가지 신통한 변화를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와 <오대산 사적>에 실려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상원사 불전에 모셨던 ‘문수보살 36화현도’가 소실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해 내려오는 도상이 없었다. 이에 상원사 주지스님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사방의 사자좌에 상주하며 설법하는 서른여섯존의 문수보살도를 그려달라고 의뢰해 왔다. 이를 받아들인 도야가 36화현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지금의 <36문수보살화현도>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거작으로 칭송되는 <통일찰해도>와 <36문수보살화현도>는 모두 창작 불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불화는 전통을 이어가되 끊임없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도야의 소명의식이 자리해있다.

“불화도 현시대에 맞게 창작해야 그 전통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고 봐요.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면 언젠가 불화의 가치도 퇴색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채색만큼은 전통기법을 따르고 전통과 문헌을 텍스트로 해 우리 시대에 향유될 수 있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독야청청 나 홀로 작업

도야 김현자의 작품은 대부분 종이가 아닌 삼베에 채색을 입혀 완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거의 세로 크기만 무려 6m 넘는 대작이 부지기수다. 한 사람이 이 같은 대작 불사를 회향하려면 혼신을 다 바쳐야 한다. 최초 불화를 배울 때도 큰 스승 없이 독학으로 일취월장한 작가는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제가 석채를 쓰잖아요. 석채는 농도를 조절하기 매우 힘든 재료예요. 접착재인 아교의 농도를 잘못 맞추면 채색 할 때 뭉치거나 얼룩이 질 수 있어요.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다 보면 곳곳에 색상 톤이 안 맞아 그림의 흐름도 깨지기 십상입니다. 제가 하는 작품들이 워낙 다 대작이다 보니 당연히 옆에서 제자들이 많이 도와주겠거니 싶겠지만, 아니에요. 저는 창작 기획부터 밑그림 그리기, 채색까지 독야청청 나 홀로 작업합니다.”

붓끝에 초강도의 집중력을 기하고 몸의 기운을 한곳으로 모으는 고행 끝에 만들어지는 불화.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8시간 동안 줄곧 채색하는 데 여념이 없다는 김 작가가 산고에 버금가는 이 힘든 일을 여태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불화를 그릴 때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요. 그림판 위에 앉아 있을 때야말로 무념무상에 접어들 수 있지요. 불화가 굉장히 세밀한 작업인지라 처음엔 고생도 많이 했는데요. 요즘 들어서야 불화를 하는 제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야에게 남은 과제는

머지않은 날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창작 불화 10점을 세상에 내놓는 게 목표라는 도야 김현자 작가. 도야는 불화뿐 아니라 민화까지 작품 세계를 무한정 넓혀가고 있다. 불화를 배우러 온 제자에게 불화보다 민화를 통해 먼저 석채 쓰는 기법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탱화에는 디테일한 면들이 많아서 눈썰미도 있고 손끝도 야무져야 해요. 특히 색을 쓰는데 공식이 있으므로 그림을 읽는 안목도 겸비해야 합니다. 유일하게 탱화가 그래요. 아무리 석채 쓰는 기법을 배우고 싶다고 해도 바로 불화에 첫발을 떼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저까지 민화에 붓을 대게 됐어요.”

지난 몇 년간 열심히 그려온 민화를 작년 <한옥박람회> 때 선보인 도야 김현자. 그녀의 작품은 벌써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작업실에서 탱화 작업에만 목매다 가끔 사찰 길에 올라 단청을 하며 바람도 쐰다는 도야는 교육부 NCS 학습모듈 교재개발 집필위원으로서 교과서 <문화재 단청 시공>을 펴내기도 했다.

올 하반기에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한 갤러리와 광주 예술의전당에서 고려 불화, 전통 꽃문양 작품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모두 초대전이라 뿌듯한 마음뿐이다. 요즘 전통 꽃문양의 매력에도 푸욱 빠진 그녀는 올가을 제주도에서 아예 꽃문양 전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남은 인생에 제가 스스로 부여한 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더 나아가 도야의 이름이 걸린 불화가 100년 이상 길이 남을 수 있기를 함께 염원해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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