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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과 지순한 러브스토리 ‘20개월의 사랑, 나흘간의 결혼’
장진영과 지순한 러브스토리 ‘20개월의 사랑, 나흘간의 결혼’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10.1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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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월간의 순애보,  아내가 떠나는 길 남편의 손가락에는
두 개의 결혼반지가 나란히 끼워져 있었다"

 

지난 9월 1일, 1년간 위암으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해온 장진영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9월 처음 위암 발병 사실이 알려진 후 안타까움 속에 응원을 보냈던 팬들과 동료배우, 지인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할 말을 잃었다. 투병기간 내내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 터라 많은 이들에게는 건강했을 때의 모습만이 기억되고 있는 그녀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993년 미스코리아로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린 장진영은 그야말로 천생 배우의 인생을 살았다. 크고 작은 드라마에서 얼굴을 비치던 그녀가 처음 영화배우로 데뷔한 것은 1999년 ‘자귀모’를 통해서였다. 이후 ‘반칙왕’으로 본격적인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소름’과 ‘싱글즈’로 두 번의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정상의 입지를 굳혔다. 그렇게 1년 전 출연한 드라마 ‘로비스트’가 종영할 당시만 해도 건강한 웃음을 전했던 그녀. 때문에 그 누구도 그것이 장진영의 화려했던 연기 인생에 유작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위암 발병 후 극복 의지 불태웠지만, 끝내…
장진영이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9월 종합건강검진을 받던 중이었다. 당시에는 초기로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이미 상당히 진행이 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정상의 스타였기에 그녀의 위암 발병 소식은 많은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이후 장진영은 강한 의지로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항암 치료와 함께 구당 김남수 옹에게 뜸 치료까지 받으며 한때는 상태가 많이 호전됐음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요양을 하며 가수 김건모의 콘서트 현장을 찾아 공연을 관람했던 것. 그런 그녀가 돌연 미국 LA로 요양을 떠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곁을 지키는 이가 연인 김영균 씨라는 사실을 알리며 열애 중임을 밝힌 것도 그 즈음이다.
그렇게 운명과 같은 사랑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본지는 당시 그녀의 병이 애석하게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이미 그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그녀의 암 진행 상태가 전이단계인 4기임을 확인했기 때문.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쾌유를 간절히 바라며 사실을 함구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위암이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위태로운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짧디 짧은 생의 마지막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지난 8월 귀국한 장진영은 다시 호스피스 병동에 재입원했다.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병마의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녀를 엄습해왔다. 치료는 이미 중단된 상황에서 모르핀으로 고통만을 감소시킬 뿐이었다. 결국 지난 9월 1일 오후 4시경 가족과 연인 김씨가 보는 앞에서 그녀는 “끝까지 사랑해줘서 고맙다. 오래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영화 같은 운명의 아이러니, 눈물겨운 순애보
투병기간 보여준 장진영에 대한 김영균 씨의 사랑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김봉호 전 국회의장의 차남으로 한국에서 부동산과 건설업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장진영과는 지난해 초 지인의 소개로 만나 연인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키워오던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교제한 지 9개월 만의 일이다. 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장진영을 걱정한 김씨는 그녀에게 건강검진을 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두 사람. 그러나 얼마 뒤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김씨에게 전해졌다. 위암이 이미 심각할 정도로 진행됐다는 것.
차마 장진영에게 바로 말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그녀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금씩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후 김씨는 장진영의 병간호를 자청하며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연인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정성은 장진영은 물론 그녀의 가족까지도 감동시켰다. 사랑의 힘이었을까. 한때 장진영은 회복의 기미까지 보이며 김씨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 6월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한 그녀의 생일파티에서 “평생 동반자가 되고 싶다”며 갑작스럽게 청혼을 한 김씨.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장진영의 병이 회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예감하는 상황에서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온 청혼을 감행한 것이다. 지인들의 눈물 속에 이뤄진 청혼에서 결국 장진영은 김씨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월 요양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대고 떠난 미국행은 사실 둘만의 결혼식을 위해서였던 것.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밝힌 결혼 이유는 한 남자의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한다.
“제가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저였어요. 아프고 힘든 길을 홀로 보낸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마음 아팠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꿈속에서나마 평생지기로 남고 싶었어요. 현실에서 못 이룬 사랑을 하늘에서 이루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축복해주시고 (아내가) 하늘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장진영이 숨지기 4일 전인 8월 28일,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어 돌아온 뒤에도 변함없이 그녀의 곁을 지키던 남편 김씨는 미국에서 떼어온 결혼증명서와 장진영의 신분증을 들고 서울 성북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때를 놓치기 전 아내가 된 장진영에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법적인 유산문제에 관해서도 처갓집에 모든 권리를 일체 위임하며 일찌감치 입장을 정리했다.
출연작인 ‘국화꽃 향기’와 너무나 똑같은 운명을 밟은 장진영. 그러한 그녀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

눈물의 장례식장, 빈소를 찾아 며느리를 인정한 시아버지
장진영과 남편 김씨의 애절했던 현생의 사랑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지난 9월 1일 저녁 흰 천이 둘러진 아내의 시신과 함께 강남성모병원에서 장례식장이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온 김씨는 미처 상복을 갖춰입지도 못한 채였다. 수척한 얼굴은 이미 눈물도 마른 듯 멍해 보였고 퀭한 눈은 바닥만을 향하고 있었다.
빈소가 마련되기 전부터 황망한 소식을 전해들은 동료 선·후배 연예인들과 지인들이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삼삼오오 장례식장으로 모여들었다. 이후로 이어진 조문행렬 속에서도 남편은 묵묵히 장인과 장모의 곁에서 빈소를 지켰다.
한가득 슬픔으로 채워진 장례식장에 뜻밖의 문상객이 찾아온 것은 3일간의 장례가 거의 끝나가던 지난 9월 3일이었다. 바로 남편 김씨의 아버지인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아내와 가족, 친지 등 10여 명과 함께 문상을 온 김 전 부의장은 장진영의 부모와 인사를 나누고 25분여 동안 빈소에 머물며 조문을 했다. 부모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몰래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감행한 아들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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