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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출신 도연 스님, 삶이 힘든 이들에게
카이스트 출신 도연 스님, 삶이 힘든 이들에게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8.11.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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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 보세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 나답게 사는 삶이지요.”
‘카이스트 스님’으로 유명한 도연 스님. 스님은 세계적인 물리학자를 꿈꾸며 카이스트에 입학했다가 돌연 출가했다. 그 길에서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인생에서 진정 필요한 공부를 해온 스님이 이제 자신이 터득한 삶의 지혜를 풀어놓는다. 나답게 살고자 노력함으로써 행복해지는 법.


‘나는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일까?’

대학 시절 지치고 힘들 때마다 스님이 스스로 했던 질문이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을 거쳐 취업하는 게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자꾸 의구심이 들 적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은 보장되겠지만 왠지 그것은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았다고 스님은 회상했다.

“저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어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한 항해를 떠났던 그를 저서 <있는 그대로 나답게> 출간을 맞아 봉은사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고민에 실마리가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민이 있다. 그 고민이 생기게 된 바탕, 근본적인 원인을 삶의 보편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스님은 첫 운을 뗐다. 이를 좀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이윽고 상위 가치가 보인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다. 그때 답을 구하면 된다고 스님은 이야기했다.

“고민이 곧 본질입니다.”
사람마다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뉜다. 그런데 누군가 물질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본질이 도덕, 영적인 것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게임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 메신저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여자들. 어찌 보면 그것이 낮은 차원의 여가 생활일지 몰라도 그 안에 우리 삶의 근본적인 욕구가 다 들어 있어요. 게임의 경우 몰입이지요.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몰입했을 때 행복감을 느껴요. 말 그대로 무아지경(無我之境)입니다. 클럽에서 춤출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지경까지 가고 싶은 거지요.”

메신저의 경우는 소통이다. 관계에서 행복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행하든 안 하든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고민이 진리와 가까운 이유다. 그들이 겪는 고통이 사소한 것 같지만 거기에 핵심이 담겨 있는 셈이다. 다만 철학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고민은 곧 자기의 본질을 볼 기회라고 스님은 설명했다.

“심리 상담에서도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게 치유의 시작이라고 해요. 그것을 객관화시키고, 이슈화하며, 지금 당장 해결이 안 되더라도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지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차 있으면 일단 가벼운 질문으로 툭 건드려요.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데 자기가 왜 힘든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학교생활이든 직장생활이든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일정 수위를 넘어 자기를 해하면서까지 몰두하다가 무감각해진 사람들이요.”

나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

그들이 힘든 이유는 대부분 욕심에 있다.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

“보통은 ‘해야 하니까’ 하는 친구들이지요. 높은 학점을 따지 않으면 취업이 힘들기 때문이에요. 취업 후에는 직장에 들어가 자기가 받은 돈만큼 ‘해야 하므로’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찾은 의미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외압, 반강제적인 떠밀림에 하는 일들은 지쳐서 쓰러지게 돼 있어요. 특히 그 욕심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과장, 과시일 때는 더더욱요.”

물론 이러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단지 그것을 본 사람, 아직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너무 성공을 위해 바쁘게 산 나머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고 스님은 꼬집었다.

“자신에게 헛된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씻어내기 위해 애를 쓰게 되거든요. 지금 당장 삶을 재정비해야 해요. 진정한 행복을 추구해서 자신답게 살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을 사랑하고, 거기에 방해되는 부정적인 요소를 없애는 게 순서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자기답게 살기로 한 순간부터 몰랐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스님을 강조했다. 특히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등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야만 한다.

철학(哲學)이란

이를 또 다른 말로 ‘철학’이라고 한다. 철학은 생각하는 힘이다. 철학의 어원도 명철하다, 밝을 ‘철(哲)’에서 나왔다. 철학 하는 사람을 철인, 현자라고도 하는데, 이는 곧 밝아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곧 어두운 의식이 밝아짐을 향해 가는 게 철학이라고 스님은 설명했다. 이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문제를 회피하는 순간 어두워지므로. 자신이 현재 처한 문제에 맞서겠다는 의지, 거기서 철학은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여실지견(如實知見). 이러한 철학은 곧 명상과도 닮았다.

“철학이 이론이라면 명상은 실천이지요. 또 철학이 진단이라면 명상은 치료 방법입니다.”
이는 철학을 통해 혜안을 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 삶에서 또 한 번 부딪혀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표현을 쓴다. 먼저 이치를 안 후 마음을 닦는다는 뜻이다.

이때 명상 또한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명상하고 있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명상을 간단히 말하면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지혜’다. 더 확장해보면 ‘현재 자신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이를 위해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요가 수행자의 대표 경전인 ‘요가수트라’에서는 이 경지를 삼매(三昧)로 풀이한다. 즉, 집중의 대상만이 홀로 빛나고 집중하는 마음 자체는 없어진 것 같은 상태다. 독서에 최대로 집중한 상태를 의미하는 ‘독서삼매경’이라는 말에도 삼매를 쓰는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서도 명상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 속 명상법, 휴식

일상에서 하는 명상 가운데 가장 탁월한 명상은 휴식이다. 틱낫한 스님도 가끔 레이지 데이(Lazy day)를 갖는다고 전해진다. 하루를 최대한 게으르게 사는 것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책 읽고 싶을 때 책 읽으며, 의도적으로 최대한 느리게 사는 삶, 여유를 스스로 선물한다. 그래야 진짜 휴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휴식이 무슨 명상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터.

“혹시 ‘잘 쉬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잠을 잔다고 휴식하는 게 아니에요. 명상을 활용한 휴식을 했을 때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왜, 요즘은 휴가를 다녀온 후 여독을 호소하는 현대인들도 많잖아요.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게 명상입니다.”

무엇보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하고 더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잘 쉬어야 한다. 쉼은 몸과 마음의 질병을 예방해준다. 몸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체력을 회복시켜주며 뇌를 쉬게 해주기 때문이다. 휴식은 몸의 혈액순환과 전체적인 기능을 활성화해주고 면역력을 강화해주며 심신의 안정을 도와준다고 스님은 예찬했다. 마음속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불안한 심리를 잠식시켜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명상, 휴식의 효과다.

모두가 자신답게 사는 세상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을 자연스럽게 살게 될 것이라는 도연 스님.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말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 들어있다. 지금 여기에 잘 집중하면 먼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오래된 과거에 연연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비로소 매 순간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본질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외부로부터 받은 신념과 이념에서 벗어나 나로서의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로 인해 삶의 주인으로서 지혜와 통찰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요구하는 정답으로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도연 스님. 스스로 찾은 ‘나다움’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사 실패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이것이 자신만의 철학을 갖추는 과정이고, 명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란다. 그리고 마침내 있는 그대로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인생이기도 하다.

“자기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자신답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나와 주변,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 최상의 길이 될 겁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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