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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배우 정진영의 카메라 밖 이야기
지적인 배우 정진영의 카메라 밖 이야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9.2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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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져요”


그의 이름이 스크린에 뜨면 괜스레 안도감이 밀려든다. 촌로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짙은 눈매로 상대를 노려보면 순간 멈칫하게 만드는 강한 힘이 있다. 이제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배우 정진영은 여전히 고개를 잘 숙인다. 겸손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표현이 더 알맞지 싶다. 촬영현장에서도 선배라고 무게를 잡는 법이 없다. 후배이기 전에 파트너로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소속사나 매니저 없이 ‘수공업자’로 배우 인생 21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1988년 극단 ‘한강’의 노동극 ‘대결’로 연기에 입문했다.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8년 영화 ‘약속’의 엄기탁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다. 대중에게 ‘배우 정진영’을 각인시킨 영화는 단연 ‘왕의 남자’ 연산군이다. 그는 이준익 감독과 여섯 작품을 함께하면서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라고도 불린다.
연출부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이제는 존재감 있는 배우가 된 정진영. 카메라 밖 이야기를 하자며, 그의 속내를 샅샅이 훑었다. 기묘한 심리전 없이 꽤 진지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는 부정했지만 어쩔 수 없는 ‘배우의 얼굴’이 군데군데 묻어났다.

모든 영화는 내 손가락과 같다
“완성 자체가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찍은 영화예요. 그런데 갈수록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영화를 찍다 보면 이 영화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판단이 서거든요. 무지하게 힘들게 찍은 영화는 개봉도 힘들고 또 결과도 그렇게 되는데, 이 영화는 복이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똑같은 운명이라면 복 있는 사람이 편하잖아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홍기선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에 선택한 영화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 것은 물론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로, 정진영은 용의자를 치열하게 쫓는 워커홀릭 검사 박대식 역을 맡았다. 그는 감독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시나리오 수정에도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실제로 정진영은 시나리오를 받으면 열심히 공부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 유리왕으로 출연했을 때는 강일수 연출가로부터 “감독을 굉장히 괴롭히는 배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드라마 현장은 영화랑 또 다르더라고요. 무슨 사람들이 잠도 안 자고 드라마를 찍어요. 지방 촬영이 많았는데 이동하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얼마나 바쁜 상황인지 알지만 물어봐야 배울 수 있고, 그래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감독님이 ‘자극이 되는 배우’라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죠.”
그는 1997년 연출부로 들어간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뒤, 김유진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을 연결해주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전의 활동영역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었다. 상업영화이면서 조폭영화였다.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아내의 권유에 출연을 결정했고, 영화를 찍는 동안 아들이 태어나 아이를 ‘약속둥이’라고 부른다. 이후 영화로 밥벌이를 하게 된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다작을 하는 배우가 아닌데도 운 좋게 알려진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정진영은 한 인터뷰에서 “내 필모그래피 중 부끄러운 작품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이 나느냐고 물으니, “제가 그렇게 건방진 말을 했어요?”라며 쑥스러워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손가락에 비유했다.
“어떤 것은 잘나고 또 어떤 것은 못나고 했겠지만 어찌됐든 내 손가락이잖아요. 짧고 못났어도 어떤 영화든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였을 거예요. 영화라는 게 일단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 장면을 찍지 못해요. 한 신, 한 테이크, 한 편의 영화를 다시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대충할 수 없는 거예요. 잘하든 못하든 다시 맞이하지 못하는 시간이니까… 일단 열심히 해요. 연인이나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연인을 내일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면 오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잖아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의 진정성’을 가장 먼저 본다. 또 배우로서 도전할 만한 배역인지, 그리고 감독,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을 살핀다. 크랭크인을 앞두면 몸 관리에 들어간다. 술은 일체 입에 대지 않고 식사 양도 줄인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배가 나오고 얼굴에 살이 붙는다고 한다. 전작 ‘바람의 나라’, ‘님은 먼 곳에’ 때 비해 조금 핼쑥한 느낌이라고 하니, “촬영이 끝나면 다시 느슨해진다”며 “얼마 안 있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부암동 신혼생활, 행복했던 기억
배우는 가끔 시간이 하염없이 많은 직업이기도 하다. 다른 배우들처럼 특별한 취미가 없는 그는 생활의 규칙성을 갖기 위해 홍대 앞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작업실로 출근한다.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한다.
“배우는 현장에서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촬영을 안 하면 멍청해져요. 아무 일이 없을 때가 가장 힘들죠. 요즘에는 집 앞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 봐요. 체계 있게 많이 보는 건 아니고 그냥 잡히는 대로 읽고 있어요. 요즘에는 그 재미로 살아요.”
두 달 전 부암동 카페 앞에서 혼자 걸어가는 정진영을 본 기억이 있다. 해가 막 질 무렵이었는데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 인상 깊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산책하는 모습이어서 방해가 될까 머뭇거렸다. 그날이 기억나는지 물었더니, “이준익 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혼자 걸어가면서 왜 그렇게 웃었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부암동은 그의 신혼생활을 시작한 추억이 많은 곳이었다.
정진영은 ‘약속’이 개봉되던 1998년에 결혼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넷, 7세 연하인 아내는 그의 대학 선배가 다니던 대학원 동기의 여동생이었다. 사귄 지 두 달 만에 결혼, 그냥 만남부터가 ‘운명’이었다고 한다.
“결혼이라는 게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일곱 살 나이차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전에는 범접할 수 없는 나이였죠(웃음). 그때 저는 비전도 없는 연출부인 데다 뚜렷한 밥벌이도 없는 때였는데 어떻게 잘 엮었어요. 물론 중간에 열심히 다리를 놓아준 분들이 있었죠.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고’. 공교롭게 일이 되려고 하니까, 예컨대 아내의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상사가 제 선배인 그런 식의 관계가 많았어요. 그런데 다들 저에 대해 좋은 말을 해줬대요. 가진 건 없지만 사람은 괜찮다고(웃음). 집안의 반대도 없었고 편하게 결혼했어요. 우려할 만한 상황인데도 저를 믿어주신 것 같아요. 장모님도 그냥 저를 좋아해주셨고요.”
부암동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전셋집에서 시작한 신혼은 꿈결 같았다. 출퇴근이 따로 없었던 그는 아내와 함께 밥을 지어먹고, 밤이 되면 집밖에 나와 북한산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련하다고 말하는 그.
“돈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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