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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정호승 시인, 나는 왜 시를 쓰는가?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7.05.17 0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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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 시인.

화제작 <슬픔이 기쁨에게>,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등으로 대표되는 서정시인 정호승.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시적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결코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는 평을 받는다. 오히려 체온으로 슬픔을 모두 감싸 안는다. 그의 언어만큼이나 사람을 대하는 품행도 무척 따스했는데…. 새로운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로 돌아온 그를 만나기 위해 창비 서교 사옥을 찾았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돼 문단에 들어온 정호승 시인. 그는 <슬픔이 기쁨에게>,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등으로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숱한 문학상을 휩쓸었다. 사랑과 외로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는 그의 시 70여 편은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덧 나이 70을 앞두고 있다.

“저는 이미 늙은 시인이에요.”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한 그가 던진 첫마디다. 최근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르누아르의 여인> 전이 열리기에 들어갔더니 나이가 많다며 4,000원의 요금 할인을 받았단다.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낸 때가 그의 나이 20대 후반, 벌써 6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그는 아홉 번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를 펴냈다.

“어찌 됐든 시로 버림받지 않고, 시를 쓸 수 있는 건강을 허락받아 아홉 번째 시집까지 내게 됐네요. 큰 축복과 은총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욱이 언제 또 이런 시집을 낼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간 묵혀 둔 시까지 모두 끄집어내 한 편도 남지 않게 털털 털어 버렸다는 정호승 시인.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지금,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는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3년 뒤 70세가 됐을 때 10번째 시집을 내면 어떨까?

“저에게는 긍정적인 욕심이지요. 이제 내 가슴에 시가 고이게 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 지가 불과 몇 달 전인데 말이에요. 예전에는 제 가슴을 딱 누르면 미처 쓰지 못한 시가 막 배어나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 가슴을 한번 눌러 보세요. 한 편도 안 나옵니다. 그래도 내 나이 70을, 숫자 10을 채우는 기념 시집을 또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날은 그가 왜 이러한 욕심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밤하늘의 별을 세듯 이어졌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어떤 시인이든 갖는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요. 내가 이제껏 시를 쓰지 않고 살았더라면 인간으로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시를 쓰는가’라는 문제는 ‘왜 사는가’라는 문제와도 같아요.”

나는 왜 시를 쓰는가? 나는 왜 사는가? 역시 정답은 없다.
“저 같은 경우 그래도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써 시를 써 온 것은 아닐까….”

물론 1970년대 시인으로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시대의 고통을 가슴 속에 뼈저리게 간직하고 있다. 유신 시대는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자행한 시대이지 않은가. 당시 20대 청년 시인이었던 그가 해야 할 일은 고통스러운 시대의 눈물을 시로 닦고, 시로 노래하는 일이었다. 어두운 시대를 지나 군부독재를 끝내고 어느 정도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정호승 시인.

“내가 내 존재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누구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저는 제 존재의 가치를 잃을 때가 많았어요. 제가 한 마리 벌레처럼 느껴질 때가 수두룩했지요. 달팽이처럼 밟히고 으깨지고요. 그렇다면 내 존재의 가치를 어떻게 인정하느냐? 내가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는 시인이므로 시를 열심히 쓰는 거였지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으로써 시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성에서 시작되는 시

인생을 살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죽어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는 없을 터. 그래도 그는 다행히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출구로써 시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시집에 사인할 때 늘 즐겨 쓰는 말도 그것이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해 준다.'

“인간의 삶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을까요? 저는요, 인간은 참 비극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누군가 저에게 당신 시의 발화점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인간의 비극성 속에서 시는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인간은 비극적 존재다. 이러한 비극이 없으면 예술은 꽃피지 않는다. 인간의 비극을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서 그는 오늘도 시를 쓴다.

“우리 삶의 현실은 매우 비극적입니다. 최근 TV 뉴스를 보아도 그렇지요. 그런데 이 비극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저는 시인이므로 또 시로 꽃을 피웁니다. 단, 그 시는 비록 비극에 뿌리를 두더라도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해요.”

세상에 수많은 꽃이 있지만, 그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수련이다. 수련이 뿌리를 내리는 곳은 물속인데, 그 물은 깨끗할까? 아니다. 오염투성이인 흙탕물이다. 그런데 그 더러운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오르는 수련의 꽃말은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인간도, 시도 쉬이 그렇게 아름다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호승 시인.

인간 삶의 비극,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이 시의 꽃이고, 인간의 꽃이다. 탓닉한 스님도 그런 말씀을 했다. 우리는 인간인 이상 자기 인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행복은 인간의 의무다. 프랑스의 한 젊은 철학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다시 스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있어요. 돈일까요? 아닙니다.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합니다. 스님이 어느 책에 써 놓았더군요. 덕분에 고통에 대해 좀 이해하게 됐어요. 맨땅에 뿌리를 내려 피어난 연꽃은 없습니다. 한없이 우아한데, 반드시 진흙이 필요해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행복을 꽃 피우려면 고통이라는 진흙이 꼭 필요해요. 저도 그래요. 고통의 시에 뿌리를 내려 내가 시의 꽃을 피워 올린다는 생각을 더욱더 하게 됩니다.”

시는 고통의 꽃이라고 했던가. 어떻게 보면 우리가 고통의 가치를 너무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매일 행복만을 바라며 고통은 없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인생에 정말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저라면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겠지요. 고통은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해 주는 그 무엇이니까요. 앞서 이야기했던 비극성과도 연결됩니다. 제 인생에 고통이 없었다면 시를 쓸 수 없었을 거예요. 가치는요, 여러분 삶의 비극성, 고통 속에 다 뿌리내려 있는 겁니다. 시도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어요. 이를 외면하지 않은 이상 시는 우리 가슴 속에 끊임없이 고일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도 있는 거예요.”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中

잠시 그와 시 낭독회 시간을 가졌다. 시의 가장 본질은 역설과 반어다. 진정한 희망은 절망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시. 절망이 없는 희망보다 절망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연꽃이 진흙에 뿌리를 내려 아름다리 꽃피우는 것처럼 희망도 절망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절망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아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절망이 있어야 희망이 비로소 희망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희망이 없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지 않은가. 절망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희망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시에 숨어 있는 그런 역설적인 의미를 조금이나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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