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1:45 (토)
 실시간뉴스
“나는 아직 창의적인 것에 배고프다” 아이디어뱅크 전유성과 청도에서의 데이트
“나는 아직 창의적인 것에 배고프다” 아이디어뱅크 전유성과 청도에서의 데이트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4.14 0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게 사는 비결 같은 건 없어.
난 그저 내 식대로 나이에 맞게 살고 있을 뿐이지.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후대책을 돈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매일 ‘헬렐레’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

 


전유성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분명 쉽다고 설명을 들었건만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려 청도행 무궁화열차로 환승한 뒤 청도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랜만의 시골 정취에 물씬 온 마음을 적실 때쯤 약속장소에 다다랐다. 마침 그날은 코미디 시장 2기 수료식이 있던 날인지라 전유성은 수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코미디 시장’은 개그맨을 희망하는 지망생 100명을 선착순으로 받아 무료로 개그를 가르쳐주는 개그 사관학교. 2001년 1기를 모집할 당시 2년간의 무료교육 시스템이었지만 교육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후원기업의 부도로 해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나 학교까지 접어두고 모인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어 사비를 털어 운영을 계속 이어왔다. 1기 수료생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봉선, 박휘순, 황현희 등이 있다. 
이번에 수료하는 2기는 2010년 2월에 입소한 단원들. 20∼30대 남녀로 이뤄진 단원들은 전유성을 ‘코미디 시장의 장’이라는 의미로
“시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특유의 무심하지만 정이 가는 묘한 매력으로 단원들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평소 그가 자주 사용하는 “배워서 남 주는 개그맨이 되자”는 표어 아래 단원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개그 대부로 사는 요즘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단원들과 세트로 맞춰 입은 야구점퍼와 세미정장 풍의 스니커즈, 검은색 바지와 모자를 쓴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대뜸 인터뷰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부터 꺼낸다. 청도에 산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매체에서 약속도 없이 찾아와 골치가 아프다는 것. 인터뷰를 잘 하지 않을뿐더러 약속하지 않은 기자와의 만남은 더더욱 사양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까다로운 인터뷰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 것도 사실. 그동안 인터뷰를 잘 하지 않았던 이유를 물으니 이제는 드러나는 일 말고 후배들의 배후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쌀쌀맞은 말투에 단답형 대답까지. 쉽지 않은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 그의 말문을 트이게 한 건 코미디 시장 단원들과 개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눈에 띄는 애들이 네댓 명 정도 있어. 그 아이들은 아마 잘될 거야. 물론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자기네들도 이미 아는 것 같아. 느낌으로 말이지. 사실 이 아이들도 그렇고 (신)봉선이나
(박)휘순이도 그렇고 어차피 될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그저 먼저 발견한 사람일 뿐이지. 누가 가르쳐도 될 만한 사람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고 할까.”
코미디 시장은 오디션을 보지 않고 선착순으로 단원을 뽑는다. 숙박비 등 비용도 일체 들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수료할 때는 처음 인원의 3분의 1만 끝까지 살아남는다.
“코미디 시장은 개그맨을 오디션이나 시험으로 뽑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선착순으로 뽑아. 이번 2기 때도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그만둔 친구들을 제외하고 끝까지 남은 아이들에게만 수료하지. 각종 개그콘테스트에서 떨어져 오는 사람들도 많아.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 오디션을 보거나 잣대를 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오디션은 잠깐 보고 그 사람의 당락을 결정하는 건데 무엇을 보여줘서 무엇을 결정짓겠다고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어. 적어도 사람을 알려면 1∼2년은 지켜봐야 하잖아.”
전유성은 코미디 시장에 입소한 단원들에게 가장 먼저 개그맨이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가르친다. 가령 “더러운 걸로 웃기지 마라”,
“외모 비하하면서 웃기려고 하지 마라”와 같은 것들인데, 이는 개그계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좋지 않은 습관이라 아무리 가르쳐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솔직히 우리나라에 잘생긴 사람보다 아닌 사람들이 더 많잖아. 단원들에게 외모를 비하하는 것보다 칭찬하는 게 훨씬 네 편으로 만들기 쉽다고 말하는데도 잘 안 고쳐져. 또 공연 시작 전에 ‘많이 웃어주세요’, ‘이 정도 환호성으로는 공연 시작 안 해요’ 같은 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관객들은 상황이 웃겨야 웃는 건데, 웃어달라고 사정하는 건 진짜가 아니야.”
기초부터 차근차근 그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말 한마디 못했던 사람도 1년이 지나면 개그맨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는 개그맨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아이디어도 있고 연기도 잘하는 최양락, 아이디어는 있는데 연기가 안 되는 전유성, 아이디어는 없는데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임하룡. 그는 단원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것을 잘 선별해주는 게 자신의 역할인 것 같다며 슬며시 미소를 보였다.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됩니다
수료식이 끝난 후 전유성은 코미디 역사를 새로 쓰게 될 코미디 전용관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됩니다”라는 모토로 지어진 건물은 자장면 배달가방(일명 철가방)이 반쯤 열린 모습이었다. 건물 자체는 165㎡(50평) 규모지만 무대 뒤로 연결된 벽면을 밀면 저 멀리 당산나무가 보였다. 전유성은 이렇게 해두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 된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개와 고양이 등과 함께 관람이 가능한 71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개나 소나 콘서트’, 아이들이 마음껏 떠들어도 혼나지 않는 ‘얌모 얌모 콘서트’, 관객이 마음껏 소리지르고 떠들 수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콘서트’ 등 새로운 개념의 개그와 공연을 선보인 그가 이번에는 ‘찾아가는 코미디’라는 주제로 공연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개관 공연작은 ‘애 싸움이 어른 싸움’. 초등학생 아이들이 싸움을 했는데 이쪽 집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가 나와 때리고, 그랬더니 저 집에서는 중학생 언니가, 그러면 이 집에서는 고등학생이 이러면서 점점 커져가는 싸움 이야기다. 싸움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를 모두 보여줄 거라고. 마무리는 처음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던 아이들이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좋게 지내는 걸로 끝이 난다.
“내가 코미디언에서 개그맨으로 방향을 한번 바꿨고, 대학로에서 개그콘서트를 연출해 또 한번 패러다임을 바꿨잖아. 그렇다면 코미디의 다음 형태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봤는데, 이제는 찾아가는 코미디여야 한다는 거지. 시골사람들, 청도에 사는 사람들한테 코미디 좋아하냐고 물으면 다 좋다고 말해. 어디서 봤냐고 물으면 TV에서만 봤다고 말하거나 어느 장터거리에서 각설이 공연을 보고 코미디를 봤다고 착각하지. 진짜 코미디를 못 본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보여주는 방법은 개그맨들이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됩니다’라는 타이틀을 걸었어. 이를 상징적으로 만든 게 이 철가방 건물인 거야. 그리고 나중에는 코미디 시장 단원들에게 자장면 만드는 기술을 가르칠 거야. 시골 공연 갈 적에는 그 동네 사람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서 배부르게 해드린 다음 공연하려고 해. 코미디가 다음 행보로 진화할 때가 온 거지.” 

노후대책을 꼭 돈으로만 하라는 법 있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기다리던 중 그가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모습을 보았다. 예순셋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