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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2월호 -People/서울대 최고령으로 합격한 '거리의 화가' 서길헌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2월호 -People/서울대 최고령으로 합격한 '거리의 화가' 서길헌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0.09.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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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호

서울대 최고령으로 합격한 '거리의 화가' 서길헌

눈물과 한(恨)으로 빚어낸 '합격작품'

1991년 2월호 -People/서울대 최고령으로 합격한 '거리의 화가' 서길헌
1991년 2월호 -People/서울대 최고령으로 합격한 '거리의 화가' 서길헌

 

'대학로의 화가' 서길헌씨(31)는 첫눈에 보아도 유별난 데가 많은 사람이다.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 앞에 천막처럼 걸어놓은 그림을 1억원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쳐대는가 하면, 한번도 깎지 않은 듯한 긴머리에, 마치 여자처럼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 그리고 주변에 사물놀이패나 젊은 재즈연주자들의 신명 나는 소리마당에 펼쳐지면 맨발로 뛰어나가 미친 듯 춤을 추기도 하고 해괴한 동작으로 즉석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때때로 몇몇 이름난 행위예술가들과 어울려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하는 괴짜 거리화가 서길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치기로 보이기 쉬운 이러한 행동들은, 어찌됐든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서씨는 시골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어린시절 무수히 가출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합법적인(?) 가출방법을 찾은 것이 서울로의 고교진학. 그는 지방학생도 모집했던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지원, 합격해 서울생활을 시작했지만 생활비를 마련키 위해 고교3년을 신문배달, 가정교사, 철공소 생활 등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 기관차 정비원으로 일하면서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입학했다.

"학업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니 당장 학비며 생활비 해결이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그림도 그리고 싶고···"

그는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복학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한 학기도 끝내지 못한 채 캠퍼스를 나오고 말았다. 

이때부터 술집 종원업, 고물장수, 미술관 잡일, 누드크로키모델, 엑스트라, 도배공 등등을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왔다. 배가 고프면 길가에서 싸구려 국수나 라면을 먹고, 추운 밤거리에서 노숙하기 일쑤였다. 

85년 봄, 대학로라는 거리가 생기면서부터 '거리의 화가'로 나섰다. 하고 싶은 그림도 그리고 생활비도 벌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생소했는지 선뜻 자기 모습을 그려달라고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떤 때는 아무나 붙잡아 공짜로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초상화를 그리는 그의 모습이 점차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와 비슷한 처지의 화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원조'(?)답게 그는 '마로니에공원 화가협회'를 만들고 회장 자리를 차지했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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