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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아버지 강영우 박사를 위해 안과 의사 된 아들 강진석 박사 미국 워싱턴 안과의사협회장에 선출되다
시각장애인 아버지 강영우 박사를 위해 안과 의사 된 아들 강진석 박사 미국 워싱턴 안과의사협회장에 선출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3.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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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하게 사는 삶에는 관심 없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강진석(미국명 폴 강) 박사의 성공을 논하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 할 사람이 있다. 그의 아버지인 강영우 박사다. 지난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내기도 한 강영우 박사의 ‘어려움을 극복한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1944년 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난 강영우 박사가 실명을 한 것은 중학교 시절 사고에 의해서였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이후 충격을 받은 모친은 뇌졸중으로,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 일하던 누나는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고 그만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강영우 박사는 모진 어려움을 극복하는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1976년 한국 최초로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주류사회에서 인정받는 명사가 된 강영우 박사에 이어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아들들의 활약상이다. 둘째 아들인 강진영 변호사는 지난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부자가 대를 이어 각기 다른 정당 출신의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에 입성하는 진기록으로,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첫째 아들인 강진석 박사가 워싱턴 안과의사협회 회장이 됨으로써 이들 부자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해 초 회장에 취임한 강진석 박사의 나이가 불과 서른여섯 살이라는 것. 이제까지 안과의사협회 회장은 보통 50∼60대 의사들이 맡아오던 자리였기에 그의 취임은 관행을 깬 최초의 사례가 됐다.

#미국 주류사회에 떠오르는 글로벌 리더
“한국인 2세로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한국인을 넘어 글로벌 리더로서 안과의사협회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섬김의 자세로 회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협동심을 유도해나갈 생각입니다.”
안과의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 남짓, 강진석 박사의 각오는 남다른 면모가 느껴졌다. 그가 취임한 워싱턴 안과의사협회는 워싱턴과 북버지니아, 메릴랜드 지역 안과 의사들의 모임. 수많은 안과 의사들 중 젊은 나이의 그가 회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과 인격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두드러진 재능을 보이며 가정적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강진석 박사는 조지타운 의대 조교수는 물론 안과 교수들이 합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종합병원 ‘Eye Doctors of Washington’의 공동 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미(美)안과학회와 환자들에 의해 ‘Top Doctor’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실공히 미국 안과계의 별이 된 것이다.
미국 최고의 명문 하버드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인디애나대학 의대를 거쳐 듀크대 병원에서 근무를 하며 20대를 보냈다. 당시 전공인 각막과 굴절, 백내장 수술에서 두각을 보이며 실력을 쌓아온 그는 30대 초반에 이미 최고의 안과 의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진석 박사가 안과 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네 살 무렵이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아버지 강영우 박사였다.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신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눈뜬 아버지를 가지고 싶다고 기도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 저를 보신 아버지가 ‘안과 의사가 되어서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는 게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나 최고의 안과 의사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의학의 한계로 인해 아버지의 눈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눈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걸어온 길이었기에 좌절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과전문대학을 다니며 전문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버지의 눈은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죠. 그래서 저는 망막 전문의의 길을 포기하고 각막 전문 안과 의사가 되기로 진로를 정했어요. 아버지의 경우처럼 망막질환은 사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드물어 안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농담 삼아 망막을 전공하면 ‘막막하다’라고도 해요. 대신 각막이식수술은 더 발전만 한다면 아버지와 같은 환자들에게 바로 시력을 찾아줄 수 있어요. 제가 각막 분야를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죠.”
이처럼 강진석 박사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타인을 섬기는 봉사의 마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어렵게 미국으로 와 공부를 하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탓에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조차도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가난했어요. 친구들의 부모님은 거의 의사와 변호사였죠. 저와 동생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시며 도전의식을 갖도록 하셨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난 2008년 2월 피츠버그대학교 졸업식은 이들 부자에게 뭉클한 감격을 안겨주었다. 졸업식과 함께 이어진 ‘올해의 동문상’ 수상식에 수상자인 아버지 강영우 박사를 아들인 강진석 박사가 의학박사 가운을 입고 안내한 것. 미국 언론은 부자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꿈을 이룬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영재로 거듭나게 한 아버지의 교육
강진석 박사는 아버지 강영우 박사가 피츠버그대학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 태어났다. 교육전문가로서 강영우 박사는 어린 아들을 키우는 와중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보통 교육과는 다른 영재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시행착오도 없진 않았다.
“진석이는 타고난 영재였어요. 그러나 학업 성취와 표준화 검사 학력이 중상에 머물러 있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영재로 판별되지 못했죠. 아내와 저는 진석이를 영재로 길러보겠다는 생각으로 기회만 있으면 학교에서 배울 것들을 먼저 가르쳤어요. 결국 그로 인해 진석이는 학교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배우게 되면서 지적 흥분을 느끼지 못했던 거죠. 게다가 거듭되는 실패로 자신감까지 잃어 심력에 손상을 입었고요. 일방적으로 지력 편중 교육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심력을 길러주는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에 관한 교육을 시작했어요. 결과는 1년 만에 성공이었죠.”(강영우 박사)
아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강영우 박사가 사용한 방법은 자신의 생일에 어떠한 위인들이 태어났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강진석 박사의 생일이 4월 23일인 것에 착안해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동질감을 갖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한 교육을 통해 강진석 박사는 자신이 특별한 사명과 목적을 갖고 태어난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있기에 안과의사협회 회장에 오른 지금, 새삼스레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은 남다르다.
“당시에는 아버지에게 ‘제가 아빠의 아들이라서 머리가 좋은 학생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요. 이제는 저를 그만 내버려두세요’라고 반항(?)을 하기도 했어요. 반발심이라기보다 저 스스로 영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신감도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아버지는 제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셨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저와 동생에게 인생의 분명한 비전과 목표를 심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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