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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석 조재현과 진하게 나눈 ‘세월 토크’
정보석 조재현과 진하게 나눈 ‘세월 토크’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2.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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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원하지 않기로 한 바로 그 순간 나는 떠돌이가 돼”(‘빈 손’ 중, 성기완)라는 어느 시구에 마음이 저미는 동시에 뜨거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학로의 어느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놓고 앉아 불현듯 이 남자들이 그런 시구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배우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원하지 않는 순간, 열렬히 사랑하지 않는 순간 하릴없이 떠돌이가 될 운명일 사람들.
‘연극 열전 : 앵콜 민들레 바람 되어’로 정보석과 조재현이 한 무대에 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별 수 없이 눈빛이 좋은 남자들이다. 중견의 매혹을 함의한 이 깊은 느낌의 두 베테랑들 말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한 남자의 삶과 사랑’이라는 이 스토리는 중년의 남자배우에게 있어 얼마나 많은 매혹의 지점으로 다가갈 것인가. 그 지점들을 표현하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관록을 지녔고, 여전히 건재하다고 몸으로 말할 줄 아는 비상한 그 에너지가 좋다. 겨울 오후에 딱 머금을 만한 아주 적당한 햇살 안에서 세월이 바람처럼 그들에게 남자의 인생을 새겨놓았는가 싶었다.

허물없는 사이라는 말의 무게
정보석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조재현은 잠시 날카로운 몽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재현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정보석은 끄덕끄덕 맞장구를 치거나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형,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의 격의 없음은 물론 조금 미묘한 차원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아우라가 감돌았다.
“1990년이었나. 젊은 날의 초상. 그때 서로 인연이 닿았어요. 조재현이라는 배우를 굉장히 좋게 봤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잠시 잔소리를 했나 봐.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이 친구가 나중에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아마 저 딴에는 좋은 후배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랬을 거예요. 그때나 지금에나 여전히 애정의 일환이죠.”(정보석)
당시만 해도 영화 속 남자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일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이미 큰 역을 맡고 열연하며 한창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정보석을 보며 조재현은
“내가 태어나서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숱하게 했다.
“나한텐 정말 꿈과 같은 선배였어요. 옛날에는 영화가 정말로 한두 편밖에 없었거든요. 지금이랑 많이 달랐어요. 보석 형이 굉장히 노력하는 스타일이에요. 방송 대본도 일주일 쓰고 나서 버릴 때 보면 가장 너덜너덜해져 있었죠. 형광색, 빨간색 알록달록 칠하고. 그런데 사람이 참 겸손해요. 정말 지독한 노력파야.”(조재현)
“신인 때를 돌이켜보면 달리고 또 달렸던 기억밖에 안 나요. 극 초반에는 저도 방송하다가 잘 못한다고 쫓겨나기도 하고, 갖은 시행착오를 겪었죠. 하도 스케줄이 많으니까 나랑 같이 다니는 매니저가 운전하다가 자꾸 조는 거예요. 언젠가는 딱 눈을 떠보니까 차가 코스모스 길을 후두둑 훑으면서 달리고 있더라고. 소리를 빽 질러서 깨웠죠(웃음). 이렇게 살면 죽겠구나, 신인 시절에 몸 힘들 땐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정보석)
이번 연극에 함께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연극판에서 이미 노련하게 길을 터놓고 늘 현장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데 주력하는 조재현의 권유였다. “형, 이 작품 괜찮아. 같이하자”며 어느 날 부담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이라니, 인연이라면 확실히 괜찮은 인연이다.
“자이언트 끝내고 나도 모르게 신경이 많이 예민해져 있었어요. 악역을 했잖아요. ‘조필연’을 연기할 때 누가 내게 나쁜 종류의 충격을 줬을 때를 많이 떠올리면서 말 그대로 악에 받쳐 지르면서 연기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죠. 자이언트가 끝난 지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또 연기를 하고 싶은 거죠. 그때 재현이가 전화를 걸어왔고, 처음엔 좀 쉴까도 싶었는데 결국 넘어간 거죠(웃음).”(정보석)

