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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경주 감포 해녀 모녀와 손녀…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인간극장] 경주 감포 해녀 모녀와 손녀…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이주영 기자
  • 승인 2021.05.21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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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5월 17~21일) KBS 1TV <인간극장>에서는 경주 감포 바다를 누비는 엄마와 딸, 해녀로는 스승과 제자지간인 김순자(74) 씨와 이정숙(52) 씨.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의 굽이쳤던 인생을 차근차근 기록하는 정숙 씨의 딸 정지윤(30) 씨 이야기를 그린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5부작이 방송된다.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미역 철을 맞은 경주 감포 바다, 물질 실력 좋고 다정하기로 소문난 해녀 모녀가 있다. 21년 차 해녀 이정숙(52) 씨, 그리고 물질 스승님 김순자(74) 씨다. 두 여자는 정성껏 닦아 둔 바닷속 돌에서 오늘도 싱싱한 미역을 딴다. 

갓 스물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고향을 떠났던 딸 정숙 씨. 사업을 키워나가던 중 부도를 맞아 오갈 데가 없었는데 엄마 순자 씨가 “바다에서 쉬어 가라”며 딸네 가족을 품어주었다. 돌아온 고향에서 정숙 씨 부부는 포장마차를 열었지만, 삼 남매 키우기엔 역부족. 그때 순자 씨가 딸에게 물질을 가르쳤다. 땅에서 밭을 빌려주듯, 순자 씨가 가진 미역 돌에 딸을 불러 일당도 줬다. 엄마 덕분에 캄캄한 바닥을 찍고 다시 눈부신 수면 위로 올라온 정숙 씨다.

정숙 씨의 엄마, 순자 씨가 처음 해녀로 나섰던 건 40여 년 전. 남편은 야속하게도 배 사고로 먼저 떠나버렸고 순자 씨는 자식 넷을 먹여 살리려 악착같이 잠수복을 입었다. 이제는 물질도 1등, 금슬도 1등인 딸네를 울타리 삼아 노후를 보내나 싶었는데, 지난해부터 친손자 윤영이(8)를 돌보게 됐다. 윤영 아빠인 막내아들은 배 타러 나가 얼굴 보기 힘들고, 베트남에서 온 며느리도 공장 일 다니느라 바쁘니 순자 씨가 어린 손자의 부모이자 친구가 되어준 것. 힘들 법도 한데, 손자 재롱 보는 재미에 울적할 여가도 없단다. 

바다를 누비는 할머니와 엄마, 두 여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다. 미역 철을 맞아 친정에 내려와 일을 돕는 정숙 씨 맏딸, 정지윤(30) 씨다. 찬 바다에 다녀온 엄마를 위해 따끈한 커피를 타고, 갓 딴 미역을 손질한다. 서른 살 지윤 씨, 엄마가 감포 바다로 돌아왔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할머니와 엄마의 인생사가 다시 보였단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고 있다. ‘땅에서는 딸이자, 마누라, 그리고 세 자식을 키워낸 엄마이고, 바다에서는 인어공주인’ 엄마 김정숙, 그리고 ‘잘생긴 농어’를 만났다는 할머니의 생생한 바닷속 이야기들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써나가는 한 여자, 서른의 지윤 씨는 삶의 파도를 먼저 넘어간 두 여자의 시간을 걸어본다.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 미역밭을 누비는 인어공주들

미역 수확 철을 맞은 경주 감포의 어촌마을. 인어같은 수영 실력에, 서로 애틋하기로 소문난 두 모녀가 있다. 동네 1등 해녀, 딸 이정숙(52) 씨와 그녀의 해녀 스승님 김순자(74) 씨다.

해녀들 사이에 제일 힘들기로 이름난 게 미역 물질이라, 두 해녀는 지난겨울 두 달 동안 바닷속 돌들을 매끈하게 청소했다. 미역 포자가 잘 붙을 수 있도록 살 떨리는 겨울 바다에서 이끼와 따개비를 낫으로 하나하나 걷어냈다. 이제 봄이 왔으니, 통통하게 자란 미역을 따낼 시간. 그런데 채취도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세찬 파도가 해녀들을 밀어 돌로 던졌다 놨다 하기가 일쑤,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멀미약이 소용없게 어질어질하다. 

이렇듯 파도와 외롭게 씨름해야 하는 물질이지만 그래도 두 모녀, 저 물결 너머에 서로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단다. 

