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난타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선 늘 목이 마르죠” 세계를 사로잡은 퍼포먼스 공연 ‘난타’의 탄생 배경은 이미 방송과 언론을 통해 무수히 알려졌다. 그리고 그 성공 신화의 중심에는 송승환이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것. 무언가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도전정신과 남다른 일 욕심은 그를 오늘날 최고의 공연 제작자로 만들어놓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이지만, 지금에 도달하기까지 그가 넘어야 했던 장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0년 전 세계 공연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브로드웨이에 비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공연계는 그의 새로운 시도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성공 확률이 높은 라이선스 공연에 비해 토종 창작공연은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모험으로 다가왔던 것. 그러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던 그에게 금전적인 어려움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려움 끝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그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한 것. 우여곡절 끝에 결국 주식회사 PMC프로덕션이 만들어졌고 ‘난타’ 성공 신화의 서막을 장식했다. 바쁜 공연 제작자로서의 일상, 삶에 카타르시스가 되는 연기 |
젊은 시절 감행한 뉴욕 유학 & 세상에서 제일 편한 아내
그가 ‘난타’의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었던 밑바탕은 오래전 감행했던 미국 뉴욕으로의 유학이었다. 1985년 당시 20대의 그는 이미 인기스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처음 미국 유학을 결심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로케 미니시리즈 ‘불타는 바다’의 주인공으로 첫 해외 나들이를 경험한 뒤였다. 이미 다른 세상을 본 그에게 현재의 인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해외를 나가보고 느낀 게 너무 많았어요. 제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유학을 결심했어요. 지금 안 가면 영원히 못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들면 더 가기 힘들어질 것 같으니까 용기를 낸 거죠.” 그러나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부모가 사업에 실패해 집안 형편이 급격하게 기울었던 것. 결국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고생이 불 보듯 뻔한 유학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4년가량 뉴욕에 살며 새롭게 보고 들은 것이 많았어요. 당시 뉴욕은 그야말로 세계 문화의 중심이었고, 또 한국에 문화가 다양하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그 시간은 제 인생에서 굉장히 좋은 기회였어요.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난타’라는 공연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였다. 게다가 단둘이 약혼식을 하고 함께 떠난 아내도 있었다. 당시 뉴욕에서 공부를 하는 많은 유학생들처럼 그도 일을 해야만 했다. 공부를 위해 간 만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일을 찾은 그. 바로 벼룩시장으로 일컬어지는 ‘프리마켓’이었다. “프리마켓에서 시계도 팔고 신발도 팔았어요. 또 한인방송에서 라디오 DJ 일도 하면서 공부를 했죠.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 제가 사장이니까 장사를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됐으니까요(웃음).”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당시 함께 떠난 아내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들어하기보다는 뉴욕에서의 삶을 즐겼던 아내.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은 늘 뒤따랐지만 부부에겐 젊음과 사랑이라는 최대의 무기가 있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단둘이 외국에 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두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면 로맨틱한 일이었어요. 또 외국생활에서 오는 이국적인 즐거움도 있었죠. 장사도 그렇고 모든 게 재미있기만 했어요. 뉴욕이란 도시 자체가 굉장히 역동적이기 때문에 즐길 거리도 많았고요. 남들이 볼 때는 어려워 보였는지 모르지만, 우리한테는 어쩌면 즐기면서 살아온 뉴욕생활이었죠(웃음).” 아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일 욕심이 많아 바쁜 그를 많이 이해해준다. 워낙 젊어서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터라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못해주는 것이 많지만 ‘난타’ 해외 공연차 외국을 나갈 일이 있으면 아내와의 동행 자체가 데이트나 마찬가지다. “해외에 가면 어떨 땐 6박 7일 동안 아내와 꼭 붙어 있을 때도 있어요(웃음). 아내요? 집에서 살림하는 평범한 여자죠. 20년 이상 살았으니까 이제는 서로 저작권자 © Queen 이코노미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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