가장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이라는 역할
얼굴만 놓고 보면 쌍벽을 이루는 미남들이지만, 동안 구조로 봤을 때 “내가 더 어려 보이지 않느냐”며 너털웃음을 내보이는 정보석이다. 젊은 후배들이 많을 텐데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에 조재현 측에서 “에이, 뭘 그런 걸 해” 하며 이내 손사래를 치는 기세다.
“아내가 가자고, 가자고, 열 번 정도 말하면 그때 한 번 정도 가요. 피부과요. 그게 머릿속에 막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니까 잘 안 가게 되는데, 사실은 가야 해요. 배우는 가는 게 맞아요. 우리는 사실 얼굴이 상품이잖아요. 요즘엔 일부러 의식하고 가려고 노력해요.”(조재현)
두 사람의 아내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이 자리까지 내내 배우로서 생활을 유지한 것도 그들의 역량이거나 노력의 차원이기도 하겠으나, 아내의 소리 없는 내조도 한몫했을 터라는 추측. 아내의 무한한 희생에 무심한(?) 다른 남편들과 달리 조재현은 아내가 아떤 존재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아내한테는 일단 물질적으로 전권을 다 넘겼어요. 그런 면에서 아쉬울 것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늘 미안한 마음이 있죠. 생각해보면 남편이랑 애들만 보고 살아온 거니까요. 많은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제 아내도 자기만의 삶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워낙 일이 바쁘니까 마음만큼 그렇게 아내에게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켜줄 여력도 잘 안 됐고요. 그래서 언젠가 아내에게 정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너랑 나랑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만났다고 가정하자. 그때 네가 다른 남자랑 사랑해도 용서해줄 것 같다’라고요. 나는 그래도 자유롭게 살았는데 아내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연극 시작하면 매 회 공연마다 아내에게 오라고 할 생각이에요.”(조재현)
어쩐지 감탄스러운 말이다. 다른 남자랑 사랑해도 용서해줄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할 수 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의 진정성 같은 것. 이윽고 조재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정보석이 뒤를 잇는다. 대한민국 중년 남편답게, 아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늘어놓는 그다.
“처음에 내가 정말 반해서 계속 쫓아다녔지. 그렇게 결혼한 거예요. 그런데 이젠 뭐, 너무 오래 같이 사니까 관성으로 흘러가는 거 있죠. 산소가 항상 옆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듯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어떤 안정감 때문에 좀 소홀해지게 되는 측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결혼하면 애들 문제라는 것도 있으니까. 감정 긁는 얘기 한 번 하고, 상처받으면 또 그 상처를 되갚는 얘기를 하고. 눈 마주치면 물론 아직도 예뻐요. 예쁜데, 서로 얘기만 시작하면 또 싸우고 있는 거지(웃음).”(정보석)
한 여자의 남편일 뿐 아니라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는 만큼 어느덧 성년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버지라는 이름. 그 중후한 뉘앙스의 단어가 그들에게는 어떤 질감으로 다가갈까.
“우리 아들은 지금 쇼트트랙을 하고 있어요. 일등 자리에 있다고는 할 수 없고, 늘 이등 역할이에요.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시작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배우는 게 있겠죠.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달려가는 모습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냐, 안 했느냐도 중요하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죠. 우리 딸은 미국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연기를 할 것이란 보장은 없죠. 아예 안 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요. 자기가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좌절한 것을 이겨나가는 것이 어쨌든 중요한 것이겠죠.”(조재현)

생각을 담아내는 연기, 그리고 삶을 위해
“뭐든 규모를 작게 하라”는 것이 평소 정보석의 신념이다. 아이들에게도 안 쓰는 것부터 배우라고 강조한다는 그다. 안 쓰는 버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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