◆ 정숙, 엄마의 바다로 돌아오다

딸 정숙 씨에게 친정엄마는 인생의 풍랑을 막아준 지붕이요, 길을 알려준 등대였다. 정숙 씨, 스물에 결혼하며 감포 바다를 떠나 인생길 항해를 시작했는데, 남편 정대엽(58) 씨와 도시에서 잘 키워가던 건강식품 사업이 IMF로 인해 부도를 맞았고 가진 집까지 팔아야 했다.

그때 엄마 순자 씨가 “피난 오는 마음으로 쉬어 가라”며 딸네 가족을 고향 바다로 불러줬다. 돌아온 고향에서 정숙 씨는 포장마차 일부터 시작했다. 밤낮으로 토스트를 굽고 안주를 만들었고 남편 대엽 씨도 멸치어장 일에 나서며 잘살아보려 안간힘을 썼단다.

저렇게 해서 언제 일어설까, 걱정스러웠던 친정어머닌 물질을 해보면 어떠냐, 손수 테왁을 만들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아직은 서툰 물질 솜씨로 남의 집 일은 못 가니 내 미역 돌 메라고 일당 줘가며 일을 가르쳤다. 그렇게 정숙 씨는 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는 엄마 순자 씨의 말처럼, “바닥을 한 번 찍었으니, 위로 올라갈 일만 남은” 정숙 씨네 가족이다.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 품고 또 품는 엄마의 너른 바다

엄마 순자 씨는 40여 년 전, 자식 넷 먹여 살리려 물질을 시작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는 손에 바닷물 마를 날 없었지만  아직도 매일 물에 가고 싶다니 해녀가 천직이다. 

맏딸 정숙 씨에게 처음 물질을 가르칠 땐 걱정도 됐지만  정숙 씨는 엄마 따라 베테랑 해녀가 됐고,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시장이며 병원에 차 태워 모셔다드리고, 읍내에 맛집 생겼다 하면 손잡고 나가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들깨 칼국수 한 그릇 뚝딱한다. 그뿐이랴, 어머니 공과금 고지서도 대신 받아주는 살뜰한 딸이다. 

그 딸과 사위를 울타리 삼아 이젠 편안한 노후를 보내나 싶었는데, 순자 씨는 지난해부터 여덟 살 손자 윤영이를 돌보게 됐다. 마흔 다 되도록 장가를 못가 애태우던 막내아들, 베트남 며느리를 얻어 뒤늦게 가정을 꾸렸고 귀한 손자를 봤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먼바다에 나가 배 탄다는 핑계로 밖으로만 도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할까, 어머니는 내내 속을 끓인다. 아들 걱정에 손자 걱정까지, 자식 뒷바라지는 눈 감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했던가. 엄마의 바다는 자식 걱정에 오늘도 깊어간다.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 KBS 인간극장

◆ 세 여자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순자 씨의 손녀이자, 정숙 씨의 맏딸인 정지윤(30) 씨는 바쁜 미역 철을 맞아 엄마 곁에 와 있다. 신혼 1년 차, 새신랑 보고 싶은 마음도 꾹 참고 엄마와 할머니를 돕고 있다. 미역 철 엄마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할지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물질 후 기진맥진한 엄마에게 간식 대령에, 미역 손질은 기본. 도시재생 관련 기획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귀한 미역이 제값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있다. 미역 포장 디자인을 궁리하고, 동네의 빈집을 해녀 박물관으로 꾸며 볼 계획이다.
 
지윤 씨가 친정에 내려와 엄마와 할머니의 삶을 지켜보는 동안, 나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이 쌓여갔단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두 해녀의 인생사를 기록하고 있다. 엄마 정숙 씨가 가족들 아침밥 차리느라 물질에 늦으면, 다른 해녀들이 같이 가려고 기다려줬다는 이야기, 할머니 순자 씨가 어느 날 바다에서 문어와 싸워 이겼는데, 그 문어가 꼭 먼저 간 남편이 보내준 선물 같더라는 이야기들이다. 

처음엔 그런 이야기를 뭐하러 쓰냐던 할머니도 어느새 술술 당신의 인생사를 풀어내고, 딸이 써 내려간 이야기를 들은 정숙 씨는 엄마 고생을 알아주는 딸이 고마워 눈시울을 적신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우리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모녀 삼대- 어쩌면 깊은 바다보다 더 많은 사연, 더 깊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 엄마가 아닐까?

두 여자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써나가는 한 여자, 지윤 씨. 또 어떤 다음 장이 바다처럼 펼쳐질까? 그녀도 궁금하다.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표방하는 KBS 1TV ‘인간극장’은 매주 월~금 오전 7시 50분에 방송된다.

[Queen 이주영 기자] 사진 = KBS 인간극장, ‘엄마의 바다, 세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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