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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의 나눔 인생 이야기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의 나눔 인생 이야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7.09.02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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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곱슬 파마머리, 편안한 복장에 남색 앞치마, 단체 급식 식판으로 대표되는 김하종 신부. 매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가출 청소년들이 있는 쉼터에 들른 후 안나의 집으로 출근하는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7시까지 노숙인을 위해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 퇴근하고도 아이들을 지키는 트럭, 아지트에 몸을 싣는 등 하루도 쉴 틈이 없는데…. 외국에서 온 그가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토록 선행을 베푸는 이유가 무엇일까? 경기도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김하종 신부는 어릴 적 심한 난독증을 앓았다. 읽고 쓰는 것이 무척 어려웠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감이 생길 법도 했지만, 오히려 자신처럼 부족한 게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신부가 된 그가 1990년 한국으로 건너온 지 올해 27년째 되었다. 세계에 많고 많은 나라 중에 그가 굳이 한국을 택한 이유는 바로 한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 때문이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동양철학을 전공했거든요. 동양철학을 깊이 공부하던 중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김대건 신부 등 한국 천주교에 대한 존경심이 강해졌어요. 한국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지요.” 
한국에 오자마자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나선 그는 한 지인으로부터 성남에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곳에 정착했다. 그때가 1992년이었다. 처음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부방에서 일하다 1993년 독거노인에게 무료로 점심을 급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8년 IMF 사태로 길거리에 노숙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급식소를 더 키운 게 지금의 안나의 집이다.

노숙인도 우리 형제, 자매, 이웃

안아 주고 나눠 주며 의지할 수 있는 집이란 의미의 안나의 집. 공휴일과 명절 상관없이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노숙인에게 따뜻한 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이곳에 하루에도 550명이 넘는 노숙인들이 몰려든다. 이 때문에 인근 주택에 피해를 주는 것에 미안하지만, 그의 특출 난 봉사 정신으로 도리어 노숙인이 더 증가하고 있다는 뭣 모른 쓴소리에는 억울함뿐이다.

“제가 단순히 노숙인이 불쌍하다고 밥만 주는 게 아니에요. 노숙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에요.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입니다. 어렸을 때 사랑과 교육, 관심을 받지 못하고 마음속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대다수이지요. 그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노숙인 자활 작업장을 운영하는 등 제 목표는 자활에 있어요. 노숙인 자활 작업장은 곧 사람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그들에게 사회 규칙을 가르치고, 옷과 이미용 서비스 제공, 인문학 교육도 시행하고 있어요.”

위기의 청소년들

안나의 집을 운영하며 우연히 가출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까지 알게 된 김하종 신부는 2006년 청소년 쉼터도 설립했다. 가정 내 갈등과 폭력, 방임, 빈곤으로 길거리에 내몰린 청소년들을 위한 남자단기청소년쉼터, 중장기남자청소년쉼터에는 현재 40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청소년 쉼터의 목표 역시 가정 복귀에 있다. 

“우리나라 노숙인은 8만 명 정도예요. 가출 청소년은 25만 명에 이르지요. 지금은 가출 청소년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요.”
특히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며 3세대 아이들을 지켜봤다는 김하종 신부. 1990년대 공부하고 싶지만 가난해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했을 당시 그들은 공부만 도와주면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밑에서 곧잘 살았다. 김 신부는 이들을 일컬어 공부방 세대라고 불렀다. 이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후 부모의 죽음, 폭력, 방임으로 가출한 아이들은 가출 청소년임에도 쉼터에 입소해 선생님 말씀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들이 2세대라면, 6~7년 전부터 스마트폰 세대가 들어섰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 자유예요. 어른들의 간섭을 받고 싶어 하지 않지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하위층에 있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세상에 대한 믿음까지 잃은 채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요즘은 가출 패밀리라고 해서 14살, 15살 남녀학생들 여럿이 원룸에서 거의 부부 생활을 하며 산데요. 5~6개월 잠깐씩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는데, 이성에 대한 나쁜 기억만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엄마, 아빠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이에 그는 아예 아이들을 지켜 주는 트럭을 뜻하는 아지트까지 만들어 길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위기의 청소년들을 찾아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미래를 위해 공부만 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즐거움을 원하는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햄버거를 주는가 하면 보드게임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심리 상담도 해 준다. 이렇게 조금씩 신뢰를 쌓고 나야 비로소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행복의 비결은 나눔이다

이른 아침에는 쉼터로, 오후엔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 무료 급식, 저녁엔 아지트로 향해 가출청소년에게 간식을 건네는 김하종 신부. 정작 그에겐 끼니를 챙길 틈조차 없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자신의 삶까지 희생하며 남을 위해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가끔은 이러한 생활에 지치고 힘이 들 법도 하다.

“당연하죠. 저도 사람인데 외롭고, 지치고, 힘들어요.”
그럴 때면 종종 한강을 친구 삼아 자전거를 타고, 커피도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번 스트레스를 풀고 나면 더 힘을 얻어 즐겁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이토록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열심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의 비결이 뭘까요? 나눔이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결혼한 여자가 출산 후 오로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며 자신을 희생하는데도 행복해하잖아요. 한 남자가 여자 친구 생일을 맞아 어렵게 땀 흘려 번 돈으로 선물하는 순간도 행복합니다. 자기 생활은 없어지고, 자기 손은 비었는데 말이지요. 현대인들이 불행하다면 이는 나눔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면 행복하다는 김하종 신부의 이야기…. 누구든지 재능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니, 그 재능을 늘 나누고 살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나눔은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이 모이면 사회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밝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정치인만의 몫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서 27년 넘게 오직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그는 그 공로로 2014년 호암상 사회봉사상, 2015년 이원길 인본주의상 등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한국에서 보내며 죽을 때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는 게 그의 마지막 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 가장 외롭고 힘든 순간이 죽음이잖아요. 장기, 시신 기증으로나마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한 후 마지막은 편하게 쉬고 싶어요.”

한편, 안나의 집은 60% 이상이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일 노숙인을 위해 급식을 준비하는데 하루 재료비만 약 600만 원. 노숙인 자활 작업장에서 생산된 쇼핑백도 모두 판매 목적이 아니므로 공장 운영에도 안나의 집 예산이 매달 수백만 원씩 들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현 안나의 집 공간은 20년 계약이 만료돼 내년에 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주변에 새로운 땅을 마련, 곧 건축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건축비 25억 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는 호소했다. 다행히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을 비롯해 사회 각 계층의 도움으로 5억 원을 확보한 그는 더 많은 후원이 이어질 수 있기를 예수님만 믿고 기다린다고 전했다.

[Queen 송혜란 기자 ]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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