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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감금’ 아픔 묻고 부활 날갯짓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 말하는 ‘나의 꿈’
‘폭행·감금’ 아픔 묻고 부활 날갯짓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 말하는 ‘나의 꿈’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3.0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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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어느 날 갑자기 한국 무대에 등장해 클래식 음악계에 파장을 일으킨 유진 박. 클래식, 팝,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당시로는 파격적일 정도로 다이내믹한 전기 바이올린 연주와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선보였다. 그러던 중 지난 2009년 전 소속사 측의 감금과 폭행으로 세간에 오르내리면서 마치 날개 꺾인 이카로스의 모습을 연상케 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와의 만남을 준비하며 그간의 상처와 아픔이 많이 아물었을지 걱정과 궁금함이 앞섰다.

끝없는 터널 같았던 시간
“1년 좀 안 되게 춘천에서 지냈어요. 어머니와 제가 산 집이 있는데 매니저 형과 둘이서 같이 쉬기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지냈죠. 지금도 그때 생각이 자주 나요. 공연은 많이 못했지만 거기서 시간 보냈을 때 마음이 참 편했어요.”
2009년 6월 말, 유진 박의 전 매니저이자 소속사 대표였던 김 모 씨가 소속사 여가수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유진 박의 감금과 폭행 이야기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그는 최소 10개월 이상 여관에서 감금당했고 각종 행사 출연료로 번 돈도 갈취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주할 때만 밖에 나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목숨처럼 여기는 바이올린을 뺏기고 폭행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인터넷에는 유진 박을 지방의 소규모 행사에서 봤다는 이야기부터 초점 없는 눈빛으로 연주하고 있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후 유진 박은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오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자신이 인정받고 재기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음악 외에는 특별히 할 줄 아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인 그가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 한국 생활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예전 일을 물어볼 때가 많아요.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다가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떠오르죠. 가끔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예전에 한국에 오래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특별하다고 말했는데 너무 힘들었을 때는 그것조차 떠올릴 수가 없었어요. 자유가 없으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죠. 이제는 좋게, 평화롭게 자유롭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떠올리기 힘든 기억을 의외로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 유진 박. 하지만 말로 다 하지 못할 아픔과 그간의 괴로움은 눈빛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전 매니저에게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돈을 못 받은 것과 자유롭지 못한 것을 먼저 꼽았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이기도 했다.
유진 박의 현 매니저인 이상배 씨는 “전 소속사와 유진 박은 이미 2009년 8월에 계약이 만료된 상황”이라며 “현재 소속사는 유진 박의 어머니와 구두계약을 한 상태지만 법적으로 보호효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유진 박이 처음 데뷔하던 때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 2009년 여관방에 감금되어 있던 유진 박을 찾아내 세상에 알려지게 한 데는 평소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이씨의 노력이 컸다. 유진 박은 2009년 말부터 지금의 소속사와 새로 계약한 상태다.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요즘
유진 박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요즘에는 그를 아끼는 팬들도 더욱 늘었다. 지난겨울에는 팬들이 옷이며 목도리, 장갑을 보내주었는데 그중에서 목도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특히 연주할 때 팬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때야말로 내가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요.”
무대를 향한 갈증은 여전히 깊다. 때문에 그는 언제든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평소 작곡과 바이올린 연주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최근에 작곡한 곡은 세 곡 정도 돼요. 지금도 작곡하고 있고요.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쓰는 편이에요. 바이올린은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만큼 해요. 연주하다 보면 바이올린이 저에게 말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연주하면 할수록 빠져드니까 자꾸 할 수밖에 없어요. 즉흥연주를 하면 바이올린과 내가 서로 경쟁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하고 싶어져요.”
현재 어머니와 잘 아는 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주로 유투브를 통해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 공연을 보곤 한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앉은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음악이 어떤지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에미넴, 너바나 같은 1990년대 음악을 좋아해요. 제가 그쯤에 활동을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그때 음악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때 인기 있었던 음악은 제 음악색깔과 비슷해서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
쉬는 동안 갑자기 늘어난 살을 빼는 것 역시 요즘 일상 중 하나다. 운동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루에 한 시간도 못할 때가 많다. 심지어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도 그가 체중감량을 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 빨리 예전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그의 팬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있으리라.

결혼하고 싶지만 음악 욕심이 더 많아
최근 유진 박은 음반 제작 준비 중에 있다. 아직은 콘셉트를 잡는 정도이지만 그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좋은 앨범이 나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진 박의 관심은 무대 위에 있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멋있는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공연할 때 항상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잘하는 모습을 보고 특히 바이올린 하는 친구들이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런 모습 보여줄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무대에 오르면 가끔 떨린다고 말하는 유진 박. 그래도 연주가 시작되면 긴장감보다는 즐거움 마음으로 몰입한다. 그런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는 언제일까. 그 질문에 유진 박은 곧바로 한국에 와서 처음 섰던 1997년의 열린음악회를 꼽았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공연할 때 느끼기도 했지만 나중에 유투브 동영상으로 보니까 어린이, 학생, 아줌마까지 모두 좋아하더라고요. 두 번째로 기억하는 건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콘서트인데 제가 작곡한 곡들을 연주했거든요. 요즘에 컴퓨터로 예전에 공연했던 영상을 보는데 아주 쿨한 모습이 나오니까 기분 좋아요.”
이제 그의 나이 서른여섯.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평생의 배필을 만나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저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더 들어요. 하지만 아직 진지하게 사귀는 여자친구는 없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결혼하려면 저 자신을 더 키우고 잘해야 돼요.”
이상형을 물으니 이효리처럼 힘 있고 에너지 넘치는 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든지 간에 결혼하게 되면 자신을 많이 이해해주는 여자를 만나 좋은 남편으로 많이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 유진 박. 때문에 바이올린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진지하게 여기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바이올린에 갖는 애정만큼 팬들도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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