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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외길 인생 4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난 최불암
연기 외길 인생 4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난 최불암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11.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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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배우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그려내는 노장의 아름다운 투혼
연기 외길 인생 4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난 최불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에게 우리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비유한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멋지게 조각하는 어느 목공처럼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의 연기를 치열하게 다듬어온 배우가 있다. 그가 바로 최불암이다. 시대 속 국민의 희로애락과 언제나 함께했던 그에게서 ‘장인’의 혼을 담은 연기 열정이 엿보인다.


취재_ 박천국 기자 사진_ 양우영 기자

최불암은 요즘 사회 인사로 통한다. 서울특별시 홍보대사에서부터 시작해 웰컴투코리아시민협의회 회장은 물론, 다문화가족사랑 걷기 모금 축제 대회장 등 배우이지만 사회 인사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가 오랜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을 세상 속에 실천하려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이미지가 최근의 활동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이미지는 드라마 속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다.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그 절반 이상을 배우로 보낸 탓에 그의 인생은 TV 속 무대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수사반장’의 냉철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박 반장’, ‘전원일기’의 포근하고 가슴 따뜻했던 ‘김 회장’의 모습은 실제 그의 인생과도 꼭 닮아 있는 듯했다. 연기 인생 40년을 맞아 배우 최불암이 반추하는 드라마 같은 인생, 인생 같은 드라마 이야기.

연기 철학을 바꿔 평생의 배필을 만나다
그는 국립극장에서 연극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1960년대에는 연극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컸다. 그것은 당시 예술을 논하고 시대를 말해야 했던 연극인들이 직접 관객과 만나는 것을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가 큰 영향력을 미치기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연극인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TV 드라마 출연이 배우에게는 큰 희망사항이지만 제가 연기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연극인들의 프라이드는 상당했어요. 그때는 연극배우로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것을 터부시하던 시절이었죠.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이 들어갔기 때문에 무언가 인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생각을 단숨에 바꿔버린 일생일대의 전환점은 지금의 아내가 만들어줬다. 당시 TV 드라마 ‘정동마님’에 출연하고 있었던 아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방송국으로의 진출을 모색했다. 그리고 운명은 그의 손을 잡아줬다. 마침 1967년에 방영된 드라마 ‘수양대군’의 ‘김종서 장군’ 역할로 섭외가 들어온 것이다.
“지금은 출연료지만 그때는 사례라고 했어요, 어느 날 사례를 준다면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안 할 수도 있었어요. 돈이 그리울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집사람이 방송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여자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터라 그 배역을 맡게 된 거죠. 결혼 적령기였던 스물일곱 살에 제 최고의 가치는 지금의 아내였던 겁니다. 그거 하면서 결국 집사람을 만나게 되었죠.”
‘한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 당시 그의 사랑은 뜨거웠다.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도 싫은 눈치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물론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구애를 해나갔지만 당시에 그 사람이 인기가 좋아서 우리 같은 사람은 사실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섰던 일화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그. 진정한 로맨티스트가 따로 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이야기였다.
“눈이 오는 날이면 집사람을 찾아갔어요. 갈 때마다 꼭 꽃을 사가야 했거든요. 그 시절에 하우스가 있어 뭐가 있어, 겨울철 꽃이 귀하던 시절이었죠. 몇 시간을 헤매서라도 반드시 꽃을 구해서 아내의 품에 안겨줬죠.”
신문에 구멍을 뚫고 저 멀리서 지금의 아내를 바라보다 식대를 대신 내주며, “나 최불암이에요”라고 말했던 첫 만남은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올해 결혼 37주년을 맞은 최불암·김민자 부부는 안 보이는 곳에서 서로 모자란 부분은 함께 채워가며 여생을 나누고 있다.
“아내는 제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면서 모니터를 해주곤 합니다. 물론 혼나는 일이 많지만 서로에게 큰 힘이 되죠. 아내는 요즘 ‘사랑의 달팽이’라고 청각장애인을 돕는 단체에서 회장을 맡고 있어요. 다른 대외 행사는 크게 하지 않고 그 봉사활동에만 전념하고 있죠.”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욕심 그리고 부성애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업을 자식 중 누군가 대물림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둘 중 하나라도 저와 같은 길을 가주길 바랐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강요를 했던 것 같아요. 동녘(37)이가 안 좋아하더라고요. 동비(31)는 오빠가 근처도 안 가니까 덩달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연기자로서 그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죠.”
현재 맏아들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며 막내딸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여느 아버지처럼 걱정을 늘어놓는다.
“아들이 하는 일이 활발하지 못한 것 같아요. 힘들어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첫째는 결혼을 했지만 우리 딸내미가 아직 결혼을 못해서…. 빨리 시집을 가야 할 텐데, 걱정이죠(웃음).”
최근 그는 아들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지난해 7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손녀딸을 안겨준 것. 손녀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는지 손녀 이야기가 나오자 환한 웃음부터 짓는다.
“친구들이 손자손녀를 보면 그렇게 사랑이 간다고 그랬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하루만 안 봐도 괜히 섭섭하고 그래요. 아마 이 세상의 질서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그런 기쁨을 또 하나 주는 것 같아 감사함마저 느낀답니다.”
손녀딸을 보니 욕심이 또 생긴다고 했다. 한 대는 거르지만 그다음 세대가 그의 꿈을 이뤄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 녀석 외할머니도 음악을 했고 외할아버지도 연출을 한 사람이고, 엄마는 미술에 아빠도 나름 문화계 쪽에서 일하고 있으니 유전적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요. 3대쯤에서 좋은 물건이 하나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최불암의 연기 인생에서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두 작품의 촬영기간만 합쳐도 무려 30년이 넘을 정도다. 물론 그 기간 안에 쏟아부었을 열정과 에너지는 감히 상상도 못할 수준일 것이다.
“수사반장을 한다고 했을 때 제가 서른 살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런데 맡은 배역이 노련하면서도 관록 있는 형사이기 때문에 쉰 살 정도로 보여야 했어요. 연출자가 저더러 너무 젊다면서 머리도 좀 치고 얼굴에 주름도 넣고 하면 노련미가 나올 거라고 했죠.”
그렇게 시작된 수사반장과의 인연은 정권과 시대가 바뀌어도 이어져 갔다. 초기에는 제작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70%의 시청률이 넘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처음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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