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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39년, 서른아홉 번째 작품 발표 소설가 박범신, 문학의 바다에서 살아온 시간
등단 39년, 서른아홉 번째 작품 발표 소설가 박범신, 문학의 바다에서 살아온 시간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8.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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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산다는 건 매 순간 연애하는 기분이지.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단번에 생생해지는 게 연애니까. 이렇게 생생하게 산다는 건 내 인생에 이끼가 낄 새가 없다는 말과도 같아. 그래서 나보고 청년작가라고 그러나 봐(웃음)”

박범신 작가에게 올해는 조금 특별한 해이다. 등단한 지 39년이 되었고, 서른아홉 번째 소설책을 펴냈다. 지난 7월에는 막내아들을 장가보냈으며, 8월에는 20년 넘게 봉직했던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다. 작가는 “지금까지 39편의 장편소설을 썼지만 소설 한 권을 마친 느낌”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작가로 산다는 건 매 순간 연애하는 기분이지. 글을 쓴다는 건 감정 속에서 어떤 추락과 상승이 반복되고, 매일 살고 또 매일 죽는 거거든. 그러니 온몸과 감정이 생생하지. 연애가 그렇잖아.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단번에 생생해지는 게 연애니까. 이렇게 생생하게 산다는 건 내 인생에 이끼가 낄 새가 없다는 말과도 같아. 문학이 나의 방부제였다는 생각이지. 나는 문학 때문에 내 영혼이 고여서 썩을 새가 없었다고 봐. 그러니 이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생생하지. 그래서 나보고 청년 작가라고 그러나 봐(웃음). 이건 문학이 내게 주었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어.”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9년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며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하던 중 돌연 절필 선언을 하고 1993년부터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고 최근에는 1년 6개월 만에 장편소설 <은교>,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까지 펴내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야기하다
최근에 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현실을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손이 말굽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이 수십 명을 살해하는데 그 묘사가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자본주의가 깊어질수록 우리 사회의 야만적인 폭력이 도를 더하는 것 같아. 사회가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고 안락하고 화려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 옛날에는 사람을 때릴 때 원한이 있거나 돈을 뺏거나 하는 사실적인 목적이 있었어. 그런데 작년 어느 로열패밀리는 사람을 한 대 때리는 데 1천만원씩을 줬잖아. 그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내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어. 얼마나 위험한 세상이야. 이제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때려도 된다고, 소위 지도층 인사가 천연덕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시대니까. 때리는 사람이 권력이나 돈을 배경으로 거느리고 있으면 맞은 사람은 아예 대들지도 못하는 거지.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은 그런 점을 그리고 싶었어. 소설 속 단식원의 우두머리인 이사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야. 얼핏 100% 옳은 얘기 같지만 실제로는 폭력으로 욕심을 채우는 자거든.”
작가는 손바닥을 펴 한 중간에 단단히 자리 잡은 굳은살을 보여주었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이 손바닥 가장자리의 굳은 살 속에서 U자형 말굽이 생겨난 모습과도 연결되었다. 이는 주인공에 작가의 영혼을 오롯이 투영한 결과물이 아닐까. 
“이번 소설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이런 소설을 써본 적도 없고. 작가가 상상력으로 소설을 쓴다고 해서 마음대로 사람이 죽여지는 게 아니야. 사람을 죽이는 건 상상 속에서도 아프고 힘든 일이거든. 소설을 쓰면서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어두운가’ 하는 자의식도 있었고.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쓰는 날에는 악몽도 많이 꿨어. 이번 소설을 쓰느라 너무 지쳐서 다음 소설은 따뜻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

어떠한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채 ‘박범신파’로 살 것
살아간다는 건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정년퇴임을 준비하면서 원고지로 60매가 넘는 글을 써서 제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출생부터 노년이 된 지금까지의 일생이 담긴 그 글에는 작가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하나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는 쉽게 내리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60대쯤 되면 최소한 ‘나는 누구야’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나는 누구야’라는 말을 준비하는 지난한 도정(道程)이 아닐까 늘 생각했지. 그런데 오늘도 난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한마디로 말할 수 없어. 젊은 제자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지. 그래서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생각했어. ‘내가 평생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과 혐오하고 반대해온 것을 밝히면 그것들의 조합에 의해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드러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지.”
한 가지 일에 10년을 매진했을 정도면 가히 전문가라 부를 만하다. 그쯤 되면 누구보다 능숙하고 수월하게 맡은 분야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하나 작가에게 글이란 능숙하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작가는 제단 위에 자신의 글을 재물로 바친다는 심정으로 죽을 힘을 다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평생 시종해온 것으로 인간 중심주의 이데올로기와 문학 순정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와 반대로 집단, 정파, 계몽주의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혐오해왔다. 예술이라는 건 결국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하기에 예술은 정파(政派)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는 정파나 문파(文派)를 받아들이지 않아. 기본적으로 집단,
조직, 무리를 혐오하지. 그러한 말들은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는 배타적이겠다고 전제한 것으로 보거든. 물론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설과 싫어하는 소설이 있을 수는 있어. 물론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정파로 나뉘어서 자신의 정파가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받아들이지 않지.”
일찍이 한 문학잡지의 사장은 그에게 “작가로서 너무 전략이 없다”고 충고했다. 작가는 곧바로 수긍했다. 하나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단독자로서 사람들의 오욕칠정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그 깊이와 넓이를 재고, 그러한 것들을 미학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는 “만약 내가 소속되어야 한다면 작가로서 나는 죽을 때까지 ‘박범신파’에 소속돼 살 작정”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살고 싶다
“내 꿈은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사는 거야. 작가로 사는 한은 장교가 될 마음이 전혀 없어. 현역 사병으로 사는 게 내 꿈이지. 그래서 나는 나이 든 작가가 씀 직한 이야기를 안 써. 사실 그러한 건 내게 불리한 거야. 계몽적이고 어려운, 읽으면 뭔가 교훈이 있는 소설들이 잘 팔리잖아. 하지만 나는 나이의 망토에 갇히고 싶지 않거든.”
작가의 왼쪽 팔뚝에는 상어가 그려져 있다. 20년 전 아내와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가 새긴 문신이다. 금방이라도 힘차게 수면 위를 박차고 튀어오를 것 같은 역동적인 상어의 모습과 작가가 어딘가 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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