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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교육을 꿈꾼다 아이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대안학교
최선의 교육을 꿈꾼다 아이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대안학교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3.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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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또 다른 선택 대안학교는 무엇인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다.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요한 변화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확고한 기준이 실종됐다는 것.
입시 위주, 성과 위주의 교육열에 부응하지 못한 공교육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들에게 대안학교는 말 그대로 대안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취재 황정호 기자 | 사진 철딱서니학교 | 자료제공 ‘대안학교 길라잡이’(민들레)

요즘 들어 ‘공부는 학원에 가서 하는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학교의 의미조차 퇴색돼가고 있는 공교육의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는 물론 취학 전 어린아이까지도 학원을 보내는 요즘 세태에서 아이들로서는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다.
상당수의 부모들 역시 그러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 격차와 교육 격차가 무관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급급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지만 ‘내 아이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야 한다’는 이유는 그들에게 입시 위주 경쟁에 아이를 내모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여기게 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과연 이러한 교육 현실이 내 아이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대안학교는 그러한 고민 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열망, 그리고 현주소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일컬어지는 지난 시절 배움은 성공을 위한 지름길로 인식돼왔다. 뜨거운 교육열로 대변되는 교육 수요에 비해 열악했던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은 아이 개개인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고려하기보다는 똑같이 가르쳐서 일정 수준의 교육 효과를 추구하는 획일화된 교육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 그간의 교육 방침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게끔 하는 교육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적지 않은 부모들에게 지지를 얻었고, 그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안학교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선택 중 하나로 대두됐다.
이후 대안학교는 단순히 입시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가르치던 것을 탈피해 자율과 인성 함양을 돕거나 아이들에게 삶의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철학을 키워주는 교육을 추구하며 홈스쿨링, 귀농, 마을학교, 도시공동체, 지역공부방 등의 이름으로 현실에 반영됐다. 그러나 문제는 새롭고 다른 방식의 교육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과 별개로 개별적인 교육의 특성이 왜곡되거나 짜임새 있고 체계화된 형태를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안학교의 이름을 표방하고 있지만 본래 의도와는 다른 특성화 학교의 형태를 띠거나 부모들이 생각하는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부모들의 심중에는 ‘과연 내 아이가 이러한 교육과정을 거쳐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일종의 두려움이 자리잡기도 했다. 획일적인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화를 추구하는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은 과도기적 상황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불안감을 반영하듯 진보 계열의 일부 학교를 제외한 상당수의 학교들이 미국 유학을 목표로 강도 높은 입시교육을 운영하는가 하면 골프와 승마를 체육교과로 삼는 귀족화 경향을 띠기도 한다. 대안학교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반 사립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은 ‘대안’이라는 말 자체의 모호함 탓이기도 하다. 무심코 대안학교가 기존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때론 대안학교를 표방하는 학교들에게 ‘대안’은 기존의 학교에서 얻을 수 없는 고비용의 특성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공교육이 아이들의 입시공부조차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입시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안일 수도 있고 기독교 등의 종교계 입장에서는 종교교육이 밑바탕이 된 학교가 대안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이라는 말에 가치가 부여돼 있지 않다 해도 그 말을 교육과 연결했던 처음 취지를 돌이켜볼 때 어떠한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에 책임질 수 있게 하는 교육, 자율과 자치, 상생의 교육으로 실현되고 그래서 이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대안학교는 고비용의 귀족형 특성화 학교와는 구분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어떤 기준으로 학교를 선택해야 하나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자율적인 교육가치를 표방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연구자에 따라 대안학교의 특성을 자유형, 생태형, 재적응형, 고유이념 추구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또한 생활방식으로 분류할 때 기숙형과 비기숙형, 통합형으로, 학교가 위치한 곳에 따라 전원형과 도시형으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학력 인정을 기준으로 비인가형과 인가형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대안학교가 여러 가지 유형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학교를 원하는 부모들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건은 무엇일까. 우선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 교사들 간의 관계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학생과 교사 모두의 자율성이 얼마나 보장되느냐 하는 점도 중요한 선택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초등학교의 경우 인가형 대안학교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학력이 인정되는 대안학교 가운데는 위탁형이 있는데, 이는 일반 중·고교를 다니는 아이들 가운데 정규과정의 학교가 맞지 않는 아이들이 다른 교육기관에서 학습하면 출석을 인정하는 제도다.
이러한 대안학교의 형태에 대한 고려 외에도 중요한 것은 ‘과연 내 아이와 학교가 잘 맞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간혹 대안학교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부모 중에는 막연히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학교, 혹은 부모가 원하는 인성교육과 공부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학교로 단정짓는 경우가 있다. 이미 일반적인 제도권 공교육에 익숙한 아이라면 대안학교라는 전혀 다른 교육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가도 따져볼 문제다. 대안학교에 보내면 아이가 더 공부를 잘할 것이라든지, 일반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등의 희망사항도 부모의 욕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를 위한 대안교육이 부모에게 다른 의미의 욕심으로 선택될 경우 대안이 아닌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스스로도 아직까지 비주류인 대안교육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의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나 아내 중 한 명의 고집으로 대안학교를 보낸다면 그것은 나중에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자신 때문에 다투는 것을 자녀가 알게 됐을 때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또한 기존 학교와 대안학교가 어떻게 다른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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