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1:25 (토)
 실시간뉴스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4월호-포토 에세이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4월호-포토 에세이
  • 양우영 기자
  • 승인 2022.02.26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1년 4월호

봄이면 넓지 않은 뜰일망정 호박을 심어 그 결실을 기다려 사는 보람

비익조(比翼鳥)라는 새가 있다. 암컷 수컷이 모두 날개와 눈이 하나씩 밖에 없어 홀로는 날지 못하고 오직 둘이 짝을 지어야만 날아갈 수 있다는 전설속의 새이다. 그러나 나는 말하노니 사랑 때문에 한쪽 날개를 꺾어선 안된다. 나란히 날개짓 하며, 피로하거나 짜증나면 서로 위로하며 먼 길을 나란히 날아가는 것이 사랑이다. 

1991년 4월호-포토 에세이1
1991년 4월호-포토 에세이1
1991년 4월호-포토 에세이2
1991년 4월호-포토 에세이2

 

창 밖에 북악이 보인다.

북악의 탄탄한 등성이를 싸락눈이 지금 쓰러뜨리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 내리는 눈일 것이다. 3월을 맞아 막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려던 매화 철쭉 진달래 살구 천리향 등 꽃나무들이 황급히 어깨를 움츠려뜨리는 게 내 눈에 보인다. 사람들이 이르되, 꽃샘추위가 바로 이것이다. 봄이 멀지 않으리 하고 스러지는 눈발을 보며 그러나 나도 셸리처럼 중얼거려 본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이 오긴 올 터이다. 

내 나이 이제 40대 중반.

인생의 봄이라곤 할 수 없다.

꽃 피고 새 우는 인생의 봄이 내게도 있었던가. 

소설책이나 끌어안고 허구헌날 침침한 방 안으로 만 숨어들던 나의 10대와 극심한 가기분열의 내적 출혈 속에 보내야 했던 20대의 기간들도 다 그러하다. 만약 그것들이 내 인생의 봄이었다고 한다면, 엘리어트의 절규처럼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올 봄엔 철쭉을 더 심으려고 한다.

호박도 심을 것이다. 작년에 늙은 호박을 세통밖에 따지 못했다. 나는 호박죽을 좋아한다. 올 겨울엔 작년에 딴 세통의 호박이 부족해 다른 곳에서 세통을 더 사다 먹었다. 올 봄에 심을 호박에서의 수확이 부디 자급자족이 되기를 나는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면 포도나무를 한 그루 심고 싶다.

이것이 지금 나의 봄 꿈이다. 

내다보이는 북악은 내 봄 꿈의 이미지로 보면 2월의 북악과 차이가 있다. 눈바람이 몰아치고 있는데도 숲은 생명을 예비하려고 잔뜩 팔마다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주례를 보았다. 

벌써 일주일 전이다.

주례보탁을 받고 한동안 나는 심각해졌다. 아직도 새신부 또래의 아름다운 젊은 여자들 때문에 가슴이 설레이는 내가, 주례라니 당치않다. 그렇지만 나는 또 생각해 보았다. 40대중반을 넘기는 나이로 내 과연 언제까지 젊은의자에 앉아 비빌 수 있단 말이냐. 젊은의자에는 젊은 영혼들이 앉아야 한다. 시간이 되면 자기에게 알맞는 의자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인생이다. 주례를 부탁하는 신랑신부가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그 푸르른 눈빛으로 이제 곧 떠나게 될 미지의 미래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