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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 출신 엄친아 천재 팝 피아니스트, 신지호의 특별한 매력
버클리 출신 엄친아 천재 팝 피아니스트, 신지호의 특별한 매력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10.0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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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피아노 몸체 전체가 악기예요. 두드리면 타악기, 튕기면 현악기가 되니까요. 다양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팝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어느 곳에서나 분위기 메이커는 있다. 가볍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아이돌 가수 닉쿤을 꼭 닮은 외모로 ‘버클리 닉쿤’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피아니스트 신지호와의 만남이 그랬다. 출중한 외모를 믿고 거드름을 피웠다면 얄미워 보일 수도 있었겠으나 직접 만나본 그는 너무나 진솔하고 겸손하며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거기다 자신의 에너지까지 유쾌하게 발산할 줄 아는 영리한 그였기에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피아노 연주라는 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졸리고 지루할 수 있잖아요. 전 그런 클래식 피아노 연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사람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도록 퍼포먼스가 가득한 연주를 하고 싶어요. 굳이 의자에 앉지 않고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고, 꼭 건반이 아니더라도 피아노 몸체를 두들겨 리듬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피아노 줄을 튕겨서 하프처럼 연주할 수도 있고요. 저에겐 피아노 전체가 악기예요.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말 그대로 사람들을 신나게 해주는 팝 피아니스트죠.”


피아노 신동, 세계에서 인정받다
네 살의 어린아이는 할머니에게 선물 받은 피아노가 그저 소리 나는 장난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그 ‘소리 나는 장난감’을 좋아하던 아이는 TV 만화에 나오는 주제곡을 한 번 들었을 뿐인데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지만 더듬더듬 그리고 정확히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 아이, 바로 팝 피아니스트 신지호다.
아이는 그 길로 피아노 기초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서는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남자아이를 둔 여느 부모들이 그렇듯이 신지호의 부모 역시 음악을 생업으로 하는 것을 반대했다. 레슨도 모두 그만두게 할 정도로 부모의 반대는 녹록지 않았고, 신지호 역시 그런 부모의 뜻을 받아들여 중학교 3학년 때는 학업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막상 미국에 가니 적응하기도 힘들고 친구도 없고 피아노가 더 생각나는 거예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강당으로 가서 혼자 피아노를 치곤 했죠. 유학 초기에는 피아노가 제 유일한 친구였으니까요.”
어느 날 강당에서 피아노를 치던 그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 지역의 작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신지호의 연주를 들은 지휘자는 그 자리에서 오케스트라 입단을 제안했고,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신지호로서는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오케스트라는 금관악기나 현악기 위주여서 굳이 피아노가 필요 없었지만 신지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한 지휘자의 권한으로 피아노를 가장 가운데 두고 팀의 배치를 새롭게 했다. 신지호가 들어온 후 시골의 작은 오케스트라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미국 전역으로 공연을 다니는 대형 악단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에서 4년 동안 리더를 했어요. 지휘도 하고 연주도 했죠. 그때 그 오케스트라 악단을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제가 지금까지 올 수나 있었을까 싶어요. 좋은 친구를 만들어주고 무엇보다 제가 다시 피아노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팀이죠. 저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추억이에요.”
피아노를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택한 미국행이었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더욱 크게 키워가며 또 인정받는 아들을 보면서 부모도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고3이 되던 해 음악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일단 3학년이 돼야 전공을 결정할 수 있는 인디애나주립대에 입학하고, 2년 동안 음악 관련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본래 클래식을 전공하려던 그의 꿈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남의 곡을 연주하는 클래식보다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인터넷에 올린 UCC로 유명인이 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약간의 방황기였던 것 같아요. 클래식을 전공해 정통 피아니스트의 길로 들어가자니 제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던 거죠. 그때 학업을 잠시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렇게 몇 개월 한국에 머물면서 재미로 올린 UCC가 사람들에게 큰 반응을 얻고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거죠. 어안이 벙벙했어요(웃음).”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다양한 장르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실용음악 명문 버클리 음대로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막상 버클리 음대에 가고 보니 정말로 대단한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과연 버클리구나 싶었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더 지독히 연습해야 했어요.”
타고난 재능에 끈기 있는 연습이 더해진 결과일까. 그는 버클리 음대의 장학생으로 현재 2년 조기졸업을 앞두고 있다.


가수의 꿈을 키우는 동생과 언젠가 한 무대에서
신지호에게 처음 피아노를 알려준 할머니 얘기가 나오자 그의 사슴 같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가 제일 사랑하던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외아들이다 보니 전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손길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부모님께 혼이 날 때도, 제가 정말 피아노를 하고 싶어할 때도 할머니는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죠. 항상 ‘우리 지호가 최고’라고 말씀해주시던 할머니 생각이 요즘 들어 더 많이 나요. 제 앨범을 보셨으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건축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관도 그러했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며 더욱 예의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그.
“부모님은 처음에는 아들이 음악하는 것을 많이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기뻐해주세요. 주로 집에서 연습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소리를 낼 때가 많은데, 한 번도 핀잔을 주신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부드러운 외모와 싹싹한 성격으로 막내 티가 나지만 그는 여덟 살이나 어린 남동생을 둔 맏이이다. 중학교 3학년인 동생도 음악에 뜻을 두고 현재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아버지가 학창시절에 취미로 밴드에서 드럼을 치셨는데, 그 끼를 물려받아서인지 우리 형제 모두 음악을 하고 있네요(웃음). 실력을 키워서 언젠가 동생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런 날이 꼭 오겠죠?”


먼 훗날, 만능 엔터테이너 음악감독 꿈꿔
‘버클리 닉쿤’이라는 별명은 신지호에게 플러스이자 마이너스다. 너무 뛰어난 미남을 닮아서 더욱 주목받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음악이 아닌 외모로만 부각되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다고.
“인터넷에 악플도 많이 달렸어요. ‘네가 무슨 우리 닉쿤 오빠를 닮았냐’부터 ‘성형한 거 아니냐’는 등 외모를 비하하는 악플에 많이 속상했죠. 실제로 닉쿤 씨를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정말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같이 너무도 꽃미남이시더라고요. 저는 그분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죠.”
닉쿤에 절대 뒤지지 않을 완벽한 꽃미남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말하는 그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2년째 여자친구가 없는 걸요(웃음). 헤어진 여자친구하고는 4년 정도 사귀었어요. 정말로 믿던 사람과 이별을 겪고 나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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