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1:30 (토)
 실시간뉴스
겨울의 초입, 정동길을 가다... ‘광화문연가’와 ‘미스터 션샤인’의 거리
겨울의 초입, 정동길을 가다... ‘광화문연가’와 ‘미스터 션샤인’의 거리
  • 최하나 기자
  • 승인 2018.12.12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기행
'미스터 션사인의 거리' 정동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미스터 션사인의 거리' 정동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꼽아도 좋을 만했다.

서울에서 가장 로맨틱한 거리를 꼽으라면 정동 길이 아닐까.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을 품고 있는 정동 길은 예나 지금이나 연인들의 거리다. 한국 근현대사 속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적 배경, 바로 정동 길이다.

왜인지 알았다. 지난 가을 종영한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이 거리인 이유와 연가의 대명사인 작곡가 이영훈의 곡에 왜 정동 길이 등장하는지 그 이유를.

로맨틱한 드라마와 노래의 소재가 되는 정동 길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정동 길은 로맨틱함 이전에 우리에겐 비극적인 구한말의 역사를 오롯이 끌어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의 초입, 늦가을에 접어든 11월의 어느 날 찾은 정동 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꼽아도 좋을 만했다. 정동극장 앞에 멈춰선 관광버스에선 히잡을 두른 여인들이 단체로 내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왔다는 그들은 자국에선 볼 수 없는 정취에 연신 뷰티풀을 외쳐댔다. 그러자 서울 토박이인 기자는 몇 년을 두고 봐도 아름다운 거리인 이곳에 자부심이 생겼다.

정동 길은 덕수궁의 입구인 대한문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난 좁은 길이 그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몇 걸음 걸어 들어가면 와플과 국수와 피자, 그리고 깡장집이 한 곳에 들어선 건물을 만나게 된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커피와 와플을 파는 곳이 맛집으로 이름난 집인데 여행객은 물론 주변 직장인들까지 갓 구워진 와플을 사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곤 한다.

이맘때면 군밤 향기가 덕수궁 돌담길을 장악하던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간식거리의 세대교체 혹은 글로벌화인지 아니면 아직 군밤이 등장하기엔 이른 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와플 향기는 군밤 못지않게 주변 풍경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맛집 백화점 같은 건물 옆으로 ‘무교동 그낙지’가, 그리고 노란 간판의 커피 & 크레페 집 하나를 더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책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맛집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데 그게 바로 이 정동 길의 매력이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은 배제되고 온전히 주변 풍경과 산책, 그리고 같이 산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탓이다. 거리 풍경에 시선을 두고 걷다 보니 기타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서울거리 어디서건 만나기 쉬운 버스킹 공연을 하는 뮤지션이었다. 돌담과 도로 가득 떨어져 있는 낙엽들, 운치 있는 자연이 주는 특별한 무대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걸어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넓어진 작은 광장 같은 곳이 나오는데 정동 로터리라고 불리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건물은 나무들이 만든 작은 숲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미술관의 작은 뜰 혹은 숲이라고 할 만한 이 정원은 제법 큰 나무들이 채우고 있는데 그 속속들이 작가들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미술관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 위치한 최우람 작가의 ‘숲의 수호자’와 배형경 작가의 ‘생각하다’는 미술관으로 난 길을 두고 양쪽의 숲에 자리해 관람객들을 맞는다.

학생 단체 관람객, 여성 그룹 관람객 등 기온이 급강하해 조금 썰렁하게 느껴지는 날씨지만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미술작품 전시가 많은 서울시립미술관은 정동 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정동 길 일대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외에도 관람할 만한 박물관과 전시관이 들이 9곳이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이화박물관, 농업박물관, 돈의문 박물관마을, 돈의문 전시관, 경찰박물관, 구세군역사박물관, 경교장, 국토발전 전시관 등이다.

덕수궁을 둘러싼 돌담길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요소는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들이다. 회색빛 고층 건물들이 점령해버린 서울시내에서는 이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건축양식이다. 신아기념관, 정동 제일교회, 이화여고 등 건물 그 자체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는 수단들이라 할 수 있다.

외국공관들이 많았던 정동 길은 당시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진 곳이다. 아관파천의 장소 구 러시아 공사관을 비롯해 몇몇 건물들은 정동 길의 지난 궤적이 드러나는 건물들이다. 정동극장은 역사 가득한 이 거리에 현재진행형 문화를 들여놓는다. ‘오셀로와 이아고’. 의심과 이간질의 아이콘인 두 인물이 보여줄 탈춤으로 재해석된 셰익스피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정동극장 안 카페는 로댕 미술관의 뒤뜰 정원에 위치한 카페를 연상케 한다. 정동극장 바로 옆 골목은 을사늑약이 벌어졌던 덕수궁 중명전으로 가는 길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영향인지 요즘 중명전은 정동 길에서 꼭 들러보는 곳으로 꼽힌다.

정동길의 겨울 초입 풍경은 로맨틱  그 자체라고나 할까.
정동길의 겨울 초입 풍경은 로맨틱 그 자체라고나 할까.


중명전 들어가는 골목을 바로 지나면 산책에 열중하여 혹은 그 사이 만난 미술관, 박물관에 들어가 관람하느라 지친 이들을 위해 쉬어갈 곳 몇 군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동극장에서 신아기념관까지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식당과 카페는 그 수 또한 몇 개 되지 않는다. 먼저 나오는 ‘덕수정’은 오랜 전통의 대중 한식 메뉴로 주변 직장인들의 맛집으로 꼽힌다. 그 옆으로 ‘전광수 커피하우스’와 역시 대중 한식 메뉴인 ‘정동 길’ 이란 작은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파스타와 꿀 고르곤졸라 피자로 유명한 ‘아하바’와 더치커피 하우스 ‘브라카’는 할로윈 장식인지 크리스마스 트리인지 일찍부터 가게 밖에 나무 장식을 하고 있었다.

신아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르 풀’은 샌드위치로 유명한 곳. 맛도 맛이지만 마치 신아기념관 마당에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야외테이블도 인기 좌석이다. 여기서 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번엔 이화백주년 기념관의 오래된 담과 문을 만나게 되는데 그 문 안쪽으로 카페 ‘라 그린’이 있다. 카페 ‘라 그린’은 이름 그대로 카페 앞과 안에 식물이 가득 살고 있는 카페다. 한국 전통 양식의 담과 문, 그 안쪽에 자리한 모던한 통유리창 식물 카페의 조화는 근사했다.

여기까지 정동 길을 돌자 아직 상업화 되지 않았던 예전의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앞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조용하고 한적했고 공연이 끝나는 밤이면 주변 카페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었다. 그때의 그곳처럼 정동 길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을 것이며 가로등은 적당한 밝기로만 밝혀 밤의 특권인 어둠의 농도를 지켜줄 것이다. 정동 길은 그렇게 정서가 담긴 곳으로 남을 것이다.

글 사진 [Queen 최하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