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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인술 펼치기 위해 뭉쳤다 대전 선병원 의가 삼형제
지역사회 인술 펼치기 위해 뭉쳤다 대전 선병원 의가 삼형제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2.1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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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찾는 모든 이에게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의료서비스 제공한다”


일류 호텔급 서비스, 입원환자의 25%가 대전 밖에서 찾아오는 의료허브, 두 자릿수 성장세 유지. 이 모든 것이 대전 선병원 앞에 붙는 수식어다. 1966년 20여 개 병상의 선 정형외과로 개원한 영훈의료재단 선병원은 현재 대전 목동의 본원을 비롯해 선치과병원, 종합검진센터가 마련된 중촌선병원, 대구 유성선병원 등 4개 병원에서 현재 1천여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선병원 척추센터는 지난 13년 동안 25만2천여 명, 관철센터는 34만 명이 입원할 만큼 충청권 대표 의료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척추관절센터의 수술환자 열 명 중 한 명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환자들이다. 대체로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오는 것과 달리 서울에서 지방으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건강검진센터가 특화한 1박 2일 숙박검진에서 눈에 띈다. 이 프로그램에는 서울 및 경기권에서 내려온 고객이 전체의 15∼20% 정도다. 서울 대형병원의 건강검진센터와 동일한 검사항목임에도 호텔급 서비스에 가격은 절반이라는 점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다른 지방에서 KTX를 타고 대전으로 오는 비율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대전은 148만여 명의 인구에 대학병원만 다섯 개가 위치해 있다. 서울 다음으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많은 도시여서 의료의 접견지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병원이 엄청난 속도로 성찰할 수 있었던 데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고 선호영 박사의 다섯 자녀 중 차남 선두훈, 삼남 선승훈, 사남 선경훈 세 형제의 하모니가 있었다.

관심과 사랑의 눈으로 세상 바라본 의사
대전 선병원은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한다”는 이념으로 고 선호영 박사에 의해 설립됐다. 선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해 당시 대전지역에서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유일한 정형외과 전문의였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선 박사는 대전 적십자 병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소외된 지역의 의료환경 문제점을 발견하고 선정형외과를 개원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인술을 펼치던 그는 3년여 만에 병원으로 격상시켰다.
선 박사는 의료인으로서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졌던 사람이다. 생전 매년 가장 낙후된 지역을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직접 진료한 무의촌 환자가 2만4천966명에 이른다. 선 정형외과 개원 이후에는 700여 명의 무의탁 노인들에게 척추, 관절수술을 무료로 직접 시술했으며 이들의 의식주까지도 끊임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당시에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은 후 도망가는 환자들도 종종 있었는데 선 박사는 환자의 집안형편을 살핀 뒤 집이 정말 어려우면 오히려 쌀을 사줄 정도로 나눔에 아낌이 없었다.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에게 치료받았던 환자들이 몰려와 빈소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선병원은 고 선호영 박사의 배려와 나눔정신을 21세기에 맞게 이어가고 있다. 2004년 국내 병원에서는 처음으로 발레파킹 서비스를 운영했으며, 생활고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간병제도와 진료비 무이자 분할상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고관절, 무릎관절 무료시술을 하고 있어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병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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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실천하는 차남 선두훈 이사장

직원의 안내를 받아 병원 사무실로 들어가니 3형제가 서로 다른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한 사무실을 세 명이 같이 쓴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모습을 대면하고 나니 형제의 조합이 상당히 유쾌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사무실. 세 명이 함께 공간을 사용하기까지는 환자들에게 방을 최대한 양보하고 외래 진료 등으로 자주 비우는 불필요한 공간을 줄이기 위한 배려가 숨어 있다. 또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형제들의 성격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
차남 선두훈 이사장은 가톨릭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강남 성모병원 정형외과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스탠포드 의대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인공 고관절 개발에 성공한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형외과의로 불린다. 특히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열린 고관절학회에서 ‘인공관절 표면처리기술’로 최고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삼남 선승훈 의료원장의 설득에 3형제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선병원에 합류했다. 가족의 오랜 러브콜을 외면할 수도 없었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발길을 이끈 것은 “형,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아갑니까?”라고 외친 선승훈 의료원장의 한마디였다. 어릴 적부터 의사가 되는 길만을 생각하고 또 의사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동생의 말은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의 선두훈 이사장은 아버지를 많이 닮아 있다. 선친이 그러했듯 그 역시 의료봉사활동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몽골 현지 의료봉사활동, 동티모르 소년축구선수단 무료진료 등 국제적인 의료봉사 기회가 생기면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그런 그의 봉사와 배려의 마음은 선승훈 의료원장의 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어릴 적 하루는 형님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아침에 나갈 때와 달리 신발이 없는 거예요. 부모님이 다그치며 무슨 일인지 물으니 길에 신발 없는 아이가 있어 벗어주고 왔다고 대답하더라고요.”
그가 선병원에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동안 선병원에는 강남성모병원에서 한 직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 새로 부임하는 선두훈 선생을 잘 모셔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던 것. 평소 누구에게든지 허물없이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그의 모습에 직원들까지도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이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외래 진료와 수술을 직접 집도하며 의술은 물론 인품까지도 갖추고 있는 그. 기자가 방문한 날도 그는 수술 스케줄로 무척 분주한 모습이었다. 환자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선두훈 이사장. 그가 생각하는 명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명의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쉴 때까지도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환자를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의사입니다.”

 

 

‘열정’으로 모든 일에 임하는 삼남 선승훈 의료원장

선승훈 의료원장과 몇 마디 대화만 나눴을 뿐인데 마음이 금세 편안해진다. 그가 가진 진실한 미소와 말솜씨 때문이다. 선병원에서 경영과 관련된 부분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선병원을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본다면 선승훈 의료원장은 모든 멤버를 조율하고 만족할 만한 소리가 날 수 있게 만드는 지휘자다. 그는 병원에 속한 모든 사람이 선병원을 일하고 싶은 병원, 일하기 좋은 병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에는 열정과 함께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가득하다.

발로 뛰는 현장에서 발견하는 기쁨
삼남 선승훈 의료원장은 미국 버클리대학교 경제학 학사,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경영학 석사, 인제대학교 병원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티은행에서 금융전문가로 역량을 쌓던 중 그는 아버지의 부름에 가장 먼저 선병원에 들어왔다.
서른셋의 나이에 마음에 드는 직장을 그만두고 갓 태어난 아이와 아내를 서울에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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