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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출가 그후 10년 대학 강단에 선 혜민 스님을 만나다
하버드에서 출가 그후 10년 대학 강단에 선 혜민 스님을 만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6.14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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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종교학자 막스 뮐러는 “하나의 종교밖에 모르면 사실 종교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다른 종교 속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 혜민 스님은 “종교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관념적으로만 종교를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종교의 벽을 만들어 오해와 갈등을 쌓는다”고 지적한다.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는 법정 스님의 편지글을 읽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들에게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는 혜민 스님. 그는 “후배 종교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지 그 모범을 직접 보여준 두 분을 가장 존경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소용없다
“부처님과의 첫 인연은 버클리대학에서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어요.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빨간색 승복을 입은 어느 스님을 보게 된 거죠. 승복 색깔이 낯설어 저도 모르게 어디에서 오셨는지 물어보게 됐어요. 미국에 두 달 정도 방문한 티베트 승려라고 하면서 저를 아파트로 초대하셨어요.”
혜민 스님은 그 스님과의 대화가 아주 편하고 친숙했다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종교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그 스님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가르침과 불교 명상법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님이 바로 티베트 불교 가규파의 덕망 있는 린포체 스님으로 미국 제자들의 요청으로 버클리에 온 것이었다. 린포체 스님과의 인연이 있는 후 혜민 스님은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깨달음의 척도를 어떤 신비한 깨달음의 체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두고 혼란을 빚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체험은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작은 깨달음이 있은 후 유명한 스승님을 찾아다니는 방황은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석사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 많이 쉬게 됐어요.”
얼마 후 스님은 아주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20대 지인의 죽음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학위도, 돈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성공 이후의 행복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자
과연 자신이 원하는 어떤 목표를 이루어냈을 때 행복할까? 혜민 스님은 하버드대 입학통지서를 받고 잠시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막상 하버드대에 들어가서 공부해보니 행복한 느낌은 사라지고, 또 다른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승려가 된 이유는 이렇게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어요. 무조건 성공을 위해서 끝없이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죠.”
승복을 입은 후 가장 큰 변화라면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목표를 이룬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 주변을 살피면서 조건 없이 나눌 때 나와 같이한다는 것, 적은 돈이라도 베풀었을 때, 도와주고 나서도 남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잊어버리려고 애쓸 때 혜민 스님은 행복했다고 말한다.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다 
“스님이 되어 속인이랑 똑같이 대학교수 임용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 제 모습이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강단에 올라 미국 대학생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스님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죠.”
100 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미 동북부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햄프셔대학교에서 혜민 스님은 정식 교수로 임용됐다. 무엇보다도 스승의 사찰과 두 시간 남짓 떨어져 있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혜민 스님이 대학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가르친 지 어느덧 2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미국 교육이 우수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공부가 학생들에게 삶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처럼 학교 성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 나누어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고.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개개인이 가진 개성과 능력을 존중해주는 교육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장학금을 한국처럼 우수학생 유치용으로 사용하지 않아요. 집안 사정이 어려운 학생을 중심으로 베풉니다. 일단 합격이 되고 나면 엄청난 장학금이 제공되는 셈이죠. 이 모든 것은 졸업생들의 기부문화가 있기 때문이에요.”
혜민 스님은 하버드대 석사과정과 프린스턴대학 박사과정 때 학교에 돈을 안 내고 다닐 수 있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더 크다.
미국 교육은 토론 위주의 수업이다. 개개인의 주장을 펼치고 반박하고 협의하고 상의해나가는 과정이다. 스님은 1시간 20분 수업 중 40분 이상 강의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사고하도록 요구한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이유가 바로 저의 목표이기도 해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은 거죠. 사실 외국에서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남한에서 왔니, 북한에서 왔니’가 전부예요. 우리나라의 종교와 문화가 의미를 주려면 누군가가 불러줘야 하잖아요. 일본이나 중국 못지않은 전통문화가 있다는 걸 세계인에게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발문)
“하느님을 말하는 이가 있고,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써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영혼으로 감지하는 이가 있다. 우리는 지금 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는 법정 스님의 편지